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포카칩, 초코칩 쿠키, 고래밥, 웨하스, 닥터유…. 귀에 익숙한 오리온의 과자들이다. 오리온 부사장을 지내고 지난 1월 퇴임 후 ‘미래과자연구소’를 만들어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관중 소장은 오리온에서 30년 넘게 일했던 ‘과자의 달인’이다. 얼마 전엔 자신의 과자인생을 담은 책 <창조적 위기극복 스토리-과자전쟁>을 펴내기도 했다. 이 소장을 만나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도는 과자의 탄생 비화를 들어보았다.
“아빠! 오늘은 과자 없어요?”

안방으로 가는 내내 아이들이 양쪽 다리에 한명씩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걸음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안 그래도 요즘 한창 개발 중인 과자가 있어서 가져왔는데, 한번 같이 먹어보고 맛있는지 얘기해 줄래?” “와~좋아요.” “아빠, 최고!”

아이들은 항상 아빠 이관중 소장의 퇴근을 기다렸다고 한다. 매일 새로운 과자들을 들고 귀가했기 때문이다. 아직 시중에 공개되지 않은 과자를 가져올 때면, 두 아이들이 누구보다 깐깐한 평가자가 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초코파이, 고래밥, 초코칩 쿠키 이런 걸 먹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어느 새 20대 후반이 되었어요. 아직도 오리온 과자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와, 맛있다’ 하는 표정을 보면 그건 진짜 맛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한번 맛보고 그냥 놔 버리면 그건 맛없는 거죠. 아이들의 표정은 솔직하니까 누구보다 정확한 검증이 되는 겁니다.”

1981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올 1월 퇴임까지 30년 넘게 오리온에 몸담았던 이관중 소장은 오리온 과자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인물이다. 그가 히트시킨 과자만도 일일이 손꼽기 힘들 정도. 그 중에서도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에너지바인 ‘닥터유’를 만들어낸 것이었다고 한다.

지난 2008년 11월 출시된 이후 프리미엄 과자 시장을 이끌고 있는 닥터유는 이관중 소장과 유태우 전 서울대 가정의학과 박사가 공동 개발한 제품이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유태우 박사는 몸에 좋은 과자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같은 뜻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은 ‘멜라닌 파동’으로 과자 및 분유 등에 들어간 인공첨가물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 과자 자체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관중 소장은 과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오히려 좋은 과자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유태우 박사를 포함한 서울대 의대 국민건강팀과 오리온 연구소 직원 7명이 함께 손잡고 6개월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 몸에 필요한 균형 있는 영양소 비율은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 65:15:20인데, 그때 시중의 과자들은 대부분이 탄수화물 75~80%, 지방 25~30%, 단백질은 5% 미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밀가루 외에 단백질 소스를 만들어내느냐, 지방과 설탕을 안 쓰거나 줄일 수 있느냐를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밀가루 대신 통곡물을 떠올렸고, 지방 대신 땅콩과 아몬드, 설탕 대신 크랜베리와 같은 단맛이 나는 과일을 쓰게 된 것이죠. 수천 번도 넘게 원료를 배합하고 테스트한 끝에 지금의 에너지바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닥터유에 이어 내놓은 프리미엄 과자 브랜드인 ‘마켓오’ 시리즈도 오리온의 야심작이다. 특히 ‘마켓오 리얼브라우니’는 합성 첨가물을 넣지 않고 100% 자연재료만을 사용해 만들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반 밀가루에 비해 식이섬유가 6배나 많은 통밀로 만든 ‘다이제’ 역시 장에 좋을 뿐 아니라, 비타민과 무기질 함량이 높은 건강 과자다.

- 이관중 소장은 “과자회사 사람들은 시식할때 오감으로 모두 맛을 본다”고 설명했다.
- 이관중 소장은 “과자회사 사람들은 시식할때 오감으로 모두 맛을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 1987년부터 2004년까지 오리온과 제휴 관계였던 세계적인 식품회사 ‘프리토레이’에서 10년간 파견 근무를 하면서 선진 시스템을 접할 수 있었던 이 소장은 이를 오리온에도 적용시켰다고 한다. 프리토레이와의 제휴로 국내 시장에 프리토레이의 치토스와 썬칩도 처음 소개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제과는 그저 경험과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프리토레이는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트랜스 지방, 첨가물의 과다한 사용에 대한 문제도 일찌감치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를 오리온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평생을 과자를 만드는 한 우물만 파면서 과자에 관해선 달인 수준이 되었을 터. 얼마나 많은 과자를 먹어왔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과자라면 질릴 만도 하지 않을까.

“저는 아직도 과자가 맛있어요. 매일 아침 회의 때마다 과자를 먹으면서 하루 업무를 시작했죠. 커피 한잔 하면서 다이제도 먹고 에너지바도 먹고 그랬죠. 그게 습관이 돼서 지금도 아침 대신 에너지바를 먹어요. 아침밥 먹을 시간도 없고, 아내한테 밥 해 달라고 하기도 미안한데 영양소도 풍부하고 맛도 좋으니 얼마나 좋아요? 허허.”

과자회사 사람들은 과자를 시식할 때도 그냥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겉모습과 향부터 확인한다. 그 다음엔 원료의 신선도 및 제품의 맛과 식감을 분석하기 위해 맛을 보는 단계다. 이 소장은 “첫 깨뭄(first bite)부터 목 넘김 후(after taste)까지 혀가 느끼는 맛의 순간들을 단계적으로 음미한다. 미각은 기본이고 촉각, 청각, 후각, 시각의 오감이 모두 잘 디자인된 과자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마트에 가면 한 군데만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점을 한꺼번에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지역별로 소비자의 취향이 어떤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지역별 소비자들의 기호를 자연스레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마켓오나 닥터유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강남에서 잘 팔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 분당이나 노원에서 더 많이 팔린다”며 웃음을 보였다.

3년 전쯤 성수동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서너명이 마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짜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바가 있어”라는 한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가 “스니커즈?”라고 답했단다. 이 말에 “아냐, 닥터유 에너지바라고 있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고. 닥터유를 만든 당사자로서 무척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한다.

오리온의 대표적인 상품인 초코파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1974년 출시돼 현재 전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는 초코파이는 ‘과자 한류’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국민과자다. 중국에서는 제사상에 오를 정도라고 한다.

“상표권 문제로 초코파이 후속주자인 롯데와 법정 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오리지널 초코파이는 오리온이라는 걸 소비자들은 다 알지 않나요. 또 초코파이에 ‘정(情)’을 붙인 이미지 마케팅에서 우리가 앞섰다고 봅니다.”

지난해 5월 AC닐슨 조사에 따르면 초코파이 시장 점유율은 오리온 초코파이가 77%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올 1월 오리온 부사장직에서 퇴임한 그는 최근 과자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미래과자연구소’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앞으로 보다 생명력이 긴 과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먹었던 과자를 성인이 된 지금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먹게 될 겁니다. 초코파이 역시 올해로 나온 지 꼭 40년이 되는데 아마 100년 이상 갈 거라고 봐요.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과 같이 하는 과자인 거죠. 앞으로 소비자들이 원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입니다.”

▒ 이관중 소장은…
1956년생. 1980년 전남대 농화학과 졸. 2001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2007년 헬싱키경제대 MBA 경영학 석사. 2001~2004년 오리온 프리토레이 생산구매담당 상무이사. 2005~2009년 오리온 연구소부문 총괄 부사장. 2010~2013년 오리온 닥터유사업 마케팅 총괄 부사장. 2014년 4월~현 미래과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