세계 증류주 시장에서 고급 주류로 인기를 누리던 스카치위스키는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증류주들의 발달로 인해 예전과 같은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전통 위스키인 싱글몰트(Single Malt) 위스키는 전 세계 시장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국내에서도 두 자릿수 이상의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이 강 주변이 싱글몰트위스키 주산지
국내에서 수 년 전만 해도 싱글몰트 위스키라고 하면 낯설었지만 지금은 세계 판매 1위 글렌피딕(Glenfiddich), 그리고 맥캘란(Macallan), 발베니(The Balvenie) 등을 비롯해 약 60여종의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가 정식 수입되고 있다. 또한 싱글몰트 위스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판매점이나 바(Bar)가 생겨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위스키라 하면 의레 폭음까지 이르는 폭탄주와 유흥문화가 연상되지만, 싱글몰트 위스키는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가까운 지인이나 비즈니스 파트너와 담소를 즐기며 마시는 고급 증류주로 자리 잡고 있다.
몰트 위스키는 맥아보리만을 가지고 만든 정통 위스키를 뜻하는 것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숙성된 위스키가 몰트 위스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몰트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다양한 지역에서 증류되는데, 와인의 ‘테루아(Terroir)’와 비슷하게 각 지역의 특성, 물, 증류 방식의 미세한 차이, 숙성 방식에 따라 같은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각기 다른 다양한 맛과 향이 나타나게 된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이렇게 생산된 몰트 위스키를 다른 증류소의 몰트 위스키와 섞지 않고 하나의 증류소에서만 생산된 몰트 원액을 병입한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싱글몰트 위스키 산지로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청정수를 확보할 수 있는 스페이(Spey) 강이 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전체 80여개의 몰트 증류소 중 절반 가까이가 이 지역에 분포돼 있는데, 대표적인 증류소는 글렌피딕 및 발베니, 맥캘란, 글렌리벳 등이 있다. 한편 ‘아일라(Islay)’ 섬 지역의 몰트 위스키는 강한 해풍의 영향으로 요오드 향이 강하게 나는 위스키가 생산되고 있다. 호불호(好不好)가 강한 ‘라프로익, 라가블린, 보모어’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표적인 싱글몰트 위스키 예찬론자로 알려져 있는데,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매일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며 글을 쓴 곳이 바로 이 아일라 지역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글에서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산수라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샴페인’이라고 재미있게 비유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책 <위스키 성지 여행>에서 싱글몰트 대신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시는 행동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렇듯 싱글몰트 위스키는 다른 증류주나 블렌디드 위스키가 갖지 못한 각각의 독특한 맛과 향으로 위스키 애호가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글렌피딕, 싱글몰트위스키 최초 수출
소규모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는 그 지방에 한정돼 소비되다가 19세기 들어 연속식 증류법의 개발로 대량 생산된 그레인 위스키에 함께 섞여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즉 블렌디드 위스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향의 그레인 위스키 원액 70%에 40여종의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 원액을 고유의 비율대로 섞어 위스키를 만든다. 40여종이나 되는 다양한 몰트 위스키 원액을 사용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 몰트 위스키의 향에 치우치지 않고 안정감 있고 일관성 있는 맛을 내기 위해서다.
블렌디드 위스키가 본격적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던 1860년대 이후 대부분의 몰트 위스키는 대형 블렌디드 위스키 회사에 공급됐고, 몰트 위스키 자체로는 스코틀랜드 내에서만 소비가 됐다. 몰트 위스키만으로 제품을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대량 생산되는 블렌디드 위스키에 비해 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제품마다 일정한 품질관리의 어려움과 생산원가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없었다. 또한 소량 단식 증류방식을 고수하는 몰트 위스키의 제조 방법으로는 상품화를 위해 충분한 원액을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이유들로 그 누구도 몰트 위스키만을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일반 블렌디드 위스키가 세계로 수출된 지 약 100년이 지난 1963년 ‘글렌피딕’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상품화해 스코틀랜드 외 지역으로 수출한 최초의 브랜드였다. 많은 위스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도를 바보 같은 결정이라며 당연한 실패를 예견했다. 블렌디드의 일반화된 맛에 길들어진 사람들에게 싱글몰트 위스키는 너무 개성이 강한 제품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깨고 ‘글렌피딕’은 싱글몰트 위스키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승승장구하게 됐고, 상품화에 부정적이던 다른 몰트 증류소들도 글렌피딕의 성공에 자극받아 앞 다투어 자기 증류소의 이름을 딴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들의 오래된 원액을 이용해 기존 블렌디드 위스키가 만들 수 없는 연산이 표기된 빈티지 제품이나 수집가나 투자가용의 고연산 레어(Rare)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함으로써 고급 위스키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위스키 음용 층의 라이프스타일 및 주류문화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세계적으로도 성장 추세인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 열풍은 국내에서도 쉽사리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5대 위스키 종류
● 스카치 위스키 :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며 3년 이상 숙성, 40도 이상의 알코올 원액을 담은 위스키
● 아이리쉬 위스키 :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며 당화 및 발효단계부터 몰트에 다른 곡물을 섞어 만들며, 이탄 훈연을 하지 않아 맛이 부드러운 게 특징
● 아메리칸 위스키(주로 버번) : 미국 중부에 많은 옥수수를 이용해 만든 위스키. 대부분이 스탠더드 위스키
● 캐나디안 위스키 : 호밀(Rye)을 이용해 만든 위스키로 미국 금주법 당시 크게 성장
● 재패니스 위스키 : 1931년 산토리에서 시작됐으며, 1960년대 도쿄 올림픽을 전후로 크게 성장
주요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산지
●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 : 글렌피딕, 발베니, 맥캘란, 글렌리벳 등
● 하이랜드(Highland) 지역 : 하일랜드 파크, 달모어, 글렌모란지 등
● 아일라(Islay) 지역 : 라프로익, 라가불린, 아드벡, 보모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