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자신 있게 구두 만든다는 소리를 못 했어요. 이젠 구두를 배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두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거잖아요. 구두를 신으면 발이 늘 불편했었는데 제 구두를 신고선 아픈 것이 사라졌다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 말씀 들을 때면 정말 뿌듯합니다.”

구두회사 ‘안토니’의 김원길 대표는 사무실 안에서도 ‘발’이 바빴다. 그의 주변엔 직접 신어보고 테스트하기 위한 샘플용 구두 수십 켤레가 놓여 있었다.

‘안토니’는 컴포트슈즈(Comfort Shoes)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탄탄하고 건실한 중소기업이다. 2010년부터 명품구두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 수출도 하고 있다. 2011년엔 이탈리아 브랜드인 ‘바이네르(VAINER)’의 상표권을 인수했고, 이탈리아 현지에 바이네르 1호 매장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금은 이탈리아 구두 장인들로부터 구두를 정말 잘 만든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원길 대표가 구두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갓 졸업할 무렵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하던 제화점에서 처음 구두 일을 배운 그는 “이왕 시작한 일 끝을 보자”는 각오로 열여덟 살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서울로 올라왔다. “먹고 잘 수만 있게 해 달라”며 한 구두 공장에 들어갔지만 ‘중졸’ 학력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김 대표는 “제가 중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관리직은 꿈도 못 꾸었죠. 구두 포장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생산 기획, 품질관리까지 다 배웠어요. 제가 욕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인데 그 욕심 때문에 발전한 것 같아요(웃음).”

안토니는 올해로 7년째 독거노인들을 초대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지난 5월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효도잔치에서 김원길 대표가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안토니는 올해로 7년째 독거노인들을 초대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지난 5월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효도잔치에서 김원길 대표가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기술력 바탕으로 11년째 흑자경영
‘기술 하나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온 김 대표는 학력이 아니라 기술력이 진정한 성공요인임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1994년 설립한 안토니는 외환위기 당시 한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꾸준히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11년째 흑자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안토니(ANTONI)·바이네르(VAINER)·키노피오(KINOPIO) 등 세 개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이곳은 전국 53개 매장에 직원수 200여명, 연매출 430억원(2012년)의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대표가 특히 컴포트슈즈에 주력한 것에도 그만의 소신이 담겨 있다. “구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보여주기 위한 구두와 신기에 편한 구두죠. 보여주기 위한 구두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편한 구두는 마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구두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컴포트슈즈 개발에 매진했어요.”

구두업계 또한 불경기의 타격을 크게 받는 분야다. 저가의 중국산 제품들도 물밀듯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는 “품질과 상품 가치에 대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남들이 아무리 값싼 구두로 승부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대표가 오랜 시간 구두 하나만을 바라보고 끈기 있게 실력을 다져올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1984년 전국기능경시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받았던 일이다. 김 대표는 “동메달도 대단한 것이지만 회사 홍보를 위해서도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낙심이 컸다”며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구두를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밝혔다. 무작정 태종대에 내려갔던 그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 “저 멋진 바위를 만든 것이 수백, 수천 년 동안의 바람과 파도인데 고작 60여일 노력해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신세 한탄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어요. 나도 저 바람과 파도처럼 끈기를 갖고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만약 내가 금메달을 땄다면 오만방자해졌을 텐데 동메달을 통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된 셈입니다.”

2011년 이탈리아 브랜드인 ‘바이네르(VAINER)’의 상표권을 인수한 김 대표는 이탈리아 현지에 바이네르 1호 매장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탈리아 구두 장인들로부터 구두를 정말 잘 만든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2011년 이탈리아 브랜드인 ‘바이네르(VAINER)’의 상표권을 인수한 김 대표는 이탈리아 현지에 바이네르 1호 매장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탈리아 구두 장인들로부터 구두를 정말 잘 만든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포츠카·수상보트 즐기는 안토니 직원들
안토니는 직원들의 복지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대표의 사무실에는 ‘성공이란 고객에게 사랑받고 사회로부터 존경받으며 직원들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지수 1등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적힌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다. 안토니 직원들이 누리고 있는 복지 혜택은 대기업 수준에 버금간다. 업계 최고의 연봉과 상여금에 출산장려금 50만원, 셋째아이 출산 시 2000만원, 직원 자녀 초·중·고·대학교 장학금 등 물질적 혜택 외에 기업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김 대표는 직원들의 여가활동을 위해 회사 명의로 벤츠 스포츠카를 구입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청평에 수상보트를 마련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일산의 안토니 본사 근처엔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승마장도 마련돼 있다. 밀라노·라스베이거스 등에 직원 연수도 보내고 있다. 거창해 보이는 일이지만 김 대표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 자신도 취미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거기서 에너지와 활력을 얻어 다시 일에 그 힘을 쏟는데 직원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일만 하다보면 지쳐서 고장나게 돼 있어요.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법입니다. 전 회사를 위해서도 직원들의 행복지수 1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은 쉽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회사 경영하는 분들 모두 나처럼 하라고 하면 겁낼 거다. 하지만 한번 해보면 왜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공헌활동에도 열심인 김 대표는 올해도 1억5000만원의 돈을 들여 독거노인들을 모시고 효도잔치를 열었다. 벌써 7년째 이어오고 있는 행사다. 인터뷰 전날에도 직접 무대에 올라가 노래도 불렀다는 그는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어제 사랑의 트위스트를 좀 췄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한 곡 더 했더니 환호가 대단했죠, 허허.”

▒ 김원길 대표는…
1961년생. 미호중학교 졸. 중소기업중앙회CEO스쿨·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2011년 3월~현재 중소기업학회 부회장. 1994년~현재 안토니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