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등장 초기 모든 기업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일을 했다. 자연히 가족 구성원들이 일손을 나눠 맡는 구조를 띨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자본주의 이전 시대도 마찬가지다. 농사일을 하든 상업에 종사하든 가장 든든한 사업 조력자는 바로 가족이었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자 세계 기업 역사의 뿌리를 이루기도 한다. 세계 각국의 장수기업 중에는 ‘가족기업(Family Business, Family Firm)’ 형태인 경우가 상당수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창업 초기 가족기업 단계를 거쳐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기업 중에도 가족기업들이 적지 않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나 곡물 메이저 카길이 대표적인 예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등 명품브랜드의 대다수도 가족기업으로 분류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빅5에 포함되는 도요타, 포드, 폴크스바겐도 가족기업이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집단도 창업자 가문이 소유·경영하는 가족기업에 해당된다. 가족기업은 간혹 독단적 경영, 부의 대물림, 경영권 분쟁 등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 구성원이 기업 지배구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창업자 일가의 기업가정신, 장기전략에 입각한 경영,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등이 그런 예다. 독일과 일본은 가족기업의 장점을 극대화한 나라로 꼽힌다. 특히 양국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이 많은데, 그들 중 상당수가 장수 가족기업이다. 우리나라는 1960~1970년대에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상당수가 창업자 시대를 넘어 후계자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족기업의 성공적인 사업승계는 국가경제의 지속성장과도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된다.

가족기업의 무한한 잠재력

대를 잇는 불굴의 기업가정신
가문의 영광 넘어 경제 주춧돌 된다

예로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술술 이뤄진다는 뜻이다. 가족기업도 마찬가지다. 창업자를 중심으로 가족이 화합하고 협력하면 욱일승천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가족기업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무서운 힘을 지녔다.  

1.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8월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 프로이덴베르그의 부회장인 마틴 슈타커 박사 초청 강연 및 토론회를 가졌다. 독일 경제의 저변을 이루는 히든챔피언의 상당수는 장수 가족기업이다.2.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업체 보쉬도 대표적인 글로벌 가족기업이다. 보쉬 공장에서 한 직원이 디젤엔진용 고압펌프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1.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8월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 프로이덴베르그의 부회장인 마틴 슈타커 박사 초청 강연 및 토론회를 가졌다. 독일 경제의 저변을 이루는 히든챔피언의 상당수는 장수 가족기업이다.
2.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업체 보쉬도 대표적인 글로벌 가족기업이다. 보쉬 공장에서 한 직원이 디젤엔진용 고압펌프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일본 이시카와현 고마쓰시에는 ‘호시료칸(法師旅館)’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다. 일본 3대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하쿠산 기슭에 위치한 이 호텔은 전통 목조양식의 건물이 고풍스러운 데다 17세기 일본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는 정원이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수령 500년이 넘은 고목들도 여럿 정원을 지키고 있다.

호시료칸이 처음 문을 연 때는 서기 718년이다. 역사가 무려 1300년 가까이 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호시료칸을 처음 설립한 창업자의 후손들이 46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호시료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족기업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일본은 대대손손 가업을 계승하는 기업들이 유달리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구보타 쇼이치 일본 호세이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는 업력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이 무려 5만여개에 이른다. 200년이 넘은 기업도 3000개를 웃돌고 있다. 세계 최대의 장수기업 대국이 바로 일본이다.

특히 일본 장수기업의 대다수는 가족기업으로 파악된다. 경영자도 대부분 창업자 가문의 후손이다. 일본에 유독 장수 가족기업이 많은 이유는 창업자 가문이 ‘가업 계승’과 ‘기업이념 실현’을 목표로 기업을 경영해왔기 때문이라는 게 구보타 쇼이치 교수의 설명이다.

‘가족기업(Family Business)’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정의가 매우 다양하다. 학자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가족 구성원이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하는 기업 혹은 가족 구성원은 소유만 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위탁한 기업’을 말한다. 또 넓은 의미로는 ‘가족 구성원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나 전략적 방향을 지배하는 기업’, 좁은 의미로는 ‘창업자나 창업자의 후계자, 혹은 2세대 이상의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을 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요컨대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이 바로 가족기업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가족기업이라고 하면 몇몇 가족 구성원이 꾸려가는 소기업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대기업 중에도 가족기업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 1300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 가족기업인 일본 숙박업체 호시료칸. 호시료칸의 46대 경영자 호시 젠고로 사장이 호텔을 찾은 손님들에게 징을 쳐주고 있다.
- 1300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 가족기업인 일본 숙박업체 호시료칸. 호시료칸의 46대 경영자 호시 젠고로 사장이 호텔을 찾은 손님들에게 징을 쳐주고 있다.

글로벌 거대기업 중 다수가 가족기업
단적인 예로 ‘S&P 500(스탠더드&푸어스가 500개의 대형주를 대상으로 집계·발표하는 주가지수)’에 포함되는 기업이나 미국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의 약 3분의 1이 가족기업이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집단들도 공기업(민영화된 공기업 포함)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가족기업으로 분류된다. 창업주 후손들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족기업은 세계적으로 아주 보편적인 기업 형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6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54.5%), 영국(76.0%), 호주(75.0%), 스페인(71.0%) 등 선진국들의 가족기업 비율은 전체 기업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조사에서 한국은 상장기업의 경우 68.3%가 가족기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상장기업을 아우를 경우 국내 가족기업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체의 약 85%가 가족기업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가족기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면 가족기업은 비가족기업과 비교할 때 어떤 특징을 가질까. 일반적으로 가족기업은 오너 가문의 투철한 주인의식과 강력한 리더십, 신속한 의사결정, 장기적 관점의 경영, 과감한 투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가족기업의 장점은 경영실적으로 연결된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결과도 있다. <포춘>이 500대 기업의 1994~2000년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가족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19.6%로 비가족기업의 13.8%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S&P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가족기업의 매출액 및 이익 증가율은 21%선에 달해 비가족기업의 10.8%와 12.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남영호 한국가족기업경영연구소 소장(건국대 교수)의 말이다.

“서구 국가뿐 아니라 국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가족기업의 경영성과가 비가족기업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족기업은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을 하는 데다 가문의 훌륭한 전통과 기업가정신을 후대에 계승한다는 점이 강점이죠. 그런 점들이 우수한 경영성과를 낳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족기업이라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가족기업의 취약점으로 독단적 경영 가능성,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이나 분쟁, 가족과 기업의 경계 모호, 능력과 무관한 직책 수행, 잘못된 승계의 위험, 상속 과정의 불화 등을 꼽고 있다.

특히 오너경영인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따른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가족기업의 가장 큰 잠재적 위험요소라는 지적이다. 오너의 잘못된 판단 하나가 기업 경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오너경영인이 중대한 투자 결정이나 후계자 선정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되면 해당 기업은 존폐 기로에 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기업의 단점을 너무 부각시키기보다는 장점을 더욱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많다. 현실적으로 가족기업의 경제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지속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국가경제 측면에서 훨씬 효용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의 설명이다.

 

* 자세한 내용은 이코노미플러스 4월호 42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