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산업이 훈풍을 타고 쾌속 운항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긴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마침내 반등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저가 물량공세를 펼친 중국마저 큰 격차로 따돌리며 세계 1위 자리를 확고히 했다.
- 현대중공업이 지난 2월19일 세계 최초로 건조에 성공한 LNG-FSRU
- 현대중공업이 지난 2월19일 세계 최초로 건조에 성공한 LNG-FSRU
드릴십·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박 싹쓸이

지난 3월10일, 현대중공업은 울산 본사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의 이름을 짓는 명명식을 가졌다. 세계 조선업계에서 선박 5척의 명명식을 동시에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8년 10월 한달간 12척, 2010년 6월에는 1주일간 10척에 대한 명명식을 열어 각각 월간과 주간 최대 명명식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날 명명식에 오른 컨테이너선은 길이 368m, 폭 51m, 높이 29.8m의 1만3800TEU(약 6m짜리 컨테이너 단위)급 컨테이너선 2척과 1만500TEU급 컨테이너선 3척이다. 1만3800TEU급 컨테이너선의 경우 갑판 면적이 축구장 3개에 달한다.

5척의 선박은 3월20일부터 6월 초까지 차례대로 선주사 측에 인도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55척의 선박을 인도하면서 이 중 45척의 명명식을 가져 1주일에 한 번꼴로 명명식 행사를 열었다. 올해에는 61척의 선박을 인도할 예정이다.

-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10일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의 명명식을 동시에 열었다. 사진은 이날 이름이 붙은 컨테이너선.
-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10일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의 명명식을 동시에 열었다. 사진은 이날 이름이 붙은 컨테이너선.
현대중공업, 컨테이너선 5척 동시 명명식 가져
국내 조선업계가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 1월에 이어 2월에도 수주량에서 중국을 크게 앞서며 수주 1위 자리를 지켰다. 국제 해운·조선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1~2월 국내 조선사 수주량은 313만1387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194만642CGT)보다 61% 증가했다. 올해 수주액은 70억1800만달러로 지난해 37억4200만달러보다 88%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27.6%에서 42.3%로 뛰어 오르며 중국(31.4%)을 크게 따돌렸다. 반면 중국은 지난해 1~2월 299만2009CGT에서 올해 2월 누적기준 232만5455CGT로 감소했다. 이는 한국의 1~2월 누적 수주량의 3분의 2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빅3’는 지난 2월까지 80억달러에 달하는 수주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은 상선을 중심으로 무려 50척을 수주해 전년 동기 실적(22억달러)의 2배가 넘는 총 46억달러의 수주를 따냈다. 컨테이너선 13척과 액화석유가스(LPG)선 19척, 유조선 14척, 부유식 원유생산설비(FPU) 1기 등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월14일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나스와 14억7000만달러 규모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생산설비(FLNG) 1척을 건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일반 컨테이너선 1척 가격이 2억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감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까지 수주하면서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서만 20억5000만달러어치를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월 말 아시아지역 선주 두 곳으로부터 8만4000㎥급 초대형 LPG운반선(VLGC) 8척을 따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총 17억4000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쇄빙LNG운반선 추가분과 VLGC 옵션분 등 4척이 남아있어 향후 추가 수주 가능성도 높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경기 회복 기대감으로 전체 발주량이 늘어나고 있다”며 “중국보다 기술력에서 앞선 국내 조선사들이 완연하게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황은 이미 지난해부터 상승세가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새로 만든 선박의 거래 가격을 지수화한 ‘신조선 선가지수’ 역시 지난해 4월까지 126으로 바닥선을 유지하다 이후 8개월 연속 상승해 지난 1월 초에는 135까지 회복했다. 지수가 높아졌다는 것은 선박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고부가가치 선종의 발주량이 크게 늘었다는 방증이다.

경기 회복세를 반영하는 상선 수주량도 증가했다. 국내 조선 3사는 올 들어 모두 68척의 상선을 수주, 전년 동기(12척)보다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실적을 거두고 있다. 수주액도 77억9000만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정동익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수주환경은 유럽의 재정위기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지난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며 “특히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는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과 호주·러시아·서아프리카 등에서 진행 중인 가스 생산 개시 등으로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을 제치고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 국가로 도약했다. 글로벌 조선업계는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1위를 차지한 이유로 양과 질적으로 일본을 압도하는 고급 조선설계 엔지니어 보유, 풍부한 현장 경험의 기술인력, 최신 설비 등을 꼽는다. 일본이 조선산업은 사양산업이라며 한눈을 파는 동안 한국은 고기술, 고부가가치 선박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조선산업을 노동집약형 산업이 아닌 고도의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1만8270TEU 컨테이너선의 모습
-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1만8270TEU 컨테이너선의 모습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선박 집중이 상승 요인
최근 국내 조선사들이 상승세를 타는 이유 역시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세계 조선시장은 해양시추용 드릴십 같은 특수선박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고부가가치의 해양 플랜트 설비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 물량을 국내 조선사들이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벌크선과 유조선 등 저가 수주에 집중하고 있는데, 발주 자체가 드물다.

국내 조선사들은 대형선박·고부가가치 선박의 건조,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월20일 세계 최대인 1만9000TEU 컨테이너선 착공식을 가졌다. 이 선박은 수주 당시 1만8400TEU였으나 선주사의 요청으로 규모가 커졌다. 선박 대형화 추세에 대비해 설계 능력을 갖춰 놓은 것이 선주사의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난 2월19일에는 ‘바다 위 LNG기지’로 불리는 LNG-FSRU(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 건조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2011년 노르웨이 회그LNG로부터 수주한 이 설비는 축구장 3배 크기로, 리투아니아 연안에 설치돼 7만톤의 가스를 저장, 공급하게 된다. 이 설비는 ‘독립’이란 뜻의 ‘인디펜던스(Independence)’호로 명명됐는데, 명명식에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2년여의 연구 끝에 LNG-FSRU 독자 설계 능력을 갖췄다.

현대중공업은 1975년 해양플랜트 분야에 뛰어든 이후 엑슨모빌, BP, 쉘, 토탈 등 전 세계 30여개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수주한 180여개의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러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당 20억달러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 해양 플랜트의 최강자임을 재확인시켰다. 현재 노르웨이 골리앗 FPSO(생산저장하역 설비) 등 22개의 해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FPSO는 해양 유전 지대에 떠서 원유를 생산해 탱크에 저장했다가 수송선에 건네주는 역할을 한다. 현대중공업이 제작하는 FPSO의 가격은 22억달러(약 2조35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1996년 국내 최초로 수주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초대형 FPSO 11기를 제작·인도했다.

현대중공업은 미래 시장을 선도할 선박 건조와 시스템 개발에도 앞서 나가고 있다. 조선에 정보기술(IT)을 융합한 ‘스마트십 2.0’ 개발이 대표적이다. 스마트십 2.0은 선박의 운항정보를 단순 모니터링·제어하던 ‘스마트십 1.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지상에서 모니터링은 물론 기상상황과 주변 선박들의 운항정보 등을 종합 분석해 선박항해를 지원하는 것으로, 2015년 개발 완료가 목표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스마트십 2.0을 구성하는 선박자세 최적화솔루션, 최적 경제운항 시스템 등의 설계를 완료했다. 선박자세 최적화솔루션은 최고의 연비효율로 선박이 운항할 수 있도록 흘수선(선박이 물에 잠기는 깊이)의 정보를 항해사에게 알려 경제적인 운항을 돕는 시스템이다. 최적 경제운항 시스템은 파고와 기상상황을 분석해 최상의 항로를 제시해 준다. 두 시스템이 1만TEU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적용될 경우 기존 대비 약 3%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연간 8억원에 해당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IT기술을 활용한 스마트십 2.0 개발을 통해 중국, 일본 등 타 국가 조선소와 기술격차를 더욱 벌릴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에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FLNG선의 제작이 진행 중이다. FLNG(Floating 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한 뒤 이를 정제하고 LNG로 액화해 저장·하역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 설비다. 기존에는 해저 가스전에서 뽑아 올린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육상으로 보낸 뒤 이를 액화·저장해뒀다가 LNG선으로 수요처까지 운송했다. 하지만 FLNG는 해상에서 이러한 모든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로열더치로부터 수주한 세계 최초의 FLNG 생산설비인 ‘프리루드 FLNG’의 진수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선박은 길이 488m, 폭 74m, 높이 110m 규모로 선체 내부의 저장탱크에는 국내 3일치 소비량에 해당하는 LNG를 저장할 수 있다. 진수를 마친 FLNG는 앞으로 2년여에 걸쳐 선체 내부 탱크 제작, 내외부 의장 작업 등이 진행된다. 삼성중공업은 이를 통해 향후 전개될 FLNG 수주전에서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3도크 야경 2.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11월 성공적으로 진수를 마친 ‘프리루드 FLNG’
1.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3도크 야경
2.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11월 성공적으로 진수를 마친 ‘프리루드 FLNG’


빅3, 대형선박·해양플랜트 분야 우선 공략
삼성중공업의 올해 수주 목표는 150억달러다. 이를 위해 LNG선과 대형 컨테이너선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해양플랜트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심해시추활동의 증가와 노후선 교체 수요가 맞물려 있는 시추설비 분야에서 시장 우위를 지속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대형 잭업리그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시추설비 분야의 포트폴리오도 다양화했다.

잭업리그는 대륙붕 지역의 유전 개발에 투입되는 시추 설비다. 선체에 장착된 다리를 해저면에 고정시키고, 선체를 해수면 위로 부양시킨 후 시추작업을 수행한다. 파도와 조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심은 얕지만 파도가 거친 해역에 주로 투입된다. 잭업리그는 1기당 선가가 6억5000만달러로, 평균 5억~6억달러에 발주되는 드릴십보다 비싸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1년 세계 최초로 1만8000TEU 컨테이너선 20척을 수주하면서 세계 조선 역사를 새로 썼다. 수주액만 4조원이 넘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이 선박은 길이 400n, 폭 59m로 갑판 면적만 축구장 4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지난해 6월 인도된 1만8270TEU 컨테이너선 ‘머스크 맥키니 몰러’호는 컨테이너 당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금까지 수주한 FPSO는 6기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인도한 토탈의 ‘파즈플로 FPSO’다. 이 시설의 건조비는 21억달러에 달한다. 길이 325m, 폭 61m, 높이 32m에 자체 무게만 12만톤 규모다. 여기에 저장되는 원유의 양은 우리나라 일일 석유 사용량(190만배럴)과 맞먹는다.

드릴십 역시 독자 개발한 설계 모델을 바탕으로 다수의 수주 실적을 올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7척의 드릴십을 40억4000만달러에 수주했다. 업계 최대 규모다. 특히 설계와 구매, 생산, 설치, 시운전까지 모든 공정을 자체 기술로 수행하는 턴키방식으로 수주했다. 이러한 일괄수주방식은 모든 프로세스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