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이기지 못하고 리복이 나이키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인 전문가들은 ‘로고 디자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로고 디자인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기업이나 브랜드 로고에는 어떤 전략과 비밀이 담겨 있을까.

사람은 청각보다 시각 이미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오래 전 동창의 얼굴은 기억해도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브랜드 혹은 기업의 이름이 청각으로 소비자의 기억에 남는다면 로고 디자인은 시각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기업 및 브랜드 네임을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기 위해 로고라는 시각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CI(Corporate Identity)로 불리기도 하는 기업의 로고 디자인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건축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페터 베렌스가 1907년에 최초의 기업 아이덴티티 시스템을 만들면서부터다. 하지만 그 기원은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출토된 토기에 새겨진 ‘S·P·O·R(the Senate and People of Roman·거대로마제국)’이라는 표시에서도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로마제국이 자신의 존재감을 생활도구에까지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사회 들어 로고가 상업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기업이나 브랜드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같은 서체라도 글자 간격 따라 느낌 달라

이러한 로고 디자인에는 몇 가지 기본적 원칙이 작용한다. 조기현 파슨스 디자인 스쿨 교수는 “로고 제작 시에는 차별화와 일관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로고 디자인을 보면 모두 쉽게 소비자의 눈에 띌 뿐 아니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한번 결정된 로고 디자인은 상품이나 TV 광고, 현수막, 명함 등 전반에 걸쳐 똑같은 형태로 쓰여야 한다. 때문에 로고 디자인을 하기 전에 그 디자인이 어느 곳에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로고 디자인의 좋은 예를 살펴보면 어떤 전략이 담겨 있는지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로고는 매킨토시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는 폰트인 ‘푸투라(Futura)체’를 사용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다. 이 푸투라체는 2000년 전 로마 트라야누스 기념주의 비문 글자를 비슷하게 디자인한 서체다. 하지만 기존 푸투라체보다 글자의 간격을 약간씩 더 넓혀서 권위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이후린 명지전문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는 “가로와 세로 획의 굵기는 물론 글자와 글자 사이의 미세한 차이만으로도 느낌이 달라지게 된다. 밀리미터까지 계산해서 수백, 수천 번 이상의 시안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루이비통과 같은 폰트인 푸투라체를 사용한 돌체앤가바나는 글자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서 젊음과 도시적인 느낌이 들도록 했다. 이렇듯 글자의 간격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로고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 석유화학기업 엑슨 모빌(Exxon Mobil)의 Exxon 로고는 두 개의 x자가 항상 정해진 비례로 쓰이도록 각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세계 어느 곳을 가나 Exxon이라는 로고가 항상 똑같은 모양과 이미지로 부각되는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글로벌화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로고 디자인에 남다른 공을 들이는 곳이 많다. 몇 번의 변천과정을 겪은 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삼성의 오벌(타원형) 마크는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며 새로 제작한 것이다.

그 무렵 한국의 대기업들은 ‘세계화’ 추세에 맞춰 기업규모는 커져 갔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뚜렷한 로고 이미지가 없었다. 삼성 또한 기업 이미지에 대한 체계가 없이 로고 또한 별 세 개가 그려진 마크와 한자로 표기된 삼성 등 여러 가지가 혼용되고 있었다. 세계화에 발맞춰 대표성을 띤 로고 제작의 필요성을 느낀 삼성은 미국의 유명 로고 전문회사인 L&M에 의뢰해 현재의 로고를 만들었다.

이호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콘텐츠스쿨 교수는 “오벌 마크 또한 한 차례 미세하게 조정을 했다. IT 브랜드라는 삼성의 기업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 ‘삼성 블루’라고 부르는 고유의 파란색을 사용하고 있는데, 색채 전문기업인 팬톤사의 286블루 컬러만을 쓴다”고 설명했다.

LG 로고는 ‘신라의 미소’로도 잘 알려져 있는 신라시대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됐다.
LG 로고는 ‘신라의 미소’로도 잘 알려져 있는 신라시대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됐다.

대기업 로고 제작비용, 수억~수십억원

LG의 로고는 ‘Lucky’와 ‘Goldstar’의 앞 글자를 결합해 만들었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과거 ‘럭키’의 발음을 본뜬 락히(樂喜) 화학공업사를 만들었고, 이후 금성사를 설립하면서 두 기업의 사명을 합해 ‘럭키금성’으로 이어졌다. LG 역시 세계화 추세에 맞춰 1995년 현재의 로고를 제작했다. L과 G를 결합한 이 로고는  미국의 랜도(Landor)사에서 제작했는데, 당시 디자인 콘셉트는 '미래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랜도사의 디자이너는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는 신라시대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를 보고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한다. 로고 문양을 보면 웃는 얼굴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국내 로고 제작사인 디자인파크는 이 기본 로고 디자인을 수십 개 계열사에 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임혜진 디자인파크 브랜딩 팀장은 “지금은 SK, CJ, KT 등 영문이니셜 2개로 된 사명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큰 변화였기 때문에 섣불리 변경하지 못하고 LG트윈스 야구단, LG25 편의점 명칭부터 시범적으로 바꿔본 후 대중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고 최종 변경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근래에는 로고 서체를 기업의 공식 문서용 서체로 사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KT 역시 로고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서체인 ‘KT체’를 사내 문서에 활용하고 있고 일반 폰트로도 제작했다. 기업 이미지의 통일성을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로고가 가지는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고 한다.

로고 디자인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기업의 규모에 따라 로고 제작에 투자하는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국내 대기업의 경우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정도까지도 들인다고 한다. 20여년 전인 1993년에 삼성이 현재의 로고 디자인을 의뢰했을 당시 28억원가량을 지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호준 교수는 “단순한 로고 하나가 수십억원이나 된다는 것에 대해 일반인들은 너무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전 조사 및 인터뷰, 디자인 개발비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로고는 한번 만들면 수십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지속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로고 비용을 제품 판매량을 기준으로 한 ‘러닝 개런티’ 방식으로 지급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농심 신라면 봉지에 있는 ‘신(辛)’자는 한 유명 서예가가 직접 쓴 캘리그래피(Calligraphy·손글씨체)였는데, 당시 이 서예가는 일정 금액을 부르기가 애매해 ‘한 봉지당 1원을 달라’고 했었다고. 한 로고 디자인업계 관계자는 “당시 서예가는 신라면이 그렇게 많이 팔릴지 모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역술인 도움 받아 로고 디자인하기도

기업 로고는 장기적인 생명력이 필요한 만큼 디자인 면에서 유행보다는 지속성을 중시하지만, 제품명(BI·Brand Identity)을 디자인할 때는 다양한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최근엔 주류 광고에 캘리그래피가 많이 적용되고 있다. 음료의 경우 장식적이지 않은 고딕체의 문자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주류의 경우 장식이 많이 들어간 문자가 사용되는 것도 특징이다.

그런데 로고가 기업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디자인 전문가들이 로고 제작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간혹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로고 디자인 전문가가 겪은 일이다.
“대구의 한 유명 섬유회사에서 찾아왔었는데, 로고 디자인에 반드시 태극무늬와 육각형을 넣어서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점집에서 그렇게 만들어야 회사가 잘 된다고 했다나요. 그래서 세 가지 시안을 만들어줬는데 다시 역술인을 찾아가 세 개 중에 골라 달라고 해서 로고를 결정했었어요.”

로고 디자인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기업이나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인지’시키는 것이다. 그 내용에 쓰인 ‘언어’가 눈에 들어오고 서체 자체의 존재감은 없어야 하는 것이 본래의 역할이라고. 이후린 교수는 “스위스의 유명한 서체디자이너 아드리안 푸르티거는 ‘수프를 먹고 난 후에 사용한 스푼의 형태가 생생히 기억난다면 그 스푼의 디자인이 나쁘다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폰트는 불쾌감이 들고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그 안에 담긴 언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