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4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지법 경매 입찰장. 오전 10시 입찰 개시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입찰장 주변이 웅성거렸다. 서울 신사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정순홍씨(가명)는 이날 서울 서초동 모 경매아카데미에서 알게 된 경매강사 김모씨와 함께 입찰장을 찾았다. 정씨가 주목한 물건은 경기 용인에 위치한 1000가구가 넘는 A아파트로 분양면적은 105.7㎡(32평)형이었다. 감정가가 4억3100만원인 이 아파트는 지난 6월30일 처음 나와 한 차례 유찰된 후 이날 다시 경매에 부쳐졌다. 당초 정씨는 경험이나 쌓을 생각에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입찰자들이 많이 몰린 모습을 보고 내심 낙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애초 그는 입찰가로 3억5000만원 가량을 생각했다. 최근 시장 분위기상 2회 이상 유찰돼야 입찰자가 몰리기 때문에 1회 유찰 후 시작되는 개시입찰가(3억4480만원)보다 약간 더 쓰면 충분하리라 계산했던 것이다.
“선생님, 지금 분위기를 보면 3억8000만원은 쓰셔야 안심하고 낙찰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주변을 둘러보고 왔는데 A아파트를 낙찰 받으려는 사람들이 꽤 되는데요. 그렇게 해서도 (입찰에) 떨어지면 보증금(입찰가 10%)은 돌려받으니까 걱정 마세요.”
마감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정씨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김씨 조언대로 입찰금액을 썼다. 이후 낙찰자를 알리는 시간.
“사건번호 타경 2013-OOOOO번 입찰자들 나오세요. 입찰에는 총 5명이 참여해 최종 낙찰자는 3억8220만원을 쓴 정순홍씨입니다.” (경매집행관)
나중에 알아보니 2위 입찰가(3억7500만원) 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개시 입찰가(유찰가)보다 웃도는 금액이지만 정씨는 차점자와 간발의 차이로 낙찰 받았다는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낙찰 이후 주변 시세를 살피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명도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인근 아파트 시세를 살피던 중 그는 자신이 이 아파트를 비싼 값에 낙찰 받은 것을 알게 됐다. 정씨 아파트가 속한 단지의 현 시세는 3억9000~4억원선이다. 더군다나 그가 낙찰 받은 OOO동 중간층은 바로 앞에 근린상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경매수수료 등 낙찰 받는데 들어간 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급매 수준에 구입한 셈이었다.
이에 그는 강사 김씨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결정은 엄연히 본인 책임”이라는 것뿐이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럴 경우 차점자는 대체로 해당 경매 브로커와 결탁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정씨는 현재 변호사를 통해 낙찰 불허가를 진행 중이다.
최근 부동산 경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입찰장을 중심으로 경매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 수원·안산·의정부 등 주로 수도권 경매 입찰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 경매브로커는 지역 무료정보지나 인터넷 경매동호회에 ‘무조건 낙찰’ 등의 광고를 실어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입찰자를 꼬드겨 고가로 낙찰 받게 하는 방식이다. 그만큼 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비싸게 낙찰 받도록 유도한다. 통상적으로 경매브로커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챙기는 돈은 낙찰가 또는 감정가의 1~1.5% 수준이다.
이들 경매브로커는 차점자와 가격차가 크지 않는 선에서 낙찰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해 낙찰자에게 ‘간신히 물건을 낙찰 받았다’고 안심을 시키는데, 이때 차점자는 경매브로커와 사전에 결탁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고객의 입찰금액을 사전에 알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약간 낮게 쓰는 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2, 3순위 입찰자 모두 경매브로커와 사전에 결탁된 사람들이 참여한다. 한 부동산경매 전문가는 “거래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아파트보다는 단독, 근린상가, 토지 등을 대상으로 이러한 수법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1, 2위 내지는 1, 2, 3위와 그 뒤 순위자 사이 입찰가가 크게 차이가 난다면 이런 경우는 상당수가 중간에 경매브로커가 고가 낙찰을 유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일부 경매브로커는 타인 명의로 고객보다 많은 금액을 써 1순위로 낙찰 받은 뒤 고의로 입찰금을 잘못 내 낙찰을 무효화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렇게 되면 2순위자가 졸지에 낙찰자로 바뀌어, 선 순위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입찰금을 돌려받는다.

시세 파악 힘든 물건 이용
경기 일산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채를 써 잔금을 치렀다. 당초 경매브로커 신모씨가 추천해준 물건에는 가등기, 유치권 등이 설정돼 있었다. 그러나 브로커 신씨는 이들 권리는 명도 과정에서 충분히 무효화시킬 수 있다며 전체 금액의 80~90%를 경락잔금대출로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추후 김씨는 자신이 낙찰 받은 부동산으로는 최고 60%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잔금 납부를 포기하면 입찰보증금은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결국 김씨는 20%에 달하는 부족분을 연 30%의 사채로 충당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경매전문가는 “미리 사채업자와 결탁한 브로커가 ‘묻지마 낙찰’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며 투자 주의를 당부했다.
그렇다면 경매브로커 피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현장에서 입찰가를 바꿔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입찰 전 시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고가 낙찰과 경매브로커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황지현 종합법률사무소 청명 경매실장은 “100% 낙찰보다 제값에 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고가로 낙찰 받았다고 판단되면 불허가를 받아 입찰보증금이라도 건져야 한다. 현행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경매 불허가는 낙찰 이후 7일 이내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이때 법원이 불허가로 인정하는 기준은 법원 감정서와 실제 부동산이 다른지 여부다. 단독주택이나 근린시설의 경우 종종 낙찰 후 실제 측량 과정에서 감정평가서 내용과 다를 수 있다. 본인 소유의 부동산 일부가 도로로 편입돼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럴 경우 법원은 사전에 입찰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고 판단, 낙찰을 불허가하며 입찰보증금은 되0돌려준다. 황지현 실장은 “일반적으로 적정 입찰가(부대비용 포함)는 급매보다 10~15% 싼 수준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이 이상으로 금액을 높여 쓸 것을 조언한다면 고가 낙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