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현대차그룹이 성수동에 110층, 540m 높이로 짓는 ‘서울숲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와는 별도로 또 다른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유포됐다. 이른바 ‘W(더블유)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사업은 서울 원효로4가에 위치한 1만3200여㎡(4000평) 규모의 옛 현대자동차써비스 본사 부지 개발을 말한다. 증권가와 부동산개발업계에 퍼진 소문의 골자는 현대차그룹이 서울시의 반대로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건립이 난항을 겪자 대안으로 원효로 사옥 개발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에서 국내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A전무를 단장으로 현대건설, 현대엠코 등 2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고 한다. 현재 개발과 관련해 주목받는 이 부지에는 현대차 서비스부문 원효로 직영센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옛 현대자동차써비스 본사로 쓰였던 원효로 사옥은 현대차 서비스관련 부서, 현대엠앤소프트, 한국부품산업진흥재단 등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 부지는 바로 옆에 원효대교가 있어 여의도로 진입하기가 수월하며, 앞으로는 강변북로가 자리 잡고 있다. 부지만 놓고 보면 지리적인 여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강이 바로 앞에 있는 데다 국제금융지구로 개발되는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다.
원효로 사옥은 현대차그룹에게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970년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이 원효로 사옥에 있었던 현대차 서울사업소장직이었다. 이후 정 회장은 현대건설 자재부장, 현대자동차 이사를 거친 뒤 1974년 현대차 서울사무소를 현대자동차써비스로 독립시키면서 처음 회사경영에 나섰다. 당시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사옥으로 쓴 곳도 지금의 원효로 사옥이다. 현대차써비스는 지난 1999년 현대차에 합병됐다.

성수동 초고층 개발 막히자 용산으로 턴?
그런 면에서 현대차그룹이나 정 회장에게 원효로 사옥과 일대 땅은 오늘날 현대차의 번영을 만든 성지(聖地)와 같은 곳이다. 지난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태 당시 검찰이 정 회장의 비밀금고가 있을 거라고 보고 압수수색한 곳도 당시 글로비스가 본사로 쓰고 있던 원효로 사옥이다. 이런 이유로 정 회장은 평소 원효로 부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룹 총수와 회사의 도약이 시작된 곳인 만큼 실무선에서 개발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중견 부동산개발업체 대표는 “현재 현대차 서비스 직영센터는 동부(성수동), 서부(양평동), 남부(대방동), 북부(방학동) 등 권역별로 위치해 있어 지금의 원효로 직영센터는 위치가 어정쩡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2000년대 중반부터 부지 개발과 관련해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개발명인 ‘W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관련업계에서는 원효로(Wonhyoro)의 영어 알파벳 맨 앞 글자를 따 만들었다는 것과 한강과 관련짓기 위해 워터(Water)에서 착안했다는 것, 기존 성수동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의 서쪽(West)에 있는 부지라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등 해석이 분분하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W프로젝트와 관련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증권가에 돈 소문에 불과할 뿐 개발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권용준 현대차그룹 홍보팀 차장은 “현재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어떤 것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개발과 시공을 책임졌다고 알려진 현대건설 쪽 반응도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룹 수뇌부 선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것일 뿐 조직 구성과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은 전혀 없다”면서 “증권가 소문에 거론되는 A임원도 지금은 국내영업본부장이 아닌 다른 보직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현대건설 관계자도 “당장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개발을 검토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부문별 분산된 현대차 통합사옥 필요
그럼에도 이 부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원효대교를 가운데로 놓고 바로 맞은편에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기존 철도기지창이 있을 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철도관련 시설이 있어 원효로 사옥 부지만 단독으로 개발하는 것은 효과가 크지 못하다. 그러나 서울시와 코레일, 여기에 민간자본이 투입돼 개발되는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울의 무게중심을 뒤바꿀 강력한 개발호재다. 현재 지역민 보상과 자금 조달 등 개발 방식을 놓고 개발주체인 용산역세권개발 내 이견이 심화되고 있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추진만 된다면 인접 단지로서의 효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국제업무지구와 가까워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현대차그룹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재계에서 통합 사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다. 한 대형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 임원은 “양재동 사옥의 경우 근무 직원 대비 업무공간이 좁은 대표적인 건물”이라면서 “현대차가 성수동에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하려는 것도 통합사옥용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0년 농협으로부터 건물을 매입한 이후 지금까지 양재동 사옥을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대차만 해도 해외영업부문은 양재동 사옥, 국내영업부문은 종로구 계동 사옥, 기술개발부문은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 서비스부문은 원효로 사옥으로 분산돼 있다. 아직 이 부지 개발과 관련해 행정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건축심의를 담당하는 용산구청 도시계획팀 유경무 주무관은 “현대차로부터 부지 개발과 관련해 어떤 내용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원효로 사옥 인근 부지는 2종 일반주거지역, 일반상업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상업지역은 용적률 기준이 600~700%지만 2종 일반주거지역은 현행 기준대로라면 7층 이하로만 건축이 가능하다. 비율은 2종 일반주거지역 비중이 높다. 결국 개발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종 상향이 불가피하다. 또 한강과 인접해 있다는 점도 경우에 따라서는 복잡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부지 면적도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의 절반 수준이어서 그룹 전체가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