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농업인들에게 농기계(農機械)는 필수적인 동반자다.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경운기 등은 사람의 일손을 크게 덜어주는 효자 구실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논농사는 90% 이상 농기계에 의지하고 있다. 대다수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고령층만 남은 농촌에서 농기계 없는 농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대동공업은 국내 농업 생산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농기계 산업의 리더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집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대동공업은 국내 농기계 시장에서 34%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경운기 등 4대 핵심 농기계 품목 모두 1위에 올라 있는 종합 농기계 업체다. 명실상부한 농기계 분야 넘버원 기업인 셈이다.

내 농기계 시장은 대동공업을 비롯해 LS엠트론, 국제종합기계, 동양물산이 ‘빅4’를 이루고 있다. LS엠트론, 국제종합기계, 동양물산 3개사는 대기업 계열사로 다른 사업도 함께 영위하고 있다. 반면 대동공업은 농기계 생산 외길만을 줄곧 걸어온 전문기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 우물만을 파는 우직한 장인정신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적지 않다. 특히 대동공업은 농기계 완성품을 생산하는 종합 농기계 업체이기 때문에 수많은 협력업체들과 파트너십을 이루고 있다. 권태경 노무지원장은 “대동공업의 협력업체는 180여개에 달한다. 대동공업이 커나갈수록 많은 지역기업들이 동반 성장하게 된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대동공업은 비단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일 뿐만 아니라 국내 농기계 산업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주역이기도 하다. 주요 농기계의 최초 국산화도 대부분 대동공업이 해냈다. 한국 농업 기계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이다.
대동공업의 역사는 고 김삼만 창업주가 1947년 고향인 경남 진주시에서 농기구를 제작하는 철공소를 설립한 데서 출발한다. 김삼만 창업주는 1925년 열세 살 때 일본인이 운영하는 철공소에 취직하면서 기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부지런히 일을 배워 스무 살 무렵에는 일류 기계기술자로 거듭났다.
1945년 김삼만 창업주는 해방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겪었기에 무엇보다 농민들의 작업환경 개선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농업 근대화로 국민생활에 이바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창업에 나선 동기다. 그의 형제들도 함께 의기투합했다.
국산 농기계 최초 개발 기록 다수
대동공업의 역사는 곧 한국 농기계 산업의 역사와 마찬가지다. 대동공업이 신제품을 개발해 세상에 선보일 때마다 농기계 산업도 한 단계씩 도약했다. 1949년 발동기 생산, 62년 경운기 개발, 68년 트랙터 개발, 73년 이앙기 생산, 82년 콤바인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내 최초 기록을 써 왔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굵은 땀방울과 혼신의 노력이 깃들인 역사적 족적들이다.
이종순 기술연구소 부소장은 “과거 다른 농기계 업체들이 손쉽게 수입제품을 들여와 팔 때 대동공업은 외국 기업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독자기술 확보에 온 힘을 다했다. 그런 연구개발 노력 덕분에 농기계 국산화의 첨병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62년 대동공업의 경운기 개발은 우리나라 농업에 일대 혁명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국내 농촌은 농가 소득도 낮았고 농지도 영세한 규모로 흩어져 있어 경운기 보급에는 마땅치 않은 여건이었다. 하지만 김삼만 창업주는 이웃 일본에서 경운기 보급에 따른 농업혁명을 직접 목격한 터였다. 그는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경운기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경운기 개발에 나섰던 것이다.
그의 선견지명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농촌 개발을 위해 농기계 보급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완료된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농가소득 증가와 경지정리 사업 성과로 경운기 시장이 점차 확대됐다. 특히 1970년대 초부터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면서 경운기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소 대신 ‘철우(鐵牛: 쇠로 만든 소라는 의미로 경운기의 별명)’가 농촌의 일꾼으로 본격 등장한 것이다.
김삼만 창업주는 경운기에 이어 1965년 트랙터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당시 트랙터는 서구 국가의 대규모 영농에 쓰이는 핵심 농기계였다. 그 시절 우리 농촌의 영농 환경과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김삼만 창업주는 공업발전과 도시화로 언젠가 농촌 일손이 부족한 날이 올 것이라며 트랙터 개발을 밀어붙였다.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가 기술제휴를 통해 힘을 보태줬다. 그렇게 해서 1969년 최초의 국산 트랙터가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대동공업은 1970년대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앞세워 농기계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완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계열사들도 잇달아 설립하며 수직계열화를 추진했다. 1975년에는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기업으로 거듭났다. 국내 농기계 산업을 이끄는 주역으로서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이다.
농기계는 내연기관 엔진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자동차와 유사하다. 다만 차이점은 자동차용 엔진은 ‘스피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농기계용 엔진은 ‘파워’에 비중을 둔다는 점이다. 차량은 운송수단이고 농기계는 작업수단이라는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구 기업 중에는 자동차와 농기계를 함께 생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례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업체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람보르기니는 원래 트랙터 제조업체였다. 또한 미국 포드 역시 자동차뿐 아니라 트랙터를 생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동공업 역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뻔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초 정부의 자동차공업 육성 정책이 막 추진될 무렵이었다. 대동공업은 미군 군용트럭 엔진을 토대로 시제품까지 완성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자동차 사업 진출 계획을 접었다. 농기계라는 한 우물만을 파겠다는 초심을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이다.

2. 대동공업의 주요 부문을 맡고 있는 권태경 노무지원장, 이종순 기술연구소 부소장, 노재억 생산본부장이 트랙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3. 곽상철 대동공업 대표이사 사장.
해외 농기계 시장 진출도 가장 앞서
노재억 생산본부장은 “지금 현대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누비고 있듯이 대동공업 역시 세계 농기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농기계 산업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수출전략산업으로 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농기계 시장 규모는 2007년 약 1조2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점진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에는 8000억원대로 뒷걸음질쳤다. 쌀 소비가 줄면서 농업 생산량이 감소한 데다 농촌지역 고령화로 휴경(休耕) 농지가 증가하면서 농기계 수요 자체가 꺾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 발전과 함께 성장한 농기계 업계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전체 농기계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농기계 시장은 연 평균 5.3%의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신흥국가들의 가파른 경제성장 덕분이다. 특히 아시아 농기계 시장의 성장성이 매우 높다. 중국과 인도가 각각 11.8%와 7.1%의 연 평균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농기계 시장도 비중이 커지고 있다.
대동공업은 국내 농기계 업체 중 가장 먼저 글로벌화를 추진한 기업이다. 1985년 국내 최초로 트랙터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것도 세계 최대 농기계 시장인 미국에 수출한 것이다. 1993년에는 미국에 현지법인 대동USA를 설립했다. 이 역시 국내 농기계 업계 최초의 해외 현지법인이다. 권태경 노무지원장은 “김삼만 창업주가 농기계 전문기업의 기틀을 구축했다면 2대 경영자인 김상수 회장은 수출확대로 글로벌화에 전념해왔다”고 말했다.
대동공업이 1980년대 첫 수출에 이어 90년대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한 것은 농기계 내수시장의 한계를 일찍 내다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기계 전문기업으로 지속성장을 이어가려면 해외시장 진출에 승부수를 던져야만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현재 대동공업은 미국과 유럽에 현지 판매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에는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나아가 2016년에는 태국, 2020년에는 브라질에 생산기지를 추가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각각 아시아 시장과 중남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예정이다.
대동공업은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 ‘카이오티(KIOTI)’라는 현지 농기계 판매회사와 손을 잡았다. 얼마 뒤에는 아예 카이오티 브랜드를 사들였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신뢰도를 쌓아온 브랜드를 내거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동공업은 한국과 중국 시장에서만 ‘대동’ 브랜드를 쓰고,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시장에서는 ‘카이오티’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인 북미 농기계 시장에서 대동공업의 시장점유율은 2.5% 정도 된다. 하지만 대동공업의 주력제품인 100마력 이하 소형 농기계만 따지면 시장점유율이 4.3%로 높아진다. 대형 농기계 시장은 미국 및 유럽 기업들의 지배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친환경 농기계 엔진 시장 세계 2위
대동공업은 2020년대 초까지 세계 농기계 시장에서 ‘톱7’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중장기 비전을 갖고 있다. 현재 농기계 매출액 기준으로 대동공업은 세계 18위다. 세계 농기계 시장을 주름잡는 상위 5개사를 살펴보면 존디어(미국), CNH(이탈리아), 애그코(미국), 클라스(독일), 구보다(일본) 등이다.
대동공업의 향후 성장전략은 크게 두 갈래다. 친환경 농기계 시장과 수전(水田: 물이 있는 밭이나 논) 농기계 시장을 집중 공략해 나간다는 것이다. 현재 대동공업은 가장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 기준인 ‘티어(Tier)4’를 충족시키는 엔진을 개발한 상태다. 친환경 농기계 엔진 시장에서는 벌써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전기 동력원과 하이브리드 엔진, 위성항법장치(GPS) 기반의 무인작업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또한 대동공업은 수전 농기계 시장에서도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논농사 중심의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셈이다.
이종순 부소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첨단 연구개발 환경을 토대로 신기술 개발 및 신시장 개척을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2020~2022년 무렵에는 글로벌 농기계 시장에서 톱7 업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Tip | 대동공업 경영 현황
전체 매출 중 수출이 절반 차지
대동공업은 2011년 기준 약 50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지난해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는 약 550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찍부터 해외시장 진출에 공을 들인 덕분에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전체 임직원 수는 800여명이고, 그 중 연구개발 인력은 120여명이다.
대동공업의 계열사로는 미국 현지법인 대동USA를 비롯해 대동기어, 대동금속, 한국체인공업 등이 있다. 대동기어는 기어 및 동력전달장치를 생산하는 업체다. 또 대동금속은 농기계 부품을 비롯해 자동차 및 정밀기계용 주물을 생산한다. 한국체인공업은 전동용 롤러 체인, 경운기 및 트랙터용 트레일러, 주차빌딩용 체인 및 에스컬레이터용 체인, 컨베이어 체인 등을 생산하고 있다.
Tip | 주요 농기계 무슨 기능 하나
● 트랙터(Tractor) : 강력한 견인력을 이용해 각종 농작업(農作業)을 수행하는 다용도 작업용 자동차다. 쟁기나 트레일러, 풀 베는 기계 등 수십 종의 작업기를 연결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 콤바인(Combine) : 논밭을 주행하면서 농작물을 베고 탈곡 및 선별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확용 농기계다.
● 이앙기 : 못자리나 육묘상자에서 자란 모를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용 농기계다.
● 경운기 : 논밭을 갈거나 흙덩이를 부수고 땅을 고르는 작업에 사용되는 농기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