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경제학상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학자가 수상했다. 수상자는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다니엘 커너먼(Daniel Kahneman). 그는 비경제학 학위 수여자 중에서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다.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유는 경제학에 심리학을 완전히 융합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행동경제학에 관련된 서적이 봇물처럼 출간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이 비판을 받으면서, 대안적인 경제학을 찾고 싶은 욕구로 충만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심리기제에 대한 분석 없이 수학적이고 기계적으로 유추한 결과를 갖고 시장이 잘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배신감이 적잖게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무슨 거짓말을 했는가. 또 행동경제학자들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행동경제학의 주장들의 함의는 과연 무엇인가.

행동경제학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심리적인 외적 동기에 의존하면서 경제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심리적인 외적 동기에 의존하면서 경제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세계

표준 시장주의 경제학에서 묘사하는 인간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다. 경제인이라 번역되는 이 단어는 인간이 윤리적, 종교적 동기와 같은 외적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히 이기적 동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말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경제적 선택을 함에 있어 개인에게 주어지는 편익과 지불해야 하는 비용 등을 정확히 계산해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을 구매한다고 할 때, 소비자는 그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고, 그러한 정보를 기초로 자신이 그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얻는 편익과 그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전자가 후자보다 클 경우 제품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여러 대안적인 제품들 사이에 어느 한 제품을 구매해야 할 경우에는 각각의 제품이 주는 순편익(편익-가격)을 계산한 뒤, 순편익이 가장 높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 경제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주류 경제학이 상정하는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질 편익과 비용을 정확히 계산할 줄 아는 존재이고, 경제적 동기 이외에 윤리적·종교적·심리적인 외적동기 등은 경제행동에 작용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주류 시장주의의 경제적 인간상은 일찍이 소스타인 베블린이 ‘쾌락과 고통의 번개 계산기’라 통렬히 비꼬았듯이, 경제적 계산에서 완벽함 그 자체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인간상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외적동기에 관계없이 완벽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순편익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실험적 증거를 통해 반박한다. 행동경제학에서의 인간은 무릇 주류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바와 같이 완벽히 합리적이지도 않고, 자기를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존재다. 그 이유는 개인이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며, 또 계산능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1978년 수상)은 개인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완벽히 얻을 수도 없으며, 얻은 정보도 완벽히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전자계산기와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제한적 합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행동경제학의 인간상이 주류 경제학의 그것과 또 다른 점은 인간은 심리적인 외적 동기에 의존하면서 경제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다음의 두 가지 그림을 비교해 보자. ‘가’와 ‘나’의 원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크게 보이는가. 이는 전형적인 착시 현상 중의 하나다. 언뜻 보기에는 ‘가’의 원이 ‘나’보다도 더 크게 보인다. 하지만, 실은 두 원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주변 원의 크기의 상이함 때문에 그 크기가 각각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즉, 보다 작은 원 사이에 둘러싸인 ‘가’는 보다 큰 원 사이에 둘러싸인 ‘나’보다도 크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인간 심리의 상대성을 대변한다. 만약, 이를 제품에 비유해 원 ‘가’와 ‘나’가 제품이라 생각하고 각각의 원의 크기가 그 제품이 주는 순편익이라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나’가 아닌 ‘가’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이는 제품 구입이라는 경제행위가 외적 환경에 의해서 심하게 영향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외적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완벽한 정보를 기초로 계산할 수 있는 합리적 존재라는 주류 경제학의 가정을 부인하며, 경제학이 특히 인간의 심리적 분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전통 주류경제학의 가정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에 좀더 이해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아닌 휴리스틱의 세계

인간의 심리적인 편향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경제행위가 유도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제행위의 동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에 내재돼 있는 심리적 편향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귀결을 설명하려 한다. 주류 경제학의 인간이 ‘알고리즘(algorithm)’의 세계에 있다면, 행동경제학의 인간은 ‘휴리스틱(heuristic·어림셈 정도로 번역된다)’의 세계에 있다. 알고리즘의 인간은 모든 정보를 알고 있고, 그 정보를 정확이 연산할 수 있으며, 그 연산결과를 경제행동에 반영시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연산의 결과에 따라 경제행위의 양태가 결정된다. 마치 확실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에 적용될 법한 인간상이 알고리즘 세계의 인간상이다.

이에 비해 휴리스틱 세계의 인간은 모든 정보를 얻을 수도, 또 얻는다 해도 정확히 연산할 수도 없는 존재다. 따라서 여러 가지 심리적 편향을 갖고 있는 인간은 적당히 자신의 주어진 판단기준이나 규칙에 따라 경제행위를 결정한다. 이때 적용되는 판단기준 또는 규칙이 휴리스틱으로, 인간은 직관 등과 같은 방법에 의존해 최적이 아닌 대략적인 해법을 찾는다는 말이다. 바야흐로 휴리스틱의 인간상은 불확실성 세계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경제생활의 인간상으로서 어느 것이 적절한지, 또 경제학에서 가정해야 하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 심리에 내재하는 각종의 편향과 그것이 경제행위에 투영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없이 경제현상을 파악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행동경제학의 주장은 그 이론의 유용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또 단지 이론적인 논쟁의 차원을 넘어 행동경제학의 성과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풍부하다. 선진국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장기 기증률을 높이기 위해, 또 고령화에 대비한 저축률 제고를 위해 어떤 정책을 구사해야 하는지 등은 행동경제학을 이해하면 보다 쉽게 처방전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도 행동경제학의 지침들은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기도 하지만,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한다. 후자 능력은 바로 소비자의 심리법칙에 대한 이해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향후 연재에서는 딱딱하지 않는 행동경제학의 다양한 이론적 성과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심리법칙이 경제현상에 투영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경제정책 결정자, 기업가, 소비자 등에게 경제행위 지침을 알려주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특히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행동경제학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