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은 양면성을 가진 일본 문화 원형과 일본인의 기질을 잘 분석한 스테디셀러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자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가 ‘고귀함’과 ‘평화’를 뜻한다면 칼은 내면에 숨겨진 일본인의 또 다른 기질이다. 최근 아베 내각의 경제 정책을 보면서 새삼 국화와 칼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길고 긴 불황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수출에 목숨 건 일본 기업들은 ‘엔고’라는 미로 속에서 끝 모를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미국·유럽연합(EU) 등 다른 선진 국가들이 ‘양적완화’라는 초강수를 쓸 때도 일본의 손에는 ‘국화’만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본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국제 공조를 통한 불황 타개를 외치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아베 정부의 통화정책(엔저)은 주변국, 그중에서도 우리 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화정책은 잘만 쓰면 입에는 달지만, 과다복용하면 몸을 망치게 만드는 설탕과같은 존재다. 자칫 ‘나라 빚잔치’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아베노믹스를 ‘위험한 승부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아베노믹스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퇴로는 없다. 냉혹한 글로벌 경제에 아베 총리의 노림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한국 경제에는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지 2013년 세계 경제는 또다시 소리 없는 총성의 격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불편한 진실

‘엔저 무기’로 경제 회복 총공세…
 세계 경제 뒤흔드는 ‘왝더독’

일본의 엔저 정책이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환율 인하 경쟁을 자제하면서 글로벌 경제 극복에 힘써왔던 주요 국가들도 일본 정부 발표 이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에 암울한 소식이다. 그동안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 데는 엔고가 일조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상황이 역전되면서 이제 막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녹록지 않은 험로와 맞닥뜨린 모습이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 경제정책)의 향배에 대해 짚어봤다.  

한마디로 말해 ‘거침이 없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다. 지난해 말 취임한 아베 총리의 행보는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총리 시절과 비슷하다. 아베 총리의 광폭 행보로 세계 금융시장의 2부 리그였던 일본은 단숨에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일본 국민들로선 당연히 자신감이 회복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중앙은행 굴복시킨 강력한 통화정책
“새 정권에 부여된 사명은 무엇보다 강한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연초부터 대담한 금융완화,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유발할 수 있는 성장전략에 내각의 역량을 총동원해 강력하게 추진하겠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1일 신년사(연두소감)에서 “동일본 대지진 복구 지체와 장기간 계속되는 디플레이션으로 일본은 지금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구체적으로 경제, 교육, 외교 정책을 다시 세워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중에서도 아베 총리가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한 것은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 부활이다.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세계 금융시장에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총리 재임 때도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려 했다.

지난해 ‘강한 일본 부활’을 내걸고 치른 일본 총선에서 압승한 덕분에 아베 총리는 경제 회복을 위해 정책적 수단을 모두 쓸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취임 직후 금융완화로 대표되는 통화정책은 물론 경기 부양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선결과제로 내걸었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 “내 말을 듣는 사람을 일본은행(중앙은행) 총재에 앉히겠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일본은행법도 고치겠다”고 말하면서  풀이 죽은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은 예상보다 빨리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2월2일 기준 일본 도쿄1부증시(TOPIX) 주가는 아베 총리 취임일(지난해 12월26일)과 비교해 11.3%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업종별로 철강(18.70%), 운송(17.89%), 광업(16.75%), 해운(16.25%) 등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반응도 예상을 뛰어넘는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지난해 9월 말 이후 달러 당 엔화는 금세 77엔에서 80엔대를 뛰어넘더니 2월19일 현재 95엔대에 근접해 있다.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아오던 엔고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면서 일본 경제에 해갈의 기미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새해 들어 일본 경제가 이토록 달라진 이유는 막대한 재정지출 효과 탓으로 풀이된다. 지난 1월22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상향조정하고 통화완화 조치인 자산매입과 관련해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제한으로 실시키로 해 아베 정부와 정책적 보조를 같이했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때까지 국채를 계속 매입, 인위적으로 엔화가치를 떨어트려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계획이 발표되자 일본 내부를 비롯해 국제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 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아베 정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당초 3월 물러날 예정이었던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가 앞당겨 사임을 발표하는 등 아베 정부의 강경 노선에 한발 물러선 상태다. 급기야 아베 총리는 최근 의회에서 2%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법을 바꿔서라도 일본은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해 당분간 엔화 약세 정책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20년 불황 끝낼 ‘마지막 카드’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아베 정부는 엔화 약세 카드를 꺼내든 것일까. 그 배경에는 지난 20년간 계속된 일본 경제 침체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985년 주요 5개국(G5) 중앙은행 총재들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춘 역사적 사건인 ‘플라자 합의’로 달러당 230엔 대였던 엔화 가치가 20엔 대로 급락하면서 촉발된 엔고는 20년 이상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아 왔다. 엔고는 특히 일본 수출기업들의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오늘날 일본 주요 수출 산업이 한국, 대만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당하고 있는 것도 엔고로 인한 결과다. 특히 지난 2008년 리먼 사태로 촉발된 국제 금융위기는 일본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일본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는 분석도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정권을 잡은 민주당 정부가 다양한 복지정책을 펴며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했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자민당 정부가 전임 민주당 정부와 반대로 ‘복지’에서 ‘성장’으로 경제정책 중심을 옮기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시대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렇다 보니 일본 내 분위기는 현재 한껏 고무돼 1월 소비심리 설문조사 결과는 2004년 조사를 실시한 이래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아베 총리의 경제 브레인으로 불리며 차기 유력 일본은행 총재로 거론되고 있는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는 최근 일본 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신간 <미국은 일본 부활을 알고 있다>에서 “2008년 전후를 비교해 볼 때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화와 원화의 비용 차이는 60% 벌어졌는데 이것이 고스란히 일본 수출기업들의 부담인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가 회복될 수 있겠는가”라며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 자세한 내용은 이코노미플러스 3월호 58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