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 대곡면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남새농장의 정명환씨는 한겨울에도 난방비 걱정이 없다. 지하수의 열을 이용해 온실 난방을 하기 때문이다. 정씨가 지하수열 냉·난방시설을 갖춘 것은 2009년. 2002년부터 3300㎡(1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해 수출에 주력하던 정씨는 2006년부터 유류비 상승으로 인해 농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에는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열려 재배면적을 6600㎡(2000평)로 확대하면서 경영비 절감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때 알게 된 것이 ‘지하수열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이었다. 지하 450m에서 퍼 올린 영상 15도의 지하수를 가온해 난방하는 기술이다. 그는 2009년 정부 보조를 포함해 3억5000만원을 들여 이 시스템을 설치했다. 시스템 설치 후 유류비 절감 효과는 엄청나다. 2008년 7400만원이었던 연료비는 2009년 2700만원으로 줄었다.
파프리카 등을 재배하는 대규모 시설원예 농가들이 고유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3년 전 ℓ당 800원대였던 농업용 경유 가격은 12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연간 유류비만 수천만원에 달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지열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남새농장의 경우처럼 지하수를 활용하는 방법과 땅속의 열(지열)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기술인 지열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은 지하수 확보가 어려울 경우 효과적이다. 이 시스템은 땅속 3m 깊이에서 지열을 끌어내 온실의 난방과 냉방에 이용한다.
파프리카를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 경남 합천의 가양산제일농장은 지열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을 도입해 난방비를 80% 절감했다. 2억8000만원이던 소득은 시스템 도입 이후 4억7000만원으로 급증했다.
난방비 줄고, 생산량 늘어나
국내의 시설원예 산업은 규모면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난방연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원 자체도 고갈이 예견되고 있으며 더욱이 국내 시설온실의 난방비가 생산비의 약 30~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열 히트펌프 시스템의 개발은 경제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인 대체에너지를 이용, 시설원예의 냉·난방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스템은 땅속이 겨울철에는 따뜻하고, 여름철에는 시원하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철에도 대략 땅속 30cm 밑으로만 내려가도 얼지 않고, 땅속 3~5m 깊이에서는 지온이 가장 낮은 시기에도 그 온도가 영상 10~15도 정도를 유지한다. 또 지온이 가장 높은 시기에도 영상 15~20도를 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지열은 태양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한결같은 지속가능한 에너지다. 전 세계적으로 주택·산업용 등으로 130만여대가 보급돼 있다. 이 시스템은 땅속에서 열을 획득하는 열교환시스템과 이 열을 이용해 냉·난방을 하는 히트펌프, 그리고 냉·난방이 필요한 온실의 공간을 최소화하는 보온터널 온실로 구성돼 있다.
난방 원리는 이렇다. 먼저 땅속 3m 깊이에 열교환 파이프를 촘촘히 매설한 뒤 물을 순환시킨다. 따뜻한 지열을 흡수한 물을 히트펌프의 증발기(냉방의 경우 응축기)로 영상 40~50도까지 증폭시켜 난방에 이용한다. 식어진 물은 다시 땅속으로 내려가게 되는 순환시스템으로 돼 있다. 여름에는 시설 내부의 열을 땅속으로 방출해 온실 내부를 냉방한다. 이 시스템의 설치로 냉·난방이 한 번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땅속 지열을 끌어올리는 열교환시스템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돼 있다. 낮 동안에는 일사량으로 인해 온실의 온도가 올라가면 그 잉여열을 땅속으로 순환시켜 다시 저장할 수 있다. 또 온실 내에 보온 터널을 설치하면 공간을 최소화해 냉·난방 부하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냉방, 난방, 온수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경유 대비 난방비를 70~80% 절감할 수 있고, 생산성은 30% 정도 높일 수 있다. 초기 투자비(1000㎡ 기준 약 1억원)가 많이 들어가지만 3~5년이면 회수가 가능하며, 연간 900시간 이상 난방이 필요한 작목에 더욱 적절하다.
이 시스템은 냉·난방 부하량에 따라 땅속에 매설되는 면적, 히트펌프의 크기만 차이가 있을 뿐 어떤 크기의 온실이든지 설치가 가능하다. 설치 시에는 먼저 땅속에 열교환 파이프를 매설하고 그 위에 온실을 신축하면 된다. 열교환 파이프의 수명은 40~50년으로 반영구적이다.
김영철 시설원예시험장장은 “초기 투자비용을 낮출 수 있는 설치공정 개선 등 기술을 보완하고 있으며, 설치 대상 온실의 에너지 진단을 통한 이용기술을 지도하고 있다”며 “시설원예뿐 아니라 돼지축사, 양계장 등으로 시스템 설치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온실 에너지 절감을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순환식 수막재배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순환식 수막재배 시스템은 비닐하우스 안에 추가로 비닐지붕을 설치하고 그 위에 지하수를 뿌려 복사열의 손실을 막는 시설이다. 물이 보온커튼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 번 사용한 지하수를 재활용하기 때문에 지하수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수막재배가 가능하다. 수막재배 보급면적은 전체 시설면적의 2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전체의 난방 재배에 소요되는 유류비는 대략 1조2000억~1조4000억원 수준으로, 이 중에서 수막재배로 대체되는 비용은 연간 3000억~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한 에너지 절감 기술 개발·보급
농진청은 온실의 보온력을 극대화시킨 패키지 모델을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다겹 보온커튼, 축열 물주머니, 보온터널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다겹 보온커튼은 기존의 두께가 얇은 보온커튼을 개선해 부직포, 폴리폼 등을 여러 겹으로 누빈 솜이불 형태의 다겹 보온자재를 활용해 보온력을 극대화했다. 온실 상부와 전후면 등 사방을 완전히 밀폐하기 때문에 보온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기존의 부직포 커튼에 비해 난방비가 46%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겹 보온커튼은 보온커튼의 설치가 어려워 열 손실이 많은 단동형 비닐하우스에 설치하면 효과가 크다. 비닐하우스 양쪽 측면에 2개의 모터를 설치해 중앙부로 말아 올리거나, 중앙부에서 양쪽 측면으로 늘어뜨리는 형태로 설치할 수 있다. 40%의 난방 에너지가 절감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환기를 할 때 배출되는 열을 이용해 외부에서 유입되는 찬 공기를 가열해 난방하는 열회수형 환기장치, 온풍난방기를 가동할 때 배기가스와 함께 버려지는 폐열을 난방에 다시 이용하는 온풍난방기 배기열 회수장치, 일사량에 따라 온도관리를 달리하는 일사량 감응 자동 변온관리장치 등이 농진청이 개발한 주요 에너지 절감 기술이다.
Mini Interview | 김영철 농진청 시설원예시험장장
“농가 부담 해소·경쟁력 강화 위해 에너지 절감 필수”
“농촌진흥청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농가의 부담을 해소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보온력 향상 패키지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김영철 농진청 시설원예시험장장은 “시설원예 경영비 중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거의 2배 수준”이라며 “시설원예 경영비의 40%에 달하는 유류 중심의 난방비 부담을 낮추지 않으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이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다겹 보온커튼 장치 등 에너지 절감시설 보급 확대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난방비만 줄여도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겨울철 난방 에너지를 절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온실에서 새어 나가는 열 손실을 줄이는 겁니다. 그리고 사용하고 있는 난방 시스템의 이용 효율 개선이나 신기술 적용을 통해 난방비를 줄여야 합니다. 에너지 절감 기술을 선택할 때는 재배작물의 특성과 하우스 시설 상황을 토대로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농진청은 최근 기존의 단위 개발 기술을 패키지화해 보온력을 극대화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온실 에너지 절감을 위한 다양한 보온력 향상 패키지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 현장 실증연구를 추진하고 있다”며 “난방비 부담의 가중으로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시설재배농가에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