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러기 아빠 이모씨(40)는 지난달 원에 대한 달러 환율이 1050원대까지 떨어졌을 때 외화예금에 목돈을 넣었다. 원화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환율이 1100원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꽤 저렴한 가격에 달러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환율은 급반등해 1090원대까지 올랐다. 이씨는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달러를 사두고 유학 중인 아이가 필요할 때마다 보내고 있다”며 “해외 송금이 주목적이지만, 훗날 달러 가치가 올라 환차익을 얻을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해 넉넉히 사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 강세로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다가 외국인 자금이 자금 시장에서 일시 이탈하면서 다시 급등하는 등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해외 자금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은 일반인들도 외화예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학이나 해외여행 때 필요한 외화를 쌀 때 미리 저축할 수 있고, 향후 원화가 약세가 됐을 때 팔면 수익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 투자는 전문가들도 주식보다 더 투기적이라고 말할 만큼 어렵고 변동성이 크다. 살 때 환율과 팔 때 환율이 다르다는 점, 선진국 통화들은 대체로 이자율이 낮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통상 시장에서 ‘환율이 오늘 얼마에 마감됐다’고 할 때 적용하는 환율은 ‘매매 기준율’이다. 이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환이 거래될 때 기준이 되는 환율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은행에서 외화를 사고 팔 때 적용되는 환율은 다르다. 현찰을 사고 팔 때는 ‘현찰 매도·매입률’, 계좌에서 계좌로 이동할 때에는 ‘전신환 매도·매입률’을 적용한다. 여기에서 ‘매도’와 ‘매입’은 은행 입장에서 쓰이는 용어로, 고객이 외화 현찰을 살 때는 은행 입장에선 현찰을 파는 것이므로 ‘현찰 매도율’이 적용된다. 통상 전신환 매매를 할 때는 현찰을 매매할 때보다 매매 기준율과의 차이가 좀더 적은 편이다.
예를 들어 원·달러 매매 기준율이 1000원일 경우, 1달러를 현찰로 살 때 1020원 정도를 주고 사야 하지만, 외화예금으로 이체만 하는 경우라면 1010원 정도만 주고 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이 외화 현찰을 관리하는 비용을 환율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달러를 팔 때는 반대로 1달러당 980원 정도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계좌에서 계좌로 이동할 때엔 990원 정도로 쳐준다. 결국 외화예금을 재테크에 활용할 경우 현찰을 찾지 말고 계좌에서 계좌로만 이동하면서 전신환 매매율을 적용받는 것이 유리하다.
은행에서는 주거래 고객이나 VIP 고객에게 환율 우대를 해주는데, 자신이 어느 은행에서 어느 정도 우대를 받을 수 있는지 파악하고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은행이 환전 수수료를 40% 우대해준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은행은 매매기준율과 전신환 매매율의 차이만큼을 수수료 성격으로 떼어 이익을 남기는데 이 차익의 40%를 할인해줬다는 의미다. 달러의 매매기준율이 1000원, 전신환 매도율이 1010원일 때 그 차액인 10원 중 4원을 깎아주고 6원만 받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고객은 월급통장에서 외화예금 통장으로 달러를 입금하면서 달러당 1006원의 우대 환율을 적용받게 된다. 반대로 달러를 팔 때에는 전신환 매입률 990원에서 우대가 적용된 994원의 가치를 얻게 된다.

초저금리 감안해 투자 수익 따져야
만약 환율 변동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달러를 외화예금에 넣었다가 다시 일반 계좌로 옮길 경우, 그 행위 자체만으로 12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40%의 우대 환율을 적용 받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원·달러 환율이 12원 이상 오르지 않을 경우 투자 측면에선 손해다. 외화예금을 재테크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김영호 하나은행 대치동 PB센터장은 “은행들이 설정하는 환율 수수료는 외환시장이 열려 있는 오전 9시~오후 3시보다 마감 이후에 조금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환율 변동폭이 적은 날이라면 시장이 열려 있는 때 거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것 말고도 기회비용은 또 있다. 달러나 엔화, 유로 등 3대 선진국 통화가 모두 각국 당국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정기예금 금리가 1% 안팎으로 낮다는 것이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외화예금의 경우 0.2~0.3%로 원화 수시 입출금 계좌와 비슷하다. 하지만 1년 이상 정기예금이나 적금의 경우 원화는 3%대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차이다. 최현호 외환은행 차장은 “이런 점 때문에 수출입 대금을 자주 결제해야 하는 기업이나 해외에 송금을 자주 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들처럼 실제 수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환율 변동은 예측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1년 이상 돈을 묶어두기보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 두는 것이 환율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3% 금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통장에 넣었을 경우, 1년 후에는 세금 15.4%를 제한 25만3800원을 이자로 받을 수 있다. 만약 1000만원을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외화예금에 넣었다면 어떨까. 전신환 매도율이 달러당 1000원일 경우 1만달러가 계좌에 입금될 것이다. 1년 후 이자는 세금을 떼고 나면 25달러 정도(금리 0.3% 기준)로 미미한 수준이다. 1만25달러를 얼마의 환율에 원화로 바꿔야 손익 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까. 계산을 해보면, 전신환 매입률이 1022.8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매매 기준율이 전신환 매매율보다 통상 10원 정도 차이가 있다고 보면, 가입 시점에선 매매 기준율이 990원, 1년 후에는 1033원 정도가 될 것이다. 결국 기준 환율이 1년 사이 43원 오른 경우에만 손해를 겨우 면할 수 있다. 외화예금에 투자한다면 환율 변동에 대해 수시로 관심을 기울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원·달러 환율 올 연말 1035원 예상
그렇다면 그동안 환율은 언제 얼마나 움직여왔을까.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2월8일 1095.7원에 마감했다. 지난 2012년에는 1065~1180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1년 사이 변동폭이 115원 정도 된 셈이다. 2011년에는 1050~1190원 사이에서 움직였는데 변동폭이 140원으로 작년보다 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엔 연초 900원대이던 환율이 연말에 1550원 이상까지 올랐다. 이렇게 본다면 재테크를 하거나 갑작스러운 환율 급등락을 헷지(Hedge)하기 위한 방편으로 외화예금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한 셈이다.
문제는 환율의 방향과 타이밍이다. 최근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시중에 통화를 푸는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함에 따라 이들 통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한국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도 높아지면서 원화 강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월 한달간 다시 환율이 급등, 원화 약세로 돌아선 듯한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락에 따른 일시적 반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원화 강세가 당분간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팽창되고 있기 때문에 올 상반기에는 1050원, 올 연말에는 1035원 정도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갑자기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언제 또다시 환율이 급등할 지 알 수 없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점차 회복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 경우, 풀어 놓은 유동성을 다시 회수하는 통화 정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환율을 바라본다면, 올해 다시 원화 강세로 환율이 낮아진다면 그때엔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엔화의 경우 당분간 아베 총리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엔화 약세가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가파른 엔화 약세가 예상될 경우, 엔화 결제 수요가 있는 수출 기업이라면 엔화 대출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영호 하나은행 대치동 PB센터장은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서 결제를 한 뒤, 나중에 엔화 가치가 더 떨어졌을 때 원화를 팔아 갚으면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단, 외화 대출 계좌는 실제 결제 수요가 있는 기업들만 개설할 수 있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어 일반 개인은 활용할 수 없다.
유로화의 경우, 유럽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가치가 상당부분 올라 있어 투자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호주 달러나 캐나다 달러의 경우 정기예금 금리가 2%대로 상대적으로 높아, 이쪽 통화에 관심이 있는 실수요자라면 투자를 고려해볼 만하다.
Tip | 외화예금 상품과 서비스
지정환율 도달하면 자동으로 환전

누구에게나 환율 예측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대체로 고객이 원하는 환율에 도달했을 때 은행에서 알림 메시지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 거액을 거래하는 경우, 고객이 일단 돈을 맡겨 놓으면 원하는 환율이 왔을 때 직원이 알아서 전화 통화만 한 뒤 매매를 처리해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고객이 원하는 환율에 자동으로 환전해주는 환율 예약 이체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환전금액, 유효기간을 지정해 예약하면 실제 환율이 예약 환율에 도달할 때 외화로 환전돼 사전에 등록된 계좌로 이체되는 서비스다. 농협은행은 고시환율이 고객 지정 환율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외국통화를 구매하거나 외화를 송금해주는 ‘스마트 환율예약 환전 및 외화 송금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최근 은행들은 환율 급변동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외화예금 상품들도 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환율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한 ‘환율 케어 외화적립 예금’을 올해 6월까지 판매한다. 이 상품은 최근 3개월 평균 환율보다 자동이체 지정 전일 원·달러 환율이 낮아 원화 강세가 되면 외화 적립금을 더 늘려 이체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외화 매입을 줄이고서 이체한다. 지난해 6월말 123개 계좌에 80만8000달러가 입금된 이 상품은 올 2월초 949개 계좌에 911만6000달러의 잔액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신한은행은 고객이 지정한 송금일이나 환율, 송금액에 따라 자동으로 송금해주는 ‘마이월드 송금통장 저축예금’ 상품을 판매 중이다. 이 통장으로 송금하면 송금 수수료의 30%를 우대받는다. 2009년 출시돼 지난해 1월까지 3년여 동안 3500좌에 불과했던 이 상품은 지난 1월 5500좌로 1년 만에 2000좌가 늘었다.
외환은행은 최근 창립 46주년을 맞아 이자율을 높인 ‘외화공동구매정기예금(13-1차)’을 선보였다. 3월6일까지 판매되는 이 상품은 공동 모집금액에 따라 더 많은 이자가 지급된다. 가입 금액 제한이 없어 소액예금자들도 우대이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입기간은 3개월에서 1년까지로 최종 모집금액이 500만달러 미만 시 0.05%포인트, 500만달러 이상이면 0.1%포인트의 우대이율을 받을 수 있다. 또 인터넷 가입 시 0.1%포인트가 추가로 우대된다. 2월 초 이 상품의 잔액은 3500만달러로 집계됐다.
외환은행은 또 기러기 아빠를 겨냥한 ‘자녀사랑 외화로유학적금’ 상품을 판매 중이다. 6개월 이상 12개월 이내에서 기간을 정하고 원하는 액수를 언제든지 적립할 수 있는 상품이다. 환율이 떨어졌을 때는 많이 넣고 올랐을 때에는 안 넣어도 된다.
초·중·고등학생이 가입하거나 예금주가 유학경비로 송금하면 우대이율 0.2%포인트가 가산된다. 국외 여행객을 겨냥해 6개월 이상 24개월 이내에서 자유롭게 적립할 수 있는 ‘세상구경 외화여행적금’도 있다. 가입 기간에 국외여행을 증빙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최대 연 0.3%포인트 우대이율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