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도전, 그리고 기회는 같은 말이다.”
사와다 히데오(澤田秀雄) HIS그룹 회장에게 여행은 삶이자 비즈니스다. 실패한 기업들도 손만 대면 부활시키는 카리스마 최고경영자(CEO)의 경험에서 우러난 철학이다.

그는 버블붕괴와 금융위기의 어두운 터널에 갇힌 일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난부 야스유키 파소나그룹 회장 등과 함께 ‘3대 벤처 CEO’로 불리는 유명인물이다. 자수성가로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룬 그는 청년창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살아있는 성공모델이다. 

사와다 회장의 성공기반이자 주력사업은 JTB에 이어 일본 2위의 종합여행사인 HIS다. 지난 1980년 자본금 1000만엔으로 HIS를 창업했다. 설립 후 공격적인 성장전략을 고수하며 ‘전설’을 써왔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초저가 항공권을 개인에게 판매하는 아이디어로 성장발판을 다졌다. 30년 전 70만엔의 도쿄~런던 왕복티켓을 현재 8만엔 언저리까지 떨어뜨린 주역이다. 대형여행사·항공사의 견제가 거셌지만 젊은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전체 규모는 JTB보다 적지만 일본의 해외여행 취급 규모로는 1위다.

향후 전망은 더 밝다. 종합여행사인 HIS를 감싸는 다양한 계열회사들의 포진양상이 시너지를 내기에 충분해서다. 우선 업계 4위인 저가 항공사 스카이마크를 보유하고 있다. 여행사가 항공사를 보유한 경우는 드물다. 호텔사업은 워터마크(Watermark)로 불리는 브랜드를 호주, 삿포로, 나가사키 등에서 운영 중이다. 최근엔 약점이던 국내여행 비즈니스를 키울 수 있는 테마파크(하우스텐보스)까지 산하에 끌어들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사업을 뒷받침할 금융회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HIS는 대형여행 레저그룹의 면모를 완벽히 갖췄다. 현재 HIS그룹은 여행·항공·호텔·테마파크·금융 등을 아우르는 사업모델을 갖췄다. 자회사 51개사를 비롯해 모두 83개사의 그룹 계열사가 개별영역을 전담한다. HIS의 경우 국내 265개와 93개 도시·118개 지점망(2012년 10월 기준)을 갖추고 있다. 사와다 회장은 2004년 HIS 회장에 오른 뒤 2010년부터 하우스텐보스 등의 사장도 겸직 중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는 2003년 경영파탄의 위기까지 겪었지만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취임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흑자로 돌아섰다.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는 2003년 경영파탄의 위기까지 겪었지만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취임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흑자로 돌아섰다.

초저가 항공권 앞세운 파격 마케팅으로 ‘대박’
그는 많은 사람이 세계로 나가 많은 걸 보고 많은 이들과 만나기를 원해 여행사를 차렸다고 한다. 이를 위해 ‘합리적인’ 가격의 해외항공권을 판매하겠다는 전략을 고수했다. 회사는 이후 위협적인 고정관념과 집중견제를 받으며 다양한 도전을 반복해왔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특화된 저가전략이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HIS의 강점은 저가비용을 선호하는 젊은층들의 개인여행으로 요약된다. 회사도 젊고 활기차다. 창업자만 빼면 청년벤처 냄새가 물씬 난다. 회사경영도 20~30대가 중심이다. 그는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HIS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하우스텐보스 등 다른 업무에 매진 중이다. “뛰어난 차세대가 좋은 뜻으로 좋은 사업을 전개하는 게 나의 이상에도 맞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내세운 현실의 안주를 거부하는 그는 어느 인터뷰에선 일찍 은퇴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사와다 회장이 ‘기업부활의 명인’이 된 것은 18년 연속 적자의 불명예로 부도위기에 몰린 하우스텐보스를 1년도 안 돼 흑자로 전환시킨 뒤부터다. 하우스텐보스는 2200억엔을 들여 1992년 나가사키(長崎)의 사세보(左世保)시에 개원한 유명한 테마파크다. 하우스텐보스는 방문객 중 절반 가량이 한국인일 정도로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놀이동산이다. 디즈니랜드의 1.5배에 달하는 광대한 부지에 네덜란드 거리를 재현해 유명해진 곳이다. 큰 관심 속에 오픈했지만 개원시점이 버블붕괴 때라서 처음부터 고전했다. 단 한해도 흑자를 내지 못한 채 2003년 경영파탄에 들어갔다. 다양한 재건시도가 이뤄졌지만 매번 실패했다. 재건프로팀인 노무라조차 출자금을 100% 감자하며 쓸쓸이 떠났다. 장기적자로 인재는 유출됐고, 평균연령은 높았으며, 회사엔 패배감만 남았다. 흑자의 꿈은 요원했다. 지역사회에선 포기뿐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유·무료 지역 구분, 스피드경영으로 하우스텐보스 성공
이런 절망스런 상황에서 사와다 회장이 나섰다. 마법은 바로 시작됐다. 말썽쟁이 회사는 2010년 그의 사장 취임 이후 1년도 안 돼 흑자로 돌아섰다. 이는 예상 밖이었다. 기업재생 전문가의 타이틀이 확고해지며 그의 명성을 널리 각인시켰다.

무엇보다도 사와다 회장은 공원을 무료 및 유료지역으로 나눠 무료지역엔 벤처기업을 불러들이는 등 테마파크에서의 탈출전략을 채택했다. 또 테마파크의 3분의 1은 무료지역으로 뒀다. 입장료도 20% 낮췄다. 뮤지컬·경매판매·퍼레이드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강화한 것도 주효했다. 여행객을 잘 아는 여행사가 이들의 눈높이에 시설·서비스를 맞춘 덕분이다. 개업 20주년인 2012년 현재 튤립제 등 다양한 신규기획이 호평을 받으며 매출액 75억엔, 영업이익 12억엔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28%, 481% 향상된 성적이다.

그는 한 달의 절반을 하우스텐보스에서 지낸다. 사장실이 아닌 대형사무실에서 직원과 함께 일하며 현장을 지킨다. 이유는 ‘스피드경영’의 실천을 위해서다. 그는 “경영에는 스피드가 중요하다”며 “스피드를 20% 올리면 비용이 20% 감소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제조업에나 있음직한 현장력은 이렇게 확대돼갔다. 임직원은 신규시설·이벤트 체크 때의 지적사항을 그 자리에서 개선한다. 보다 좋은 서비스를 위한 즉좌대응(卽座對應)은 스피드경영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중대 계기가 됐다. 그는 “스피드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벤처기업이라면 반드시 품어야 할 경영도구”라고 평한다. 결단이 빠르면 비록 선택이 틀렸어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본기를 다지는 3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청소다. 모두 아침에 15분이라도 청소해 늘 청결을 유지하게끔 했다. 또 하나는 매출·이익을 늘리기 위해 경비를 줄일 것을 강조했다. 마지막은 거짓이라도 좋으니 밝고 힘차게 일하라는 주문이었다. 이후 패배감이 감돌던 현장은 거짓말처럼 흑자달성에 성공했다. 청소와 긍정은 그렇다 해도 경비절감은 사실 힘들 수 있다. 18년의 적자 시절에 충분히 아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이때 사와다 회장은 한층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직원을 움직였다. “비용이 줄지 않으면 1.2배 속도로 일하자”는 안이었다. 1.2배 빨리 일하면 효율이 그만큼 늘기에 결국 인건비 절감효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잔업이 줄고 아르바이트를 줄여도 된다는 계산이었다.

사와다 회장은 현재 또 다른 실험을 하는 중이다. 손님은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이를 유지·증가시키기 위해서는 특유의 토착상권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나가사키는 도쿄상권의 20분의 1에 불과해 일본 고객을 확보하기 힘든 상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나가사키와 상하이를 잇는 배다. 아시아 고객을 위한 러브콜인 셈이다. 운임은 7800엔으로 파격가다. 30억엔을 출자해 도쿄보다 가깝고 잠재 고객이 넓은 중국 고객을 잡으려는 포석이다. 회사판 ‘아시아태평양 시대 개막’이다.

동아시아 벤처기업들과의 연대로 상호발전
해외진출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일찍부터 한국·중국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2008년부터 아시아지역의 젊은 경영인들이 모인 ‘아시아경영자연합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해 현재 이사장으로 있다. 주로 벤처기업인이 많으며 회원사가 600개사에 육박한다. 이 조직은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닌 상호발전을 위한 구심점을 지향한다. 2003년부터는 몽고의 AG은행 회장까지 맡았다. 국영은행의 민영화 때 몽고요청으로 자본투자에 나서 지금은 440개 지점을 갖춘 1위로 키워냈다. 시장점유율(국내) 40%의 몽고 캐시미어 공장의 경영에까지 참여 중이다. 이리저리 동아시아와 연결고리가 많은 경영자다.

그의 회사투자(경영참가) 기준은 3가지다. 사회공헌, 성장성, 경영센스 등이다. “경영자가 경영철학을 확실히 지키며 사회적 의의에 공유하는 성장성까지 갖췄다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공격 지향적이지만은 않다. “바람이 불 때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지론처럼 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그래서 ‘밸런스 경영’이 도출된다. 국가·기업·건강 등 모든 게 음양조화로 움직이듯 그 밸런스를 잃어버릴 때 무너진다고 본다. 때문에 회사경영은 그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약점을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급성장이야말로 밸런스를 무너뜨릴 리스크를 내포했기에 지양 대상이다.

회사의 기업문화는 크게 4가지다. 스피드, 정열(프로의식), 커뮤니케이션, 능동성이다. 신입사원은 이를 입사초기부터 강도 높게 몸에 익히며 각종 연수를 거쳐 승급하는 과정을 거친다. 회사급여는 신입사원의 경우 종합직이 16만5000~19만5000엔이다. 1년에 1회 보너스가 지급되며 이 밖에 주택수당, 가족수당, 통근수당, 직역수당, 자격수당 등이 제공된다. 연간 변형근로제가 적용돼 원하는 시간대에 근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오전 9시45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근무하지만, 일하는 엄마를 위한 지원제도로 ‘마마초이스’도 운영 중이다. 단시간근무, 육아휴가 기간연장(최장 2년까지 이유 불문 연장가능), 이중보육보조 등이 대표적인 선택지다. 특히 이중보육보조는 풀타임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양육비를 추가로 제공하는 제도다. 

Tip  |  CEO연구 - 사와다 히데오 HIS그룹 회장

여행이 마냥 좋은 ‘긍정 바이러스의 전파자’

사와다 회장은 독일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50개국 이상을 여행하며 여행관련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사와다 회장은 독일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50개국 이상을 여행하며 여행관련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사와다 히데오 HIS그룹 회장은 1951년 상업도시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은 스스로의 고백처럼 평범한 소년이었다. 다만 호기심만큼은 대단했다. 그래서 이를 풀어주는 여행을 어릴 적부터 선호했다. 전국여행을 떠나거나 자전거로 특정지역을 일주하는 데 몰두했다. 부모는 과자제조업을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본인은 그게 싫었다고 한다. “늦게까지 일하거나 사업이 힘들어진 때를 보고 훗날 결코 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고.

그의 인생을 바꾼 건 독일유학이다. 굳이 미국·영국보다 독일을 고른 건 그의 반골기질도 적잖이 기여했다. 여행관련 전문지식은 독일(마인츠대학)유학 때 쌓여졌다. 유학 중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유럽·중동·아프리카·아시아 등 50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이때 처음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여행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일본인 여행객이 많이 묵는 호텔에 본인이 만든 팸플릿을 뿌리며 독자적인 여행코스를 발굴하고 모색했다. 독일어를 아는 일본인이 적었기에 인기가 대단했다. 월 100만엔을 버는 호시절이었다. 이후 여행을 떠났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이런 아르바이트를 반복했다. 그의 표현처럼 ‘학생벤처’였다.

비즈니스의 맛은 일찍 깨달았다. 이 와중에 오일쇼크로 주가가 급락하자 주식투자에도 나섰다. 폭락 때 사들였으니 엄청난 이득을 봤다. 이게 귀국 후의 사업종자돈이 됐다. 귀국 후 샐러리맨 경험 없이 모피수입을 위해 회사를 차렸다. 역시 무역업이면 여행을 많이 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런데 당시 워싱턴조약으로 모피수입이 힘들어졌다. 업종 변경이 필요했다. 그때 할인항공권 판매를 중심으로 한 항공권·호텔을 조합한 여행에 승부수를 던졌다. 규제로 설정된 고가정책 탓에 여행객이 불필요하게 고가경비를 떠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히트상품은 인도 자유여행이었다. 여행정보를 알차게 제공해줘 호평을 얻었는데 이게 입소문을 타 대박을 터뜨렸다. 여세를 몰아 1993년엔 신주쿠에 3560㎡(약 1077평)짜리 국내 최대급 점포까지 열었다. 이후 주식상장(1995년)으로 모은 공모자금을 호텔·항공·증권 등의 공격적인 확장행보에 투입해 거물급 CEO로 급부상했다.

그는 사실상 준비된 CEO다. 특유의 낙관론과 적극적인 도전정신이 맞물려 후퇴 없는 전진을 반복했다. ‘카리스마 경영자’는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스스로 모범적인 CEO로서의 길을 걸었다. 30년 동안 단 한번도 아파서 휴가를 낸 적이 없다. 아파도 “괜찮다. 좋다”라는 자기암시를 반복하며 묵묵히 걸어왔다. 동시에 그는 긍정 바이러스의 전파자다. “어두운 사람도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긍정적인 단어를 쓰면 점차 낙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 = 비즈니스’의 지론을 가졌다. 멀리 있는 낯선 나라를 홀로 여행하는 것은 모험이자 도전이고 이것이 바로 일상적인 비즈니스와 닮았다는 생각인 것이다. 인생을 걸고 본인의 가능성을 시험한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은 아니다. 필요하면 본인보다 나은 외부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외친다. 경영철학·사업정책은 확실히 주도하되 경영에 관해서는 외부프로가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주업으로 고른 데 후회는 없다. 여행이든 놀이동산이든 모두 평화산업이다. 동시에 건강산업이자 커뮤니케이션산업이다. 일상탈출로부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활력을 얻을 뿐 아니라 지역에도 활력을 나눠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179㎝, 80㎏의 거구다. 평균 6시간을 자며 오전 6시40분 기상이 원칙이다. 또 역사책을 즐긴다. 지금까지 70개국을 방문했고 자연의 섭리를 중시한다는 좌우명을 가졌다. 존경하는 경영인은 마츠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쇼이치로(本田宗一郞) 등 일본적 경영모델의 창시자들이다. 2011년 현재 1대 주주(29.59%)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