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텍스’로 알려진 다국적기업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이하 고어)는 조직 관리에 있어서 혁신적인 기업 형태를 갖췄다고 평가받는 기업이다. 고어는 파격과 혁신에서 나오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제품 기술력에 반영시켜 꾸준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고어의 공식명칭은 ‘W. L. Gore & Associates Inc.’로 직역하면 ‘윌버트(Bill) 고어와 동료들’이란 뜻이다. 사명에는 고어가 직원을 대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임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창업자 빌 고어가 회사를 세울 당시만 해도 미국 내 많은 경영자들은 “종업원은 게으르고 일에 무관심하며 오직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빌 고어의 생각은 달랐다. 동양철학으로 설명하면 ‘성선설’에 가까운 그는 구성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을 기업 경영의 모토로 여겼다. 기술혁신에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기업에게는 수평적 조직 문화가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창업자의 정신이 이어져 고어는 동료 간 상호연관성을 높인 ‘격자형 조직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일대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소규모로 조직을 구성해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을 기술 혁신에 반영하고 있다. 고어는 기본적으로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직원들이 창의력과 협력을 이뤄내기가 힘들다고 본다.

2. GOREⓇ ULTRA-FLEXIBLE HYBRID CABLE ASSEMBLY
3. GOREⓇ VIABAHNⓇ Endoprosthesis
4. GOREⓇ필터
직원들이 업무에 임하는 자세도 명령이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목표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변 동료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고어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유연하게 구성된 소규모 격자형 조직은 고어의 혁신기술을 만들어 내는 산실로 자리 잡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뿐 아니라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장이식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이 기타 줄을 만들어 낸 것이 좋은 예다.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던 한 연구원은 어느 날 고어텍스 섬유에 함유된 폴리머로 산악자전거 바퀴살을 코팅했다가 예상 외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 기존 강철로 된 기타 줄에 땀과 기름이 묻었을 때 음색이 달라지는 것에서 착안한 이 연구원은 3년간의 연구 끝에 음색을 3배나 오래 유지하는 기타 줄을 만들었다. 이렇게 개발된 전자 기타줄 엘릭서(ELIXIRⓇ)는 지난 수년간 동종업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제품으로 현재에도 전문가들 사이에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고어는 직책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 회사는 가장 연차가 높은 직원이 팀장 등 리더 역할을 하지만 고어는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 경험이 많고 열정적으로 팀에 기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에 지지자들이 모이는 문화다. 그리고 이 중에서 ‘챔피언’(Champion)이라는 역할이 생기는데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사·선임’(Boss)과는 다른 개념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팀을 통제하는 상사·선임자와 달리 ‘챔피언’의 역할은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팀원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우에 따라서 A프로젝트에서는 챔피언을 맞고 있다고 해도 다른 프로젝트에는 팀원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김재경 고어코리아 컨트리리더는 “탈 권위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은 것이 우리의 독특한 기업문화”라고 소개했다.

상사 대신 스폰서가 조언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개인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고어는 해당 사안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권한을 갖고 있는 구성원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 결론을 내리고 있다. 김 컨트리리더는 “많은 동료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만큼 오히려 실행단계에서는 빠른 추진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고어 내부에서는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가리켜 워터라인(Waterline)이라고 말한다. 선박 밑바닥이 물에 잠기는 한계선을 말하는 워터라인은 업무 처리에 있어 관계자와 전문가가 서로 협의 하에 위험요소를 최소화시키는 고어의 핵심 경영 원칙이다. 이러한 경영 방식은 결정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기업운영에 있어서는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료의 성장과 발전을 도와 팀에 기여하는 스폰서(Sponsor) 제도도 고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업문화다. 상사·선임이라는 직책이 없는 대신 스폰서라고 불리는 멘토가 기업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자기 계발과 학습 요령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것 역시 스폰서의 몫이다.
이러한 기업철학이 밑거름이 되면서 고어는 16년 연속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울러 본사가 있는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및 영국에서도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되고 있다. 지난 10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서치·컨설팅 기업 GPTW(Great Place to WorkⓇ Institute)가 주는 ‘세계에서 일하기 좋은 다국적 기업’ 25개 중 하나로 2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한국지사인 고어코리아도 지난 11월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의 외국계기업 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12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은 GWP코리아(Great Workplace Korea)가 매년 심사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기 좋은 기업문화를 쌓아가고 있는 회사를 선정해 시상하는 국내 유일한 상이다.
김 컨트리리더는 “이번 수상으로 기회, 혁신, 만족을 추구하는 고어의 기업문화가 또 한번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상사나 부하, 서열이 없는 독특한 우리의 수평적인 기업 문화는 조직, 직원 스스로를 차별화시킬 뿐 아니라, 구성원 간 팀워크를 향상시켜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