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가장 먼저 소닉 브랜딩을 주목한 곳은 KT다. SBS 케이팝스타에서 인기몰이를 한 악동뮤지션이 직접 작사·작곡을 해 더 유명세를 탄 KT의 ‘올아이피(All-IP)’ 송은 All-IP(서로 다른 유·무선 통신망을 하나로 통합한 것)라는 생소한 IT용어를 노래로 소비자들에게 설명해줌으로써 브랜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KT의 ‘올아이피’송에 이어 소닉 브랜딩의 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주자는 LG전자다. LG전자의 옵티머스G 프로는 G라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옵티머스G 프로의 장점을 어필하는 CM송을 광고에 선보였다. 과거부터 활발하게 소닉 브랜딩을 펼쳐 온 SK텔레콤도 기존의 사운드 로고를 변화시켜 LTE광고를 내놓았다. ‘LTE’ 각각의 알파벳을 한글 자모음(ㄴ·ㅜ·ㅌ)으로 형상화해 ‘’이라는 글자를 만들었고 SK텔레콤의 대표음으로 알려진 ‘T링(띵띵띠링띵)’ 사운드 로고를 ‘’으로 새로이 교체했다.
소리는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광고에서 소리는 기업이 원하는 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렇기에 재미있고 중독성 있는 소리나 음악을 광고에 삽입해 소비자의 청각을 자극하고 해당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TV광고에 담긴 CM송이나 징글, 배경음악, 사운드 로고 등이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는 소닉 브랜딩 요소들이다. 기업들은 오랫동안 소닉 브랜딩에 주목해왔다.
친숙한 멜로디에서 최근 스토리텔링으로 전환
소비자의 청각을 자극하는 소닉 브랜딩은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다. 광고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닉 브랜딩 광고로 소리 디자이너 김벌래씨의 펩시콜라 광고를 꼽았다. 그는 1966년 펩시콜라 광고의 병 따는 소리를 제작해 히트를 쳤다. 1980년대 후반에는 농심의 ‘새우깡’ CM송이 소비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즐긴다는 내용의 CM송은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로 소비자에게 각인됐다.
특정한 소리나 멜로디, 배경음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기업들도 있다. 대림아파트 e편한세상이나 포카리스웨트, 하이마트, AIG손해보험, S-oil 등은 브랜드명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한다. e편한세상은 광고가 끝난 후 브랜드를 특정 멜로디로 언급해줌으로써 소비자에게 각인됐다. ‘나나나나나나나나~’로 시작하는 포카리스웨트의 광고 배경음악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패러디되며 인기를 끌었다. 하이마트는 ‘하이마트로 가요’라는 광고 음악을 통해 ‘전자제품을 살 땐 하이마트’라는 공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줬다. AIG손해보험의 광고는 AIG 다음엔 ‘띠링띠링’이라는 징글을 연이어 떠올리게 했다. 징글은 짧은 구절에 멜로디를 붙인 것을 말한다. 회사명, 상품명, 슬로건 등 광고 메시지를 담는다.
축구선수 ‘차두리’를 내세운 우루사의 ‘간 때문이야’ 광고도 대표적인 소닉 브랜딩 사례로 손꼽힌다. 2010년 12월 처음 방송된 차두리표 우루사 광고는 ‘간 때문이야’라는 노래에 맞춰 차두리 선수가 코믹한 춤을 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TV광고와 온라인광고를 함께 진행한 우루사는 광고 시작 이후 1개월 만에 약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매출액 18억원보다 67% 증가했다. 매출뿐 아니라 광고 효과 역시 상승해 한국CM전략연구소가 2011년 1월 집계한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전체 지상파 광고 중 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이후 소닉 브랜딩 광고의 흐름을 이끈 회사는 SK텔레콤이다. 2008년 3월부터 방송된 SK텔레콤의 ‘생각대로 하면 되고’ 광고는 40여편의 시리즈로 진행된 캠페인이다. ‘솔미파라솔’ 음을 타고 흐르는 ‘생각대로 T’라는 엔딩 로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SK텔레콤이라는 회사를 각인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생각대로 하면 되고’ CM송과 ‘생각대로 T’ 엔딩 로고를 만든 영상음악전문업체 민트컨디션의 김연정 대표는 ‘솔미파라솔’이라는 화음을 만들기 위해 두 달의 시간을 들였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두 달 동안 30여개의 시안을 만든 결과, 탄생한 화음이라는 것. 업계에서는 CM송은 목적을 갖고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들었을 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1950년 개봉된 디즈니만화 ‘신데렐라’에 사용된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Bobbidi-Boo)’의 판권을 구입해 2009년 2월부터 ‘비비디 바비디 부’ 캠페인을 진행했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하면 되고’·‘비비디 바비디 부’ 캠페인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즐거운 멜로디로 광고를 보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경쟁사들의 광고를 물리치고 광고 효과 1위를 기록했다.
2009년 주목받았던 또 하나의 광고는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운 삼성전자 하우젠 에어컨 광고다. 스윙 재즈 명곡인 ‘Sing Sing Sing’을 개사해 ‘씽씽 불어라’ 가사가 반복되는 CM송을 선보였다. 김연아의 ‘씽씽송’은 방송 이후,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광고방송 이후 에어컨 매출이 29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하우젠 에어컨은 한국CM전략연구소 광고효과분석조사에서 2009년 1분기 광고 효율 1위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조사에서 광고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 CPCM(소비자 1인당 호감유발비용)이 115원으로 가장 낮게 나온 것이 특징. CPCM(Cost Per Consumer Mind)은 한 명의 소비자에게 광고의 호감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드는 비용으로 광고집행비를 호감을 나타내는 인구수로 나눈 것이다. CPCM이 낮을수록 광고효율성이 높은 것인데 이는 동일한 광고비 또는 더 적은 광고비를 들이고도 더 많은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소닉 브랜딩 광고들이 흥겨운 멜로디나 효과음, 사운드 로고 등으로 ‘소리’를 광고에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스토리가 담긴 CM송이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노랫말로 제품의 특성을 설명하거나 브랜드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박애리 HS애드 비즈니스솔루션 그룹장은 “과거에는 사람들에게 빨리 친숙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과 소리를 썼다”며 “기존의 멜로디나 사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뮤지션과 협업해 광고 음악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HS애드가 기획한 옵티머스G 프로광고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특징인 3인조 혼성그룹 어반자카파와 협업한 CM송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근 KT는 악동뮤지션의 ‘올아이피’ CM송으로 큰 히트를 쳤다. 신훈주 KT IMC담당 상무는 “All-IP라는 말이 쉬운 듯 보이지만 어려운 IT용어”라며 “가사나 메시지를 읊조렸을 때 가장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악동뮤지션에게 가사도 직접 쓰게 하고, ‘올아이피’와 대구를 이루는 ‘올라이트’를 앞에 붙여 노래에 담아 소비자들에게 들려줬다”고 설명했다. 신 상무는 “이번 악동뮤지션의 광고로 단기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용어나 브랜드를 고객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1년여의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반해 KT는 이번 광고로 두 달 만에 10분의 1 금액으로 그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소리의 멀티플랫폼화가 소닉 브랜딩의 핵심
광고전문가들은 소닉 브랜딩의 핵심은 한 플랫폼을 통해 들은 소리를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도 듣게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우루사는 TV광고뿐 아니라 시청률이 높은 방송 3사의 VOD를 통해서도 차두리 선수를 내세운 ‘간 때문이야’ 광고를 선보였고, 그로 인해 높은 매출을 올렸다. 소닉 브랜딩계의 대부로 손꼽히는 SK텔레콤 역시 ‘솔미파라솔’의 사운드 로고를 휴대폰이 켜질 때 나는 효과음과 문자메시지 수신음, 통화 연결음에도 삽입해 소비자들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소닉 브랜딩 광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탓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광고를 장기간 접한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농심 새우깡은 ‘손이 가요 손이 가’ CM송을 오랜 기간 노출해 온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경우에 대해 광고 업계에서는 동일한 CM송의 장기적인 노출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해당 브랜드를 바로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 친근감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지겹거나 그만 듣고 싶다는 거부 반응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 박애리 HS애드 비즈니스솔루션 그룹장은 “요즘 광고주나 광고대행사들은 반복적인 CM송 노출이 ‘식상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며 “항상 같은 CM송을 선보이기보다는 이번 캠페인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전체 노래에서 사운드 로고만 남겨 강조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ip 오감 브랜딩 중 가장 효과적인 소닉 브랜딩
제품 간 격차가 줄어들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요즘 마케팅은 기업의 수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브랜드로 다가가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광고비를 지출하며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 광고의 홍수 시대에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들이 집중하는 것이 ‘오감 브랜딩’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마케팅 업계에서 일상용어가 된 ‘오감 브랜딩’은 마케팅 전문가 마틴 린드스트롬의 저서 <오감 브랜딩>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감 브랜딩이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인간의 신체 감각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하는 감성 마케팅 활동이다. 마틴 린드스트롬은 그의 저서에서 “기업들이 5가지 감각의 역할과 그 힘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려면 좀더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TV광고에는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 그리고 강력한 상징이 담겨야 한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오감 중 시각이 가장 결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눈을 감으면 그만인 시각과 달리 청각은 연속성을 갖는다”며 “기업은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오감을 이용해야 하는데 사람과 가장 친한 감각인 청각을 자극해 변화무쌍하고 톡톡 튀는 소리로 소비자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시각은 자신이 본 패턴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감각이지만, 청각은 연상을 통해 기억되는 것”이라며 “광고에 나온 음악의 비슷한 멜로디만 들어도 연상을 통해 브랜드를 떠올려 홍보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은 “오감을 이용한 브랜딩이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TV광고나 라디오 광고에서는 시·청각을 제외한 감각 브랜딩이 어렵다”며 “소리로 브랜드의 성격을 나타내고 각인시키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Tip 인텔, 소닉 브랜딩으로 성공
대표적인 해외 소닉 브랜딩 광고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미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인 ‘인텔’의 사운드 로고 광고다. 제품 특성상 ‘반도체’를 소비자에게 홍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반도체의 특성과 기능을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는 1991년부터 인텔의 CPU를 공급받는 PC업체들에 각 업체의 PC에 인텔의 CPU가 장착되어 있다고 광고하도록 했다. 동시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제품과 광고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인텔의 CPU를 공급받는 300여군데의 PC업체들은 광고에 ‘인텔 인사이드’라는 로고와 함께 5음조의 소리를 3초간 제시했고, 이 광고는 인텔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