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DP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사람들은 ‘우주선’과 닮았다고 했다. 대다수 언론매체들도 “동대문에 우주선이 내려 앉았다”는 식으로 비유했다. 거대하면서도 둥그스름한 외관이 SF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우주선과 비슷한 이미지를 풍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DDP 기본설계를 맡았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우주선에서 착상했다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 그의 DDP 설계 개념은 이른바 ‘환유(換喩)의 풍경’이다. 환유는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로서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비유를 말한다. 가령 ‘글을 쓰기 시작하다’를 ‘붓을 들다’로 비유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어쨌든 자하 하디드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프로젝트가 가진 역사적, 문화적, 도시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환유적으로 통합해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DDP의 외관은 어떤 구체적 사물을 본뜬 게 아니라 건축가의 철학과 시선, 감성의 구현체인 셈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DDP를 보면서 전혀 다른 사물을 연상한다. 김현호 소장은 “정면에서 볼 때 코브라를 닮은 것 같더라. 어떤 지인은 하이힐이 떠오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기자가 DDP를 요모조모 둘러보니 어떤 살아 꿈틀대는 해양 생물체, 가령 조개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시는 DDP를 가리켜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정형(非定型)’은 사전적으로 일정한 형태나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 DDP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 셈이다.
그런데 ‘비정형’ 건축물을 짓는 것은 건설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아주 골치 아픈 일이다. 현대 건축물은 대부분 직선 형태로 지어져 왔기 때문이다. 간혹 비정형의 곡선 형태를 띤 건축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해당 건축물의 극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축물인 DDP를 짓는 공사는 처음부터 커다란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DDP 시공업체인 삼성물산은 DDP 완공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비를 맞았다. 그때마다 온갖 지혜를 짜내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세계 건축사에 길이 남을 도전은 각종 최첨단 공법 덕분에 결국 성공적으로 끝맺을 수 있었다.

삼성물산은 설계 단계부터 첨단기법을 도입했다. 3차원 입체설계 방식인 이른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그것이다. BIM은 2차원의 평면적 설계도면 정보를 3차원의 입체 설계도면으로 전환하는 한편 모든 건축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설계, 시공 등에 활용하는 차세대 설계 기법이다.
사실 자하 하디드는 DDP의 ‘기본설계’만 했다. 기본설계는 쉽게 말해 건축물의 콘셉트를 잡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받은 자하 하디드는 비정형 건축설계로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설계를 실제 건축물로 구현하려면 기존의 2차원 설계도면 방식으로는 사전 검토 및 시공이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삼성물산은 BIM을 도입한 것이다.
최근 들어 BIM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건축물 일부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DDP 공사의 전체 공정에 BIM을 적용했다. BIM의 전체 공정 적용은 DDP가 사실상 최초 사례라는 설명이다.
DDP는 은빛으로 빛나는 외장이 단번에 눈길을 끈다. 거의 대부분의 외벽을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 처리한 것은 DDP의 디자인적 지향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시공 과정에서는 알루미늄 패널 외장 공사가 엄청난 난제 중의 난제였다.
DDP 외장 공사에는 총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이 사용됐다. 더욱이 단 한 장의 패널도 같은 것이 없었다. 규격, 곡률(曲率: 곡선 또는 곡면의 휨 정도),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전체 패널을 만들기 위해서는 4만5133장의 형틀을 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정해진 공기(工期)를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큰 고민에 빠진 삼성물산에게 자하 하디드는 영국과 독일의 선진 금속성형업체 두 곳을 소개해줬다. DDP 시공팀 관계자들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두 업체를 방문했지만 아무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두 업체 모두 구식 성형장비와 수작업을 통해 곡면(曲面) 패널을 성형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업체 관계자들은 DDP 외장 패널 제작에는 무려 20년이 걸린다는 답변만 내놓을 뿐이었다.

2. DDP 내부의 유선형 계단도 비정형 건축이다.
알루미늄 외장공사 위해 세계 최초 장비 개발
삼성물산은 결국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기로 했다. 전인미답의 공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선 금속 곡면 패널이 사용되는 다른 산업의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선박, 항공기 산업 등이 연구 대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1년6개월이 걸려 알루미늄 외장 패널 제작방법과 장비를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DDP 외장 공사를 위해 개발된 신기술과 최첨단 금속성형·절단장비는 삼성물산의 기술력과 명성을 한층 더 높여줄 전망이다.
DDP 내부를 둘러보면 사방이 널따랗고 천장도 아주 높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건축물 내부에 대형공간을 확보하려면 기둥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DDP 내부에는 기둥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비밀은 메가 트러스(Mega Truss)와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 공법을 채택한 데 있다. 트러스는 교량 등 대규모 건축물에 들어가는 골조 구조물을 말한다. 또 스페이스 프레임은 트러스를 종횡으로 연결해 입체적으로 구성한 구조물을 가리킨다. 삼성물산은 일반 건축물에는 잘 쓰이지 않는 메가 트러스와 스페이스 프레임 공법을 적용해 DDP 내부에 기둥이 없는 대형공간들을 만들 수 있었다.
DDP는 외부의 연결 다리, 계단, 입구, 광장, 기둥 등에 내·외장 표면을 콘크리트만으로 마감하는 이른바 ‘노출 콘크리트’ 방식을 채택했다. 그 때문에 거대한 알루미늄 외벽과 함께 DDP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는 거푸집을 떼어낸 콘크리트 표면에 별도의 마감을 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체를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다. 자연적 질감을 중시하는 일부 건축가들이 종종 채택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매끄러운 표면을 위해서는 거푸집 제작 및 콘크리트 타설을 할 때 매우 정밀한 작업과 고도의 품질관리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삼성물산은 노출 콘크리트 구현을 위해 ‘리브(Rib) 거푸집’이라는 특수 거푸집 공법을 적용했다. 목재와 합판, 철근으로 만든 둥그런 모양의 거푸집이 갈비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DDP 내부 마감 공사도 결코 쉽지 않았다. 외장 패널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이 각기 다른 곡률과 형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BIM 기법을 활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내부 마감 소재로는 곡면 구현이 가능하고 내화(耐火) 성능이 우수한 친환경 마감자재인 천연석고보드를 주로 사용했다. 또 일부에는 GRG보드(Glassfiber Reinforced Gypsum Board: 천연석고에 유리섬유를 보강한 자재)도 사용됐다. 이밖에 코튼흡음재(吸音材: 소리를 흡수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축재료)나 인조대리석 등도 활용됐다.
DDP는 기존 건축의 문법을 벗어난 혁신적인 건축물로 크게 명성을 떨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DDP는 한국 건설업계가 고유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도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평가다. 김현호 삼성물산 DDP 현장소장의 말이다.
“DDP 공사의 첫삽을 뜬 이후 지금까지 현장에 다녀간 국내외 건축 전문가가 족히 1만5000여명은 됩니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겠죠. 요즘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축물의 발주처들로부터 기술검토 의뢰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삼성물산은 DDP라는 역작을 통해 비정형 건축물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됐죠. 처음 DDP 현장사무소를 차려놓고 직원들과 회식을 가졌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제가 건배구호로 ‘된다(D), 된다(D), 풀린다(P)’를 제안했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들으니 직원들끼리 회식할 때는 ‘돈다, 돈다, 핑 돈다’라는 구호를 외친다는 겁니다. 그만큼 엄청나게 힘든 공사라는 거죠. 하지만 DDP를 완공한 후 마지막 회식을 가졌을 때는 모두가 둘러앉아 이렇게 외쳤죠. ‘됐다, 됐다, 풀렸다!’라고요.”
Tip | DDP 사업 개요
● 위치 : 중구 을지로 7가 2-1번지 일대(옛 동대문운동장 부지)
● 규모 : 대지 면적 6만9907㎡, 지하 3층 및 지상 4층(최고 높이 29m),
총 면적 8만6479㎡.
● 시설 내용 : 컨벤션시설, 전시시설, 교육정보시설
● 사업 기간 : 2007년 1월~2013년 11월
(공사 기간: 2009년 3월~2013년 11월)
● 총 사업비 : 4212억원(공사비 4057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