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 갑부였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요즘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공익사업에 여념이 없다.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출연해 설립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서다. 이 재단은 결핵 퇴치 사업, 소아마비 퇴치 사업, 말라리아 퇴치 사업, 빈민지역 교육환경 개선 사업 등 각종 국제 구호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재미로 따지면 지금껏 해본 일 중에 자선활동이 최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지구촌에서는 월가로 대변되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동시에 이윤추구에 매몰된 천박한 자본주의를 벗어나 따뜻한 자본주의를 지향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빌 게이츠의 행보는 하나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과거 자유주의 경제학계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인들의 유일한 책임은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사상은 전적으로 유효하지만은 않게 됐다. 기업들을 향해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익추구와 공익기여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필요해진 셈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이른바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기업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경영전략을 채택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마케팅과 공익을 결부시킨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이 기업활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코즈마케팅은 기업 본연의 사명인 이익창출과 시대적 요구인 사회적책임을 효과적으로 접목한 경영전략이다. 코즈마케팅의 의미와 진가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코즈마케팅의 시대가 온다

기업·소비자·사회가 모두 웃는 ‘삼위일체 마케팅’

코즈마케팅을 통해 수익과 공익을 함께 실현하는 기업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뭉클하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통쾌함과 사회적 대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열의가 넘치기 때문이다.
 

1983년의 어느 날이었다. 미국 신용카드업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의 마케팅 담당자 제리 웰시는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뉴욕항 입구의 리버티 섬에 우뚝 선 자유의 여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웰시의 뇌리를 때렸다. 설립한 지 100년이 다 된 자유의 여신상 보수공사를 활용해 마케팅 캠페인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존 고객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1센트씩, 신규 고객이 가입할 때마다 1달러씩 기부해 자유의 여신상 보수공사 재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었다. 얼마 뒤 웰시의 아이디어는 ‘내셔널 아트 마케팅 프로젝트(National Arts Marketing Project)’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고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의 여신상을 복구하는 데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친 것이다. 프로젝트는 큰 성과를 얻었다. 캠페인 기간 동안 카드 사용은 27%나 증가했고, 170만달러에 이르는 복구공사 기금도 모아졌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의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 사례라는 기록을 남겼다.

코즈마케팅은 ‘공익을 연계한 마케팅(Cause-Related Marketing)’의 준말이다. 말 그대로 기업이 사회적 대의(大義) 혹은 공공의 이익을 마케팅 활동과 접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코즈마케팅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제품 판매와 현금·현물 기부를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즉 고객이 어떤 제품을 하나 구입할 때마다 일정한 금액이나 물건을 자선단체나 공익활동에 기부하는 것이다. 사회적 공익이라는 접점에서 기업·자선단체·소비자가 모두 ‘윈-윈-윈’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1. 미국 신용카드업체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자유의 여신상 복구공사를 마케팅 캠페인과 연계시켜 세계 최초의 코즈마케팅 사례를 기록했다. 2. 유한킴벌리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국내 코즈마케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3. 현대카드는 서울역 시내버스 환승센터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서울시에 기부했다.
1. 미국 신용카드업체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자유의 여신상 복구공사를 마케팅 캠페인과 연계시켜 세계 최초의 코즈마케팅 사례를 기록했다.
2. 유한킴벌리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국내 코즈마케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3. 현대카드는 서울역 시내버스 환승센터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서울시에 기부했다.

‘자유의 여신상’ 복구 기금 마련이 시초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참신한 프로젝트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 미국과 유럽 기업들을 중심으로 코즈마케팅이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서구사회의 문화적 배경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유재훈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이나 유럽은 오래 전부터 기부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는 덕분에 코즈마케팅이 활성화하기에 수월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화장품업체 에이본도 코즈마케팅의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힌다. 에이본은 ‘여성을 위한 기업(The Company for Women)’을 모토로 하고 있다. 핵심가치 역시 ‘여성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라’로 설정돼 있다.
에이본은 1990년대 초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한 가지 캠페인을 구상하게 된다. 여성 고객들이 유방암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에이본 유방암 퇴치운동(Avon-Breast Cancer Crusade)’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은 크게 3가지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우선 유방암 치료 및 예방을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배포해 여성들의 유방암 인식 수준을 높였다. 또 ‘핑크리본’을 부착한 제품을 판매해 수익의 일부를 유방암 연구·예방·치료를 위한 공공기금으로 조성했다. 핑크리본은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국제적 상징이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개최된 유방암 생존자들을 위한 달리기 행사에서 핑크리본을 나눠준 데서 비롯됐다.

현재 에이본은 매년 약 4000억원 이상의 유방암 퇴치 기금을 조성해 여성들의 건강 향상을 위한 다양한 공익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있다. 에이본은 유방암 퇴치운동을 통해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증대되는 성과를 낳았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을 중심으로 방문판매에 의존하는 저가형 화장품업체로 통했지만 2000년대 이후 글로벌 3대 화장품 브랜드로 도약한 것이다. 핵심 고객층인 여성들의 건강 증진에 앞장서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세계 소비자들의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낸 덕분이다.

이우창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는 “코즈마케팅의 공익 목표를 선정할 때는 자기 사업의 가치사슬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면서 “에이본은 여성 고객들의 ‘니즈’와 ‘코즈’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캠페인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코즈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자세한 내용은 이코노미플러스 5월호 50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