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서울 신사동 LG패션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4월1일자로 사명을 ‘LF(엘에프)’로 변경하는 안이 확정됐다. LF는 ‘Life in Future’의 약자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미래 생활문화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이다. 재계 일부에서는 LG패션에서 ‘LG’를 떼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핵심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바로 ‘패션’을 떼어내는 것이다.
LF는 2007년부터 내부적으로 ‘LG패션은 패션 회사가 아니다’라고 정의했다. 패션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 아이템 전반을 취급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중장기적 목표를 세운 것이다. 심창현 CI(Corporate Identity)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사명에서 ‘LG’를 뺀 것보다는 ‘패션’을 뺀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며 “그동안 사명에 ‘패션’을 계속해서 사용해왔지만, LG패션을 생활문화기업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고 설명했다.
사명 변경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계열 분리 시점인 2007년부터 사명 변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본격적으로 변경 작업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사내에 CI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사명 변경 작업을 진행했다. 최종 후보군에 오른 것은 ‘LF패션’과 ‘LF’. ‘패션’이라는 사명에 담긴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기에 ‘LF’로 의견이 좁혀졌다. 이후 명함 디자인과 CI 후보군을 만들어놓고 사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LF’라는 사명과 디자인 등을 최종 확정했다.
‘미래를 만드는 손’이라 명명한 새로운 심벌마크는 LF의 L과 F를 사람의 손 형태로 형상화했고 안정적인 균형과 완벽함을 의미하는 정육면체로 디자인했다. 미래를 만드는 손이 상·하·좌·우 균형을 맞춰 정육면체로 표현된 것처럼 이 손으로 고객들의 균형 잡힌 미래의 삶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 L과 F가 서로 마주보고 있되 막혀 있지 않고 틔어 있는 것은 고객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오픈 마인드를 의미한다.

2007년 계열 분리 이후 2배 이상 성장
LF의 모태는 반도상사(현 LG상사)의 패션 조직인 ‘반도패션’이다. 1974년 문을 연 뒤, 2006년 LG상사에서 법인 분리되면서 패션 전문기업으로 독자적인 발을 내딛게 됐다.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2007년부터 LG패션은 LG그룹과 무관한 회사가 됐지만 브랜드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기존 고객에게 혼란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LG에 라이선스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LG패션’이라는 상호를 써왔다. 사용료는 한해 매출액의 0.14%로 지난해에는 19억원대의 금액을 지불했다. 지난해 말 상호 사용 계약이 종료된 것도 사명 변경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사명 변경은 구본걸 LF 회장이 적극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2007년 계열 분리 이후 계속해서 사명 변경을 두고 고심해왔다. 이 결심을 실천하게 된 것은 올해가 LF에게 특별한 해이기 때문. 올해는 LG패션의 전신인 반도패션이 창립된 지 40년째이면서 구 회장이 취임한 지 10년째를 맞는 해다. 기업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적기라는 분석이다.
구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로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의 장남이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2004년 LG상사 패션사업부문 부사장직을 맡으면서 패션사업에 뛰어들었고 2006년부터 LG패션을 이끌었다.
구본걸 호가 이끄는 LF는 독자 법인이 된 이후로도 꾸준히 성장해왔다. 2007년 당시 약 7000억원에 머물렀던 매출은 지난해 약 1조4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지난 7년 동안 두 배로 몸집이 커진 것이다. 남성복 위주에서 여성복, 캐주얼, 아웃도어, 액세서리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닥스, 마에스트로, 헤지스, 라푸마 등의 파워 브랜드를 육성한 결과다. 패션 업계는 사명을 변경한 LF의 행보가 이런 꾸준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덕분에 가능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LF가 지난 2005년 프랑스에서 들여온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는 무채색 위주의 제품이 대부분이었던 타 브랜드와 차별적으로 화사한 색상의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여성 고객층을 공략해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밝은 색상과 날씬해 보이는 디자인을 강조하면서 점차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라푸마의 성공은 이후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패션 브랜드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통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는 어려운 패션 시장 환경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LF의 대표 브랜드다. 헤지스는 2000년 초반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높은 수준의 생산 공장을 갖추는 등 경쟁력을 키워왔다. 숙녀복·액세서리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적극적인 해외 진출 등을 통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국내 캐주얼 브랜드 시장을 빈폴, 폴로의 2강 체제에서 3강 체제로 바꿔놓았다.
닥스, 타운젠트, TNGT 등 남성복 중심이던 LF가 지난 2006년부터 여성복 사업을 시작한 것도 주요 전략으로 작용했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자체 브랜드와 해외 여성복 브랜드들을 꾸준히 출시하면서 여성복 분야를 키워 온 것이 좋은 실적의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LF는 2006년 독립법인 출범 당시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여성복 매출 비중을 지난해에는 25%대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LF에는 단순히 옷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아닌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뜻이 담긴 만큼 LF는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을 앞두고 있다. 특히 구 회장은 주력 분야인 패션 외에 식품·유통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F는 이미 계열사를 통해 외식사업(LF푸드)과 유통사업(인터스포츠)을 펼치고 있다. 주력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올해 매출액 3조원대를 달성할 계획이다.
LF는 지난 2007년 LF푸드를 설립하고 식품유통업에 진출했다. LF푸드를 통해 씨푸드 레스토랑 2개점(마키노차야, 하꼬야씨푸드)과 생라멘 프랜차이즈 전문점 ‘하꼬야’, 씨푸드 샐러드 뷔페 ‘엘블루’ 등 총 4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도 외식업 분야에 주력해 종합 외식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게 목표다.
또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소비자의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인 라움, 라움에디션, 어라운드더코너를 통해 패션유통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패션의류 및 액세서리는 물론 음악과 미술, 디자인, 인테리어를 아우르고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의류를 제조해 판매하는 것만이 아닌 쇼핑 문화와 감성을 함께 판매하겠다는 전략이다.
올 하반기에는 리테일 브랜드인 ‘엣코너(A.T. corner)’와 함께 삼성에버랜드가 운영하던 프랑스 여성복 브랜드 ‘까르벵(Carven)’을 론칭할 예정이다. 엣코너는 자체 생산 제품과 외부 브랜드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꾸준한 여성복 브랜드 론칭을 통해 남성복·아웃도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하우가 부족했던 여성복 분야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패션 사업 중 부진한 브랜드에 대한 정리 절차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TNGT의 여성복 버전인 TNGTW를 올 봄·여름 시즌까지만 운영하고 매장을 철수하기로 한 것. TNGTW는 지난 2009년 TNGT가 리뉴얼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SPA형 브랜드다. 직장인 여성을 겨냥해 만들어졌으나 자라(ZARA), 에이치앤엠(H&M) 등 기존 SPA 브랜드에 밀려 실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LF가 실적이 부진한 브랜드를 정리하는 등 기업 내실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올해 성장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활발
한편 LF는 중국을 중심으로 대만, 태국까지 진출하며 활발한 해외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7년 중국 3대 패션기업인 빠오시냐오 그룹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헤지스를 중국 시장에 진출시킨 이래 지속적으로 중국 시장을 주시해왔다.
기존에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국내 브랜드들이 중저가 전략을 택한 것과는 달리 헤지스는 출시 때부터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우며 대형쇼핑몰이나 백화점을 중심으로 입점하는 등 철저한 프리미엄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고소득 전문직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지속적인 성장세(매년 100% 이상의 매출 신장률)를 유지하고 있다. 헤지스는 현재 상하이 강훠이 광장(上海 港匯 廣場), 베이징 당다이(北京 當代) 백화점, 난징(南京) 등 150여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LF는 지난 2012년에는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대만시장 진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타이베이에 위치한 대만 최대 규모의 백화점인 퍼시픽 소고 충효점에 헤지스 단독매장을 오픈했다. 헤지스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만시장에서도 철저히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모든 제품을 한국에서 들여와 디자인과 소재의 질을 유지하고, 가격 또한 한국 내 소비자가와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했다. 헤지스는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만의 주요 도시 내 고급백화점,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2015년엔 15개까지 매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대만 시장을 교두보로 삼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 동남아 전역으로 시장을 넓혀간다는 전략이다.
LF의 인기 브랜드인 라푸마 역시 지난 2010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라푸마차이나를 2011년 봄·여름 시즌 정식 론칭해 연간 35%씩 급성장하는 중국의 아웃도어 시장에서 중국 내 고소득층 소비문화를 공략하고 있다. LF는 헤지스와 라푸마의 해외 진출을 계기로 이외 브랜드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도 가속화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