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 덩치가 상당하다. 사람으로 치면 어릴 적 동네에서 마주쳤을 때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을 법한 인상이다. 럭셔리 크로스오버 차량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럭셔리(Luxury)라는 단어 속에 담긴 부드러움보다는 남성미가 넘치는 마초(Macho)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전면부 그릴이 스핀들(공작 기계에서, 공작물 또는 연장을 회전시키기 위한 축) 형태로 디자인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위·아래가 대칭인 스핀들 그릴은 렉서스가 추구하는 강력한 엔진 퍼포먼스를 말해준다. 이 차 역시 소비자에게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 렉서스의 패밀리룩인 스핀들 그릴이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 렉서스의 패밀리룩인 스핀들 그릴이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세계 최초 SUV 하이브리드 선보여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렉서스의 RX 하이브리드 엔진은 상징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렉서스의 RX400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이브리드 엔진은 주로 세단으로만 선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이브리드는 배터리의 힘과 내연기관을 도로상황, 속도에 따라 번갈아 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고 연비는 좋지만 문제는 힘이 약하다. 폭발적인 가속력이 필요한 쿠페나 스포츠유틸리티(SUV) 주행 시에는 별 감동을 주지 못했다. 렉서스 RX시리즈 전까지 세계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하이브리드 엔진을 SUV에 장착하지 않은 것도 특유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없어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을 렉서스 RX는 완벽하게 깼다.

렉서스는 지난 2005년 세계 최초로 RX400h를 출시하면서 SUV 하이브리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이후 배기량이 3000㏄에 달하는 RX450을 지난 2009년 개발하면서 세계 자동차 역사를 다시 새롭게 써가고 있다. 이번에 시승한 RX450h는 전 영역을 새롭게 선보인 올뉴(All-New) 버전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대표되는 친환경 엔진은 차량에 탑승하면 시동을 걸었는지 걸지 않았는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일반 자동차처럼 엔진을 구동할 필요가 없어서다. RX450h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디오 관련 장치들이 모여 있는 센터페시아 바로 아래 위치한 기어박스에서 기어를 주행(D)모드로 바꾸고 가속페달을 밟으니 비로소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티어링 휠 왼편에 위치한 위·아래 화살표 버튼을 누르니 에너지모니터, 연비, 주행가능거리, 평균차량속도 등을 설명하는 표시가 나왔다.

하이브리드 기술에 있어서 렉서스는 가장 앞서 나가 있다. 플래그십 모델인 LS600hL가 상시 4륜구동, GS450h 후륜구동을 채택했다면 CT200h는 전륜구동이다. 그리고 이번에 시승한 RX450h는 가변식 4륜구동이다. 2륜구동과 4륜구동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토요타자동차가 제공한 자료를 보니 이 기술은 ‘E-포(four)’시스템 이라고 불리고 있다. 일상적인 도심 주행에서는 앞바퀴만을 사용하지만 눈길과 빗길처럼 노면이 미끄러울 때는 차량이 자동으로 앞·뒷바퀴에 토크를 조절해 안전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시승 중 눈과 비를 만나지 못해 하이브리드 가변식 4륜구동의 매력을 경험하지 못했다. 

시동을 켠 뒤 느낌은 조용한 새색시 같다. 엔진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차가 부드럽게 굴러간다. 그렇지만 가속페달을 조금만 밟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폭발적인 가속을 낸다. 새색시를 바라보는 새신랑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RX450h는 에코(Eco), 스포츠(Sport), 스노(Snow) 등 3가지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시동을 켜면 자동으로 설정된 것은 에코모드다. 렉서스 최초로 적용된 EGR(Exhaust Gas Recirculation)시스템은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냉각, 흡기계통에 재사용함으로써 고온 연소 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NOx)을 줄이고, 불필요한 가솔린 엔진의 구동을 줄여 연비를 향상시킨다. 에코모드에서 최상의 연비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차는 곧장 스포츠카로 돌변한다. 페달을 밟을 때 가속력 자체가 다르다. 독일 최고급 SUV 카이엔과 비교해도 순간 가속력만큼은 손색이 없다. 다만 저속 주행에서 언덕길을 오를 때는 다소 힘들어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차량이 언덕길에서 정지 후 다시 가속을 시작할 때 차량이 약간 뒤로 밀린다는 느낌을 주는데 RX450h는 정도의 차이겠지만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진 못했다. 하지만 다른 하이브리드 차량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개선된 모습이다. 재밌는 것은 운전석 왼편에 위치한 핸드브레이크 바로 뒤편에 자리 잡은 EV 모드 버튼이다. 버튼을 누르면 차는 전기 힘만으로 움직인다. 엔진소음과 진동, 배기가스 발생이 전혀 없다. 밤늦게 아파트에 주차할 때나 아침 일찍 차에 시동을 걸때 참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연비는 도심 주행의 경우 리터당 11.9㎞, 고속주행은 12.4㎞다. 기자가 시승한 날은 교외 곳곳이 상춘객들로 붐벼서 그런지 공식연비만큼 나오지는 않았다. 평균 리터당 11㎞ 초반대였다. 그러나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이 정도 덩치의 차량이 만든 연비치고는 수준급이다.

RX450h에는 운전자를 위한 편의장치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내비게이션, 오디오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기어박스 바로 아래 있는 간단한 마우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 일반 차량에 장착된 터치스크린 방식이 겉으로 보기에는 편리해 보이나 반응이 늦어 별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렉서스는 이런 문제를 마우스로 처리해 정확도를 높였다. 일정 속도를 유지해주는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도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 장착된 내부 에어백 수만 10개라고 하니 안전도도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1. 렉서스 RX450h 뒷면부 2. 렉서스RX450h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2륜, 4륜 구동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3. 렉서스 RX450h에는 사고 시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10개의 에어백이 장착돼 있다. 4. 렉서스 RX450h 차량 내부 모습.
1. 렉서스 RX450h 뒷면부
2. 렉서스RX450h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2륜, 4륜 구동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3. 렉서스 RX450h에는 사고 시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10개의 에어백이 장착돼 있다.
4. 렉서스 RX450h 차량 내부 모습.

에코·스포츠 등 4가지 주행 모드 선택
시승 장소로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일대와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을 다녀왔다. 일반 주행속도는 웬만한 세단 못지않게 부드럽다. 4륜구동으로 주행모드를 바꿨는데도 SUV 특유의 투박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다만 행주산성 일대 곡선 주로에서의 핸들링은 약간 쏠림이 크다는 느낌이다. 더군다나 에어컨을 2단으로 켜고 약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때는 엔진 소음이 갑자기 커졌다. 동시에 가속페달로 전달되는 변속반응 속도가 평지에서만큼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차량 가격은 7910만~8840만원이다. 아무리 하이브리드라고 하지만 값은 동급 차량에 비해 여전히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