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기울면 다음 세대가 가장 고생한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55%를 넘어섰다. 나라 경영을 책임진 어른들의 잘못을 송두리째 후세대 청년들이 뒤집어 쓴 꼴이다. 경제성장률은 하락하고 국민은 노령화하는데, 나라의 씀씀이는 예전처럼 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벌어들이는 것보다 쓰는 게 많다 보니 곳간이 비었다. 신규투자와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문제의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 재정적자로 늘어나는 복지비용을 감당하자면 국가부채는 늘어나고 나라경제는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국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에 육박하거나 넘는 대부분의 남부 유럽 국가들이 이런 악순환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경제가 3년 연속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약 계층이 늘어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복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바쁘게 기다렸다는 듯 복지법안들이 국회에서 의결되거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국가의 장래가 걱정되긴 하지만 눈앞의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12년 기준으로 GDP 대비 복지비 비중이 아직은 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1.7%)보다 낮은 상태다. 하지만 복지제도는 한번 도입하면 그만두기가 힘들 뿐 아니라, 한국처럼 노령화가 급진전하는 구조에선 그 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더구나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축적해 놓은 자본이 없으므로 금방 거덜날 수도 있어 제도의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길어질수록 저소득층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경기대책은 저소득층·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정책에 치우치게 된다. 사회보장성 대책의 문제는 대증요법으로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는 실상을 왜곡시킨다. 지난해처럼 경제성장률은 2% 가까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데 신규 일자리는 늘어나 경기회복으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처럼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 사이의 마이너스 갭이 커지는 상황에선 단기적인 사회안전망과 함께 장기적인 경기대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더 절실하다.     

선진국들이 앓고 있는 저성장·부채증가의 악순환을 피하는 지름길은 없다. 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복원하고 투자를 확대해 경제를 살리는 길밖에 없다. 일자리는 성장의 결과물이다. 일자리를 나누고 정년을 연장하고 임시직을 늘리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등의 일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엔화를 찍고 국가재정을 풀어서라도 기업을 살리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세계 시장에서 잊혀져가는 전자, 기계 등 제조업체의 부활을 통해 저성장·부채증가의 고리를 끊어보겠다고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2기 오바마노믹스의 핵심은 제조업 부활을 통한 경제부흥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쌍둥이적자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는 경쟁력 있는 기업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산업의 경쟁력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의 ‘세계제조업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2010년 3위에서 현재 5위로, 5년 뒤엔 6위로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들은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산업이다. 지속가능한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우리 서비스업이 고용의 67%를 차지하고 고용유발계수도 11명으로 제조업(6.7명)보다 높다고 제조업을 경시하면 안 된다.

얼마 전 미국 출장길에 만난 조지아주 상원의원은 3000명을 고용한 완성차업체가 9000여개의 협력업체 일자리를 만들었고, 또 이들 공장을 지원하는 학교, 병원, 음식점 등에 서비스업 일자리가 3만여개 만들어졌다며 고맙다는 칭찬으로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지금의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진단하고 일자리 만드는 것을 핵심과제로 들고 있어 다행이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은 억지로 나누는 일자리보다는 성장을 통해 만들어진 지속가능한 일자리임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