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맥주인 카스와 하이트는 목 넘김은 좋지만 미각을 자극할 정도는 아니다.(중략) 오히려 영국에서 수입된 장비로 만드는 북한 대동강맥주 맛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 지난 2012년 11월24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산업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면서 국산 맥주 맛에 대해 이렇게 혹평했다. 비록 온라인 판에 실린 기사였지만 후폭풍은 상당했다. 정말로 우리 맥주 맛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국산 맥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봤다.

미국 라거 방식 ‘하면제조법’ 생산으로 밍밍함 불가피
해외 맥주 먹어본 소비자들 눈높이 높아져 국산 품질에 불만

서울발 <이코노미스트>지 기사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Fiery food, Boring beer)는 보도 이후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담겨진 내용도 국내 맥주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기사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마늘과 고추에 절여진 김치나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산낙지 등 흥미 넘치는 한국 음식들과 달리 맥주는 심심하다. 한국 맥주는 주재료인 맥아(보리에 싹을 틔운 것)를 아끼고 대신 쌀이나 옥수수를 많이 사용해 술을 만든다. 또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100%에 달하는 것도 한국 맥주산업의 문제다.”

<이코노미스트> 지적을 요약하면 국산 맥주 시장이 사실상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양강체제여서 다양한 맛의 맥주가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낮은 품질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정말 국산 맥주의 품질은 낮은 것일까.

해외 여행객 증가로 미국·유럽맥주 경험 늘어나

국산 맥주 맛과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해외 여행객 증가로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외 맥주를 먹어본 사람들이 늘면서 국산 맥주 품질에 대한 불만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이코노미스트>가 제기한 문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이에 따른 반대급부로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되는 수입 맥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지난 2012년 10월 관세청이 발표한 ‘주요 주류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2012년 맥주수입량은 전년에 비해 23%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종류도 다양해져 현재 국내 수입되는 해외 맥주 수는 약 480여종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산 맥주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이유는 왜일까. 맥주 애호가들이 국산 맥주와 관련해 유명 주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 올리는 글의 요지는 한마디로 “맛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비해 맛의 무게감이 덜하며 맥주 본연의 쓴 맛과 마신 뒤 느껴지는 청량감이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다보니 맛에 대한 불신은 원재료 함유량과 품질, 설비 등 양조 전 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맥주는 주원료인 맥아를 이용해 만든다. 보리에 물을 공급해 싹을 틔운 뒤 더 이상의 발아를 막은 채 뿌리를 자른 것이 맥아다. 맥아 비율이 높으면 맥주색은 진한 갈색 빛에 가까워지고 맛은 씁쓸하다. 정통 유럽식 맥주가 대체로 이런 맛에 가깝다. 그러나 유럽식 맥주는 목 넘김이 부드럽지 않다. 때문에 미국, 유럽 등 대형 맥주 회사들은 맥아에 옥수수, 쌀, 밀 등을 섞어 구수하면서 부드러운 맛을 내도록 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맥아 함유량은 업체마다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지만 세금과 직결된 만큼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정해 놓고 있다. 가령 유럽 맥주 본고장 독일은 1516년 남부 바이에른공화국의 빌헬름 4세가 법으로 공표한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을 지금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맥주순수령에 따르면 독일맥주는 맥아, 홉, 효모, 물 이외에는 다른 어떤 첨가물을 넣어선 안 된다. 일본은 주세법에 따라 맥아 비율이 66.7%가 넘어야 하며 그 기준에 못 미치면 발포주(탄산이 함유된 저 알코올 음료) 내지는 비 알코올성 음료로 분류된다. 네덜란드 하이네켄도 맥아 함유량이 100%이며 미국 버드와이저는 70~80%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세법에 따라 맥아 함유량이 10%만 넘으면 맥주로 인정받는다. 기준이 느슨하다 보니 대형 맥주회사들이 원가를 아끼려고 맥아를 적게 넣어 맥주 맛이 물처럼 밍밍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생기고 있는 것이다.

맥주 제조업체들은 이 같은 네티즌들의 주장에 대해 맥아 함유량은 일반 수입 맥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항변한다. 업체들이 말하는 국산 맥아 함유량은 60~70% 정도다. 하이트진로에서 만드는 맥스와 OB맥주의 골든라거는 맥아 함유량이 유럽맥주와 같은 100%다. 변형섭 OB맥주 홍보팀 이사는 “맥아 함유량을 60~70%로 유지하는 이유는 국내 소비자들이 진한 맛의 유럽 스타일보다는 부드러운 맛의 미국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 이사는 “우리나라 주세법의 맥아 비율은 수입맥주에 대한 과세목적에 따라 설정된 기준이지 이를 실제 맥아 함량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관련 업체들은 법으로 맥아 비율을 높여놓으면 세금을 적게 내도 되는 ‘저(低)맥아’ 수입 맥주들이 범람할 수 있기 때문에 과세당국이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1. 많은 사람들이 소주와 섞어 먹다 보니 가벼운 라거 방식의 맥주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2.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홉(Hop).
1. 많은 사람들이 소주와 섞어 먹다 보니 가벼운 라거 방식의 맥주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2.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홉(Hop).

세금문제로 10%만 맥아 넣으면 맥주로 인정

또 거의 모든 국산 맥주들이 효모를 맥주통 아래에서 발효시키는 하면발효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물 맥주’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거(Lager) 방식인 하면발효법은 맥주 맛이 깔끔하고 청량감이 있다. 미국 버드와이저가 라거 방식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맥주다. 네덜란드 하이네켄도 같은 방식으로 양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프리미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유럽 프리미엄 중에는 효모를 맥주통 위에서 발효시키는 상면발효법 맥주가 상당수다. 상면발효법으로 만든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이 강하다. 유럽맥주는 상당수가 이 같은 에일(Ale)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코노미스트>가 국산 맥주보다 맛이 더 좋다고 평가한 북한 대동강맥주도 에일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염행철 한국양조과학회 회장은 “1~2잔을 즐기는 외국인들과 달리 국내 소비자들은 소주나 양주 등과 섞어 대량으로 즐길뿐더러 여름철 더운 날 갈증 해소용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는 것도 맥주회사들이 부드럽게 맥주를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이트맥주 전신인 조선맥주가 과거 씁쓸한 맛의 크라운맥주로 고전하다 깨끗한 물과 시원함을 강조한 하이트를 내세운 뒤 맥주시장 판도를 뒤바꾼 것도 순전히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 탓이다. 일본, 유럽 맥주들이 쓴 맛이 강한 유럽산 홉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국내 업체들이 쓴맛이 덜한 미국산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 자세한 내용은 이코노미플러스 1월호 30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