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산하 건설계열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엠코 간 합병설이 국내 증권가에 관심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대엠코는 지난 2000년 옛 현대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이 분리된 후 건설업을 하기 위해 같은 해 설립한 기업이다.
이번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경영권 이양 문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현대차그룹은 삼성그룹처럼 지배구조가 복잡하다. 현재 현대차의 지배구조는 크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순환출자식으로 이어진 연결고리를 끊고 정의선 부회장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16.88%)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5조~7조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이다.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구조 고리를 끊고 싶어도 쉽게 감행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현실적인 고민 탓이다. 이 자금을 마련하는데 현대건설과 현대엠코의 합병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고, 합병설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재 비상장사인 현대엠코의 지분 25.06%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두 회사를 합병하게 될 경우 현대엠코가 우회상장하는 효과가 나타나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될 것으로 증권가는 분석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미 상장된 현대글로비스 지분 31.88%와 함께 기아차 지분을 사들이는 데 이를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의 합병을 일찌감치 실행하지 못한 것은 현대차그룹이 2011년 4월 현대건설을 인수할 때 채권단에게 향후 2년간 다른 법인과의 합병 또는 분할합병, 회사의 인적·물적 분할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즉, ‘합병금지 시한’이 있어서다. 이 시한은 2013년 4월로 종료됐다.
물론 현대건설과 현대엠코의 합병 실행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가장 큰 관건은 두 회사 합병을 기존 주주들이 가만히 손 놓고 보고 있겠냐는 점이다. 특히 현대건설 주주들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한 대형증권사 건설담당 애널리스트는 “현대엠코에게 유리하게 합병을 해야 대주주인 정의선 부회장이 이익을 보는데 이를 현대건설 주주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며 아울러 두 회사의 합병이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고 알려지는 것은 명분차원에서도 별 소득이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합병 부정론자들은 오히려 비상장사인 현대엠코를 상장사인 현대건설과 합치게 되면 활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엠코와 현대건설이 합쳐진다고 해도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 증가액은 6000억~7000억원 수준이며 아무리 많아도 1조원을 넘지 못한다”면서 “현대글로비스 지분(약 2조7000억원 추산)을 합친다고 해도 기아차 지분 인수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최대주주는 주식 양도세를 50%까지 물기 때문에 결국 순환출자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조원이 필요하다면 현실적으로 준비해야 할 돈은 10조원가량”이라며 항간의 합병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물론 현대건설과 현대엠코 모두 합병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소설에 가깝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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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기되고 있는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여부다. 현재 정부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기업 지배구조의 이상적인 모델로 내세우면서 유예기간을 2015년까지 연장한 상태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한 대기업들은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1~2년 사이 애경그룹, 한국타이어, 동아제약, 삼양그룹 등 중견 그룹들이 속속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면 어떤 구도가 이상적일까. 현재로선 그룹의 3대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 분할시켜, 3곳의 투자부문 회사를 지주회사로 바꾸는 구조가 가장 현실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그룹홀딩스(가칭)라는 지주회사의 지분만 확보하면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금산분리법 강화에 따른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금융중간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이래야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라이프생명·HMC투자증권 등 금융관련 계열사를 금융중간지주사 산하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목받는 기업들이 바로 정의선 부회장이 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현대엠코·이노션·현대오토에버·현대위스코·서림개발 등이다. 이 중 현대글로비스만 상장돼 있을 뿐 현대엠코 등 나머지 기업들은 현재 비상장 기업으로 분류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현대엠코의 매출을 키워야 추후 지주사 주식과 교환하거나 현금 재원 확보 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합병보다는 오히려 현대건설과의 업종 구분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대건설과 현대엠코는 사업에 있어서 겹치는 영역이 많다.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것은 지난 2011년 무렵. 그전까지 현대차그룹 내 건설관련 계열사는 지난 2000년 설립된 현대엠코가 유일했다.
2011년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차그룹 수뇌부가 현대건설 인수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도 현대엠코라는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룹 내 건설 사업은 현대엠코 하나로만 충분했기 때문에 현대건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건설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현대가에게 있어 현대건설은 그룹의 모태와 같은 존재다. 정몽구 현대차그룹의 선친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오늘날 그룹의 근간을 이뤄낸 것도 출발은 현대건설이었다. 결국 장남인 정몽구 회장은 인수전에 뛰어들어 지난 2011년 4월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 산하로 편입시켰다. 인수 당시 현대차그룹이 내세운 명분은 건설업종을 자동차, 제철과 함께 그룹의 3대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인수 이후 현대건설은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 중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해외건설 수익성 악화로 국내 건설업계 전체가 최악의 불황을 경험하고 있지만 현대건설은 가장 안정적인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3년 7월 발표된 종합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에서 현대건설은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엠코는 2013년 시공능력평가에서 13위를 기록, 외형 면에서 현대건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업의 질로만 놓고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유는 현대차그룹이 발주한 상당수 건설 사업을 현대엠코가 도맡아 추진하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계열사로 편입된 2011년 이후에도 현대엠코는 현대제철 제3고로, 현대하이스코 제2냉연공장 설비 공사를 신규로 수주했으며 2012년에도 그룹 내 공사로 1조3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런 이유로 현대엠코는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지난 2012년 21위에서 2013년 13위로 8단계나 뛰어올랐다.
그러나 최근 여러 사업에 있어 현대건설과 공동 시공사로 나서는 등 사업영역이 중복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현대건설은 해외건설과 국내 토목 사업에 집중하고 주택관련 사업은 현대엠코가 주도가 돼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와 관련해 양사 모두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업부문 많이 중복돼 재편 가능성 높아
현대엠코에서 계열사 공사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절대적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전체 매출 2조8742억원에서 관계사 공사가 차지하는 금액은 1조7793억원(61.9%)이나 됐다. 문제는 수주된 계열사 공사가 점차 줄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업계에서는 2013년 기준 현대엠코에서 그룹 공사비중은 10%대로 줄어들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현대엠코는 현재로선 비계열사 공사 매출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반면 현대건설은 주택사업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해외건설, 토목 등에 사업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 축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2년 말 현대하이스코가 알짜 사업이었던 냉연부문을 현대제철로 넘긴 것과 같은 방식의 사업구조 개편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은 정의선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다.
여기에 2014년 상반기로 예고된 현대건설의 주택사업 관련 재고자산 손실 반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건설은 이에 대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주택사업 손실액을 평가하기 위해서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사업 분할 이전에 부실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즉, 주택관련 사업을 현대엠코로 넘기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