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은 재테크의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다. 정기예금 금리는 연 2%대에 머물렀다. 1000만원을 1년 만기 정기예금에 넣으면 손에 쥐는 이자가 20만원 남짓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기준으로 1800~2000의 박스권에서 움직였다. 시기를 잘 택하면 주식 투자로 10%대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시기를 잘못 택하면 손실을 보기 쉬웠다. 게다가 가계의 자산 중 80%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부동산은 회복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은 작년 11월까지 1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렇게 어두운 상황에서 고수익을 노리고 재무상태가 안 좋은 기업의 CP(기업어음)나 회사채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동양사태를 맞아 실패를 맛봐야 했다. 자금 흐름이 어려웠던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작년 10월 일제히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CP와 회사채가 휴지조각 같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으로 갈아탄 일부 투자자들은 정기예금 금리보다는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도 시장 상황이 급변동할 때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작년 주식형펀드에서 투자금이 빠지는 데도 1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린 롱숏펀드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원금보장형 ELS(주가연계증권), 가치주펀드, 시니어론펀드 등이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에 적합한 투자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도 재테크 시장 상황은 작년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보다 더 위험한 변수는 미국의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서 돈을 푸는 것) 축소가 진행되면서 어떻게 시장이 요동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을 올해도 구사할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정기예금 금리보다는 높은 연 3~6%대의 중간 수익을 올리는 것을 추구하는 전략을 말한다. 금융투자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펀드 투자자들의 연간 기대수익률은 2012년 기준으로 16.5%에 달한다. 그나마 2008년의 25.3%보다 훨씬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을 추구하려면 기존보다 눈높이를 훨씬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면 투자 상품을 골라야 한다. 재테크 전문가들이 꼽는 중위험·중수익 투자에 적합한 상품으로는 ‘롱숏펀드’ ,‘원금보장형 ELS’, ‘가치주펀드’ ‘시니어론펀드’ 등이 있다.
롱숏펀드는 주가가 오를 만한 종목은 사고(롱·Long), 주가가 떨어지거나 상대적으로 덜 오를 종목은 공매도(숏·Short)를 하는 전략을 추구하는 펀드다. 이런 전략을 채택하면 주가의 등락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수익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주가가 대세 상승기에 들어간다면 이런 전략은 주가가 오를 만한 주식에만 ‘올인’하는 성장형 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낮게 나온다. 작년 전체 주식형펀드(ETF 제외)에서 4조5000억원 정도의 자금이 빠졌지만, 롱숏펀드에는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들어왔다.
원금보장형 ELS는 증권회사에서 판매하는데, 투자자가 맡긴 돈 대부분을 국공채에 넣어 놓고 극히 일부만 주가, 환율 등에 따라 고수익이 나올 수 있는 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전략을 쓴다. 만기까지 국공채에 넣은 돈으로 원금을 보장하고, 파생상품 투자에서 추가 수익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에 원금보장형 ELS는 2630억원어치가 발행돼 전년(297억원)보다 10배 가까이 발행액이 늘었다.
가치주 펀드는 주가가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보다 낮은 주식들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방식의 펀드로 시장의 변동과 큰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대표적인 가치주 펀드로 꼽히는 신영밸류고배당주식펀드에는 작년에 1조1200억원의 자금이 몰리면서 주식형펀드 중에서 가장 많이 수탁고가 증가했다.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펀드에도 3535억원이 유입되면서 운용액이 1조원이 넘는 펀드가 됐다.
시니어론펀드는 채권형 펀드이기는 하지만 금리가 상승할 때 수익을 낼 수 있게 설계된 펀드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시장 금리가 상승할 것에 대비한 상품이다. 투자 대상은 미국에서 신용등급 BBB- 이하를 받은 기업들에 대한 변동금리 대출 채권이다.
그렇다면 중위험·중수익 상품 중에서 작년에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롱숏펀드’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롱숏펀드는 기본적으로 운용 자산 중에 채권을 30~70% 비중으로 투자해서 채권 금리 정도의 기본적인 수익을 내고 추가로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해서 정기예금 금리를 초과하는 수익률이 나오도록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할 때는 ‘롱숏 전략’을 취하는데 롱숏 전략이란 주식이나 지수선물에 대해 매수(Long)와 공매도(Short)를 적절히 섞어서 주가의 방향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수익률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은 종목들은 매수하고 주가가 떨어지거나 상대적으로 덜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매도하는 ‘포트폴리오(Portfolio) 전략’과 통계적으로 유사한 주가 흐름을 보이는 두 종목 사이에 일시적으로 수익률 괴리를 일으키는 경우에 수익률이 일시적인 종목은 팔고(Short) 일시적으로 낮은 종목은 사뒀다가(Long) 수익률이 다시 비슷하게 움직이게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 ‘페어 트레이딩(Fair Trading) 전략’ 등을 구사한다.
또 대부분의 롱숏펀드들은 이 같은 전략 이외에도 공모주 청약에 참가하거나 블록딜(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대량으로 사고파는 거래) 등에 참여하는 ‘이벤트 드리븐(Event Driven) 전략’을 추가로 활용해서 펀드 수익률을 높인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롱숏펀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50’,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30’, ‘삼성알파클럽코리아롱숏’ 등이 있다. 대체로 펀드 이름에 ‘롱숏’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쉽게 롱숏펀드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중위험은 ‘리스크 프리(무위험)’가 아니다
작년에 특히 롱숏펀드가 많이 출시됐는데 이들 외에도 한국투자신탁운용,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대신자산운용, 유리자산운용 등이 롱숏펀드를 시장에 내놨다.
문수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롱숏펀드는 주식 편입 비율에 따라 시장의 영향을 다르게 받는다”며 “롱숏펀드를 고를 때는 순편입비와 총편입비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순편입비는 롱(사자) 투자 비중에서 숏(팔자) 투자 비중을 뺀 것으로 주식시장에 실질적인 노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의미한다. 총 편입비는 롱 투자 비중과 숏 투자 비중의 절댓값을 합한 것으로 주식시장에 노출된 총 주식투자 비중을 의미한다. 예컨대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30은 롱 투자 비중이 30%, 숏 투자 비중이 20% 정도 되도록 운용한다. 주식시장에 대한 노출 정도가 적으면 변동성은 작지만 수익률은 낮은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위험·중수익 투자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우선 중위험이란 것이 고위험 투자 상품에 비해 리스크에 대한 노출이 낮다는 것이지 ‘위험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비율은 작지만 원금 손실의 위험성은 상존한다. 또 주식시장이 대세 상승기에 들어선다면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던 다른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지만 중위험 상품 투자자들은 그보다는 낮은 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
상품마다 특성도 있다. 롱숏펀드는 아직 우리나라에 전문적인 운용 인력이 많지 않아 펀드마다 수익률 편차가 크다. 또 수익보다는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기 때문에 대세 상승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치주 펀드도 기본적으론 주식형 펀드라서 하락장이 지속되면 수익률이 나오기 힘들다.
원금보장형 ELS도 원금 손실의 위험은 작지만 운용을 책임지는 증권사가 부도가 나기라도 한다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최근 동양사태로 ELS 투자자들이 불안해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주가가 50~60% 급락하는 경우라도 생기면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시니어론펀드는 금리가 오르지 않는다면 수익이 나오기 어렵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리스크 없이 돈을 불려주는 것을 원한다면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수밖에 없다”며 “중위험·중수익 투자 전략도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Tip | 해외 상품 3대 점검 포인트
환율·세금·역내외 설정 꼼꼼히 따져
시니어론펀드 같은 상품은 해외의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다. 롱숏펀드도 크게 본다면 해외 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롱숏펀드에도 투자해 볼 수 있다. 작년 상반기에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해외의 인컴펀드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처럼 중위험·중수익 상품도 해외 투자를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런데 해외 투자 상품에 가입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검 포인트를 꼭 챙겨봐야 한다.
우선 원화 강세가 얼마나, 어느 정도로 지속될지의 여부다. 예컨대 달러로 투자한 상품에서 수익이 나더라도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원화로 환전했을 때 손해를 볼 수 있다. 환 헤지를 하면 원화 강세에 대한 위험은 피할 수 있지만 헤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굳이 3~6%의 중수익을 추구하면서 헤지 비용까지 지불할 필요는 없을 수 있다.
둘째, 세금 문제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주식에 투자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비과세되고, 주식배당이나 채권이자 수익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15.4%)가 과세된다. 그런데 해외펀드에서 발생한 이익은 모두 이자소득세가 과세된다. 또 이익이 다른 금융소득과 합쳐 연간 20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셋째, 역내 상품인지 역외 상품인지 따져봐야 한다. 역내 상품이란 국내에 등록된 자산운용사가 직접 해외 주식이나 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말하고 역외 상품이란 해외 운용사가 운용하는 상품을 국내 증권사가 들여다가 판매하는 상품을 말한다. 두 상품의 차이는 원화로 거래가 되느냐의 여부다. 역내 상품은 원화로 거래할 수 있지만 역외 상품은 원화를 환전해 거래하게 돼 환위험에 노출된다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