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귀순가수 김용은 잠시 잊혀져 있던 인물이었다. 한때 그가 운영하던 북한전문음식점 모란각이 망했다는 소문도 돌았고,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근황이 궁금했던 터. 오랜만에 만난 김용은 예전 귀순가수의 이미지가 아닌 훨씬 세련되고 어엿한 사업가의 모습이었다.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지난 8년간 그는 본격적으로 경영인의 길을 걷기 시작해 승승장구했다. 베트남 홈쇼핑 HSV(Home shopping Vietnam)와 캄보디아 홈쇼핑 HSC(Home shopping Cambodia)의 최대주주로 두 회사를 거느린 ‘한아홈쇼핑’의 회장직을 맡아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걷고 있는 것. HSV는 베트남 내 홈쇼핑 중 2위, HSC는 캄보디아에 첫 번째로 생긴 홈쇼핑업체다. 동남아 시장에서 홈쇼핑 사업을 통해 또 다른 ‘한류’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이 홈쇼핑 사업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그는 국내 홈쇼핑 방송에서 ‘모란각 냉면’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 2006년 농수산홈쇼핑을 시작으로 2007년 CJ오쇼핑에서 연이은 매진 사례를 기록했고, 당시 5대 홈쇼핑을 통틀어 냉면 분야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를 계기로 홈쇼핑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김 회장은 “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큰 시장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되면서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품이 어떻게 론칭되고 제작과 편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반적인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국내는 물론 일본의 홈쇼핑 회사를 직접 방문해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김용 회장은 “앞으로 우리 중소기업 제품들을 더 많이 가져다 판매해서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자리매김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용 회장은 “앞으로 우리 중소기업 제품들을 더 많이 가져다 판매해서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자리매김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 2010년부터 1년 가까이 그는 동남아 곳곳을 직접 돌아다녔다고 한다. 혼자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던 중에 베트남이 눈에 들어왔다. 김 회장은 베트남 시장에서 홈쇼핑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의 경제성장속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국내 기업만 해도 삼성·LG·현대·롯데 등 대기업을 비롯해 2000개 이상의 기업이 들어가 있습니다. 서울과 비슷한 1000만명 인구가 사는 호찌민은 그야말로 전 세계 기업이 모여서 경쟁하는 도시죠.

또 20대와 30대 인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젊은 나라예요. 호찌민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감동했습니다. 이 생동감 넘치는 나라에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던 거죠. ‘왜 좀 더 일찍 이 나라를 오지 못했을까, 그동안 시장을 개척한답시고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들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베트남을 마음에 품고 돌아온 김 회장은 HSV의 오너가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홈쇼핑 사업에 대한 구상이 이미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는 그는 “그때 오너를 만나 마치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처럼 최선을 다해 면접을 보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던 그에게 선뜻 사업 기회를 주기란 쉽지 않았을 터. 김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에게 “모란각 프랜차이즈와 홈쇼핑에서 히트를 기록했던 스토리 등 그동안의 제 이력을 모두 이야기했는데 저의 진정성이 통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몇 시간의 대화 끝에 경영 참여를 허락받게 된 그는 결국 2011년 초 그동안 모은 자금과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 홈쇼핑사를 직접 인수했다고 한다. 

회사를 사들인 김용 회장은 자신의 계획대로 홈쇼핑을 새롭게 단장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는 HSV 외에도 CJ·롯데·GS 등 우리나라 홈쇼핑업체 4곳이 진출해 있다.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HSV는 2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최근엔 ‘월 7~8%대’의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올해는 연 300억원 정도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고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베트남에서 홈쇼핑 사업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베트남은 아직 카드결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90% 이상이 현금으로 물건 값을 지불합니다. 그러다 보니 택배기사가 물건을 배달해주고 직접 돈을 받아와야 하는 상황이죠.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하는 데다 현금 배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택배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갖춰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외주업체 대신 택배기사를 직접 채용해서 철저하게 서비스 교육을 시켰어요. 물건만 던져주고 오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을 만나 친절하게 응대하고 설치상품 같은 경우 완벽하게 설치해주고 오도록 하니 고객들이 감동을 받으시는 거죠.”

베트남 이어 캄보디아까지 홈쇼핑 진출
우리에겐 귀순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김용 회장은 북한에서 가수활동을 불과 3년밖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대중가수가 아닌 평양국립 교향악단의 솔로가수였고, 그 전에는 빙상 국가대표 선수로, 또 중앙당 산하의 해외담당 책임지도원 등으로 일했다. ‘당간부’로 활동했던 그는 대다수 탈북자들과는 달리 북한에서도 안정된 삶을 살았다. 그가 남다른 사업수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북한에서 일본·러시아·체코·루마니아 등 해외 무역업을 했던 이력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한국 사회에 좀 더 순탄하게 적응하고 싶었던 바람 때문이었다”고 그는 뒤늦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에 이어 지난해 10월엔 캄보디아 프놈펜에 캄보디아 최초의 홈쇼핑방송인 HSC(Home shopping Cambodia)를 설립했다. 이 공로로 그해 11월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홈쇼핑 방송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해요. 베트남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간 덕분에 가서 시험방송 20일 만에 본방송에 들어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매우 고마워했죠. 캄보디아와 우리에게 모두 좋은 일인데 훈장까지 주네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김 회장은 앞으로 단순히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닌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보다 다양한 판로를 만들어줄 수 있는 가치 있는 홈쇼핑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동남아 역시 중국의 값싼 제품이 몰려 들어와서 우리 중소기업들 제품들이 뒤로 물러서고 있습니다. HSV와 HSC에서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 제품보다 우리 중소기업 제품을 먼저 소개하고 있어요. 바로 이런 게 애국이 아닐까요. 앞으로 우리 중소기업 제품들을 더 많이 가져다 판매해서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자리매김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 김용 회장은…
1960년 평안북도 강계 출생. 김책공대 기업경영학과 졸업. 김정일예술대학 성악과 졸업. 1991년 귀순. 서울대 식품학과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2011년~현재 HSV·HSC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