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삼성의 연말 인사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라는 평가가 대다수지만, 돌아보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이야기 하는 이들도 업계에는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삼성전자 사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년간 경영 역량에 대한 테스트를 받아왔고, 최근의 성적표는 이건희 회장의 눈에도 합격점에 가까웠다는 평을 듣고 있기 때문.
특히 2011년 하반기부터 해외 CEO들과 자주 만남을 가져온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선 다섯 차례나 이건희 회장의 해외 출장길에 동행한 바 있다. 재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지난 9월 이건희 회장과 리자청 장강그룹 회장의 만남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하면서 이 회장이 크게 만족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이 딸들의 승진은 제외하고 아들만의 승진을 선택한 것도 삼성전자의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창사 이래 최대실적으로 부회장 승진 결실
형들과 그룹 승계 경쟁을 펼쳐야 했던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후계 구도에서 치열한 경쟁자 없이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맏아들이자 외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의 입지가 독보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시기’가 문제였을 뿐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앞서의 재계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준 성과나 삼성전자의 실적이 창사 이래 최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이 승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휴대폰, TV 등 삼성전자 주력사업뿐 아니라 그룹 전반을 총괄해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재용의 삼성’에서 어떤 인사들이 실세로서 삼성을 이끌어가게 될까. 이 부회장의 삼성 내 인맥을 살펴보면,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이윤우 상임고문이 가장 앞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텔레비전 등 완제품 사업을 담당하는 DMC(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부문을 맡아 오다가 2012년 6월 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 공석으로 남아 있던 DMC 부문을 승진과 함께 이재용 부회장이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이번 인사와 함께 완제품 부문의 ‘장’을 없애고 DMC 산하에 있던 소비자가전(CE)과 정보기술·모바일(IM) 담당을 ‘부문’으로 격상시켰다. 각 부문의 수장은 소비자가전 쪽은 윤부근 사장이, 정보기술과 모바일은 신종균 사장이 맡게 된다. 즉 이재용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과 함께 전반적 부문을 장악하게 되며 ‘이재용-권오현 부회장 체제’가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최지성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과의 관계가 돈독하다. 최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1985년 삼성반도체 구주법인장을 맡았던 그가 직접 반도체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유럽 각지의 거래처를 돌아다녔던 일화는 업계에선 널리 알려진 이야기. 또 삼성이 디자인 경영을 내세웠던 1990년대 초반 자신이 애호했던 보르도 와인에서 착안해 ‘보르도 TV’ 시리즈를 만든 이야기도 유명한 성공스토리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삼성의 후계구도가 연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 역시 이재용 라인이다. 이 상임고문은 특히 이건희 회장이 ‘진정한 천재’로 인정할 만큼 재능 있는 인재로 알려져 있다. 상임고문 직을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으나 막후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도울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재무·전략통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이 보좌
이외에 DMC 부문 경영지원실장을 맡게 된 이상훈 미래전략 팀장(사장)도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참모로 꼽힌다. 삼성 내 최고의 전략통이자 재무통으로 꼽히는 이상훈 사장은 경영지원실장으로서 재무 및 글로벌 전략을 책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부사장 시절 이미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등 그룹 내 실세로 분류된 바 있다.
또 조수인 삼성디스플레이 OLED 사업부장이 의료기기사업부장으로 가게 되며 OLED 사업부를 맡게 된 김기남 신임 디스플레이 사장도 이재용 부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기남 사장은 지난 2009년 사장단 인사에서 51세의 나이로 최연소 사장에 오른 바 있고, 이번에 OLED 수장을 맡게 되며 새로운 시험무대에 올라선 셈이다.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도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더 큰 요직으로 올라섰다. MBC 문화방송 앵커 출신으로 2005년 삼성전자로 이직한 이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과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그룹 밖에서도 학맥을 통해 얽힌 이 부회장의 인맥은 상당하다. 경기초-청운중-경복고를 나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게이오대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리라·경복초등학교와 함께 서울의 3대 명문 초등학교로 불리는 경기초등학교는 재계 2·3세들 상당수가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이재용 부회장 외 조현상 효성 부사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등이 경기초등학교 출신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과는 경복고 동문 사이다. 범삼성가에서는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병철 회장의 5녀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아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경복고 출신. 또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청운중과 경복고 동창 중 두세 명과는 이 부회장이 지금까지도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초중고 동창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으로는 삼성 내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이 대표적이며, 서울대 동문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과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임대홍 전 미원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의 아들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조현준 효성 사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도 게이오대 출신으로 이재용 부회장과 동문 사이다.
이 부회장은 특히 조현준 사장과 게이오대 시절 막역하게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버드대 동문인 조현문 효성 부사장 등과도 학맥으로 얽힌 사이다. 또 이현승 SK증권 대표와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재학시절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승진하며 재계 인사 중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 되고 있어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경기초-청운중-경복고에 이어 서울대(각각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까지 함께 진학한 1968년생 동갑내기이기 때문.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대 졸업 이후 게이오대-하버드대를 거쳤고, 정용진 부회장은 서울대 1학년을 마친 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미 지난 2006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용진 부회장과 2012년에 승진한 이재용 부회장, 두 사람은 모두 범삼성가의 3세로 그룹을 총괄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승진 직후 삼성그룹의 신수종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바이오, 의료, 2차전지, 태양광, LED 등 삼성의 향후 5대 신수종 사업 추진의 성공 여부가 이 부회장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Tip ㅣ 이재용 부회장 그룹 내 역할 막강해질까
일단은 ‘합격점’… 그룹총수 앞두고 새로운 시험무대
그간 외아들이자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후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명확하게’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니었기에 후계구도가 안착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으로 넘어가는 후계구도가 더 힘을 받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앞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를 총괄하게 될 전망이다.
삼성 측은 “경영감각과 네트워크를 갖춘 경영자로서 경쟁사와의 경쟁과 협력관계를 조정하고 고객사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했다”는 공식 입장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강조했다. 또 이 부회장의 향후 역할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실무의 총책인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했다면 부회장으로서는 최고경영진의 자리에 오른 만큼 폭 넓게 삼성전자의 사업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승진에서 이부진 사장·이서현 부사장이 각각 부회장과 사장으로 승진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또다시 동생들과 후계구도를 두고 각축전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 부회장이 2013년에 보여줄 성과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마음이 또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Tip ㅣ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앞날
2013년엔 두 딸도 승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부사장은 이번 승진에서 제외됐으나 2013년 승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2013년엔 두 딸도 승진?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외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부사장은 이번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에서 제외됐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이 승진 대상에서 빠진 것이 두 사람의 향후 그룹 내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 2010년 인사에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도 사장으로 함께 승진한 바 있다. 이후 이부진 사장은 오빠와 함께 ‘사장’으로서의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를 받아온 셈이다.
이부진 사장 역시 그동안 호텔신라의 면세점과 리모델링 사업 등에 공을 들이며 활발한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 2011년 9월 인천공항 신라면세점에 루이비통 입점을 성사시킨 것은 이 사장의 큰 성과 중 하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012년 9월 홍콩을 방문했을 때 이부진 사장이 동행하면서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장녀인 이부진 사장의 해외호텔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호텔신라가 2013년 1월10일부터 6개월간 리모델링을 하기 때문에 이부진 사장은 당분간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에 좀더 치중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 사장을 겸하고 있는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리모델링 사업이 완성되고 에버랜드를 통해 경영 성과를 보여준다면 2013년 인사에서 승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사장은 지난 3월에는 삼성 3세 중 처음으로 주주총회 의장을 맡는 등 오빠에게 밀리지 않는 경영 입지를 다져오기도 했다. 차녀인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부사장 역시 2010년 인사 당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아직은 ‘부사장’ 직급이지만, 이번 인사에서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이 패션부문 대표이사를 맡게 되면서 이 부사장이 경영 쪽에 치중하게 되는 구도로 바뀐 점이 눈여겨 볼 대목.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사실상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이 부사장 역시 언니와 함께 2013년 사장으로 승진이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