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통가에 ‘큐레이션 커머스’ 바람이 불고 있다. 소셜 커머스가 신 유통 트렌드로 떠오른 지 4년 만이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실용성과 경제성을 지닌 제품을 전문가가 골라서 소비자에게 추천해주는 전자상거래를 의미한다. 전문성이 보장된 제품을 별다른 노력 없이 이용할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회원 수를 늘려가고 있는 미미박스는 대표적인 큐레이션 커머스(Curation Commerce)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예술작품을 수집·엄선해 대중들에게 소개하듯, 경제성과 실용성이 높은 제품을 전문가가 엄선해 소비자에게 내놓는 유통 방식을 의미한다. 오픈마켓처럼 소비자가 수만 가지의 제품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닌 판매자가 소비자의 니즈를 미리 파악해 소비자에게 맞는 상품을 선별해서 보여준다. 이를 반영해 오픈마켓의 경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검색창에 제품을 검색하도록 구성돼 있는 반면, 큐레이션 커머스 쇼핑몰 홈페이지는 추천 제품의 이미지와 이름, 가격이 주를 이뤄 구성돼 있다. 수만 가지의 제품들 중 선별한 제품만을 잘 포장해 전시해놓은 듯한 모습이다.

미미박스와 같이 매월 정기적으로 상품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섭스크립션 커머스’(제품 정기구독 서비스)라고 한다. 잡지를 정기구독하듯 특정 분야의 상품을 정기구독 형식으로 매달 받아본다는 의미다. 구독자로부터 일정 구독료를 받고 상품 박스를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상품 박스는 구독자가 가입 시 작성한 프로필을 기반으로 선별된 제품이거나 매월 바뀌는 테마에 따라 구성된다. 강현지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섭스크립션 커머스의 주 고객층은 ‘특별한 노력이나 시간 투자 없이 누군가 나를 위해 꽤 괜찮은 제품을 골라 내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12년부터 국내에 등장한 큐레이션 커머스는 점점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며 오픈마켓, 소셜 커머스에 이은 유통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형민 비전컴퍼니 대표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역사는 ‘커머스 1.0’을 시작으로 현재 ‘커머스 3.0’ 시대에 이르렀다”며 “커머스 1.0은 오픈마켓인 G마켓, 인터파크, 11번가, 옥션 등이며, 커머스 2.0은 최저가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소셜 커머스’를 일컫는다. 섭스크립션 커머스를 포함한 큐레이션 커머스가 커머스 3.0 시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1. 동네 빵집의 빵들을 엄선해 제공하는 헤이브레드를 이용하면 아침 6시에 갓 구워진 빵을 먹을 수 있다.2. 현재 미미박스는 국내 주요 뷰티 유통 채널인 CJ올리브영, 신세계 분스 등의 온라인 트래픽을 앞서고 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1. 동네 빵집의 빵들을 엄선해 제공하는 헤이브레드를 이용하면 아침 6시에 갓 구워진 빵을 먹을 수 있다.
2. 현재 미미박스는 국내 주요 뷰티 유통 채널인 CJ올리브영, 신세계 분스 등의 온라인 트래픽을 앞서고 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미국·유럽, 이미 큐레이션 커머스 시대 도래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소셜 커머스 바람을 불러일으킨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미 소셜 커머스 시대를 지나 큐레이션 커머스 시대를 맞고 있다. 소셜 커머스의 대표 주자인 미국 ‘그루폰’과 ‘리빙소셜’의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팬시(FANCY)나 와니로(WANELO), 위시(WISH), 팹(FAB), 습프리(SVPPLY) 등과 같은 ‘큐레이션 커머스’ 쇼핑몰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강 연구원은 “물품 구입에 있어서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이나 추천을 바탕으로 내 상황과 취향에 딱 맞는 맞춤화 소비를 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해외의 시장 흐름을 이어받아 국내 다양한 큐레이션 커머스 업체들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뷰티 분야의 섭스크립션 커머스를 제공하고 있는 ‘미미박스’는 지난 2012년 론칭해 현재 회원수 32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섭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자수는 16만명 정도. 국내 504개의 뷰티 브랜드와 제휴를 맺고 있다. 2012년 10억원 수준의 거래액은 지난해 50억원으로 증가해 400% 성장을 이뤘다. 큐레이션 커머스 중 단기간 내 거래액이 400% 증가한 업체는 미미박스가 유일하다. 지난 1월 미국 지사를 설립하면서 해외 시장에 진출했으며, 올해 매출 목표를 400억원으로 잡고 있다.

헤이브레드는 몸에 좋은 재료를 쓰는 동네 인기 빵집의 빵들을 소비자에게 배달해주는 큐레이션 커머스다. 헤이브레드가 계약을 맺는 업체는 대부분 중소 빵집. 빵집을 선정하는 기준은 확고하다. 인공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은 재료로 빵을 만드는 곳, 셰프의 경력이 뒷받침되는 곳, 빵의 개성이 뛰어난 곳 등이다. 소비자는 여러 빵집의 빵 중 맘에 드는 것을 골라 담아 주문할 수 있다. 수도권 지역에만 빵을 배달하고 있음에도 지난해 월평균 20%씩 매출이 증가했다. 유민주 헤이브레드 대표는 “지방에서도 빵을 배달해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어 점차적으로 배달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리치몬드, 라몽떼, 베이커스필드 등 동네 유명 빵집 9곳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제공하는 빵의 종류는 100여개다. 헤이브레드는 한 가지 종류의 빵을 여러 개의 브랜드 제품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맛과 전문성이 검증된 빵집과 1:1 계약을 맺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 유 대표는 “A브랜드의 소보루빵과 B브랜드의 소보루빵이 모두 판매되는 곳이라면 오픈마켓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큐레이션 커머스의 기본 정신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이다.

킥스토어는 전문성과 기능이 검증된 디자인 제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고 있다. 어른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키덜트(kidult) 제품뿐만 아니라 주부들을 위한 생활용품, 주방용품, 아웃도어 및 캠핑용품들까지 기발한 아이디어 제품들을 엄선해 판매하고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케이스, 보조배터리, 파우치, 충전독과 같은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품군도 강화했다.

‘미스터쿤’ 역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 제품들을 주로 판매하는 큐레이션 커머스다. 세계 각지에서 제작된 제품들로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선보이는 것이 특징. 해외 각 사이트를 찾아 발품을 팔지 않아도 돼 해외직구(직접구매) 쇼핑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국내 쇼핑몰처럼 편리하게 주문·교환·반품을 할 수 있고 해외 직접구매 시 드는 비용보다 저렴하다. 미스터쿤은 론칭 1년3개월 만에 거래액 6억원을 돌파했으며, 최근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은 바 있다. 케이큐브벤처스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이 설립한 투자사다.

매월 테마별로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물품을 큐레이션 해주는 큐레이션 커머스인 ‘펫츠비’도 인기다. 펫츠비는 수의사를 통해 제품을 검증하고 추천을 받아 상품 박스를 구성한다. 대리점이나 직영점를 거치지 않고 판매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이 들지 않으며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관련 제품들이 기존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된다. 지난해 5월 론칭한 펫츠비는 현재 월매출 1억3000만원을 올리고 있으며, 월평균 30%씩 성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품질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헬로네이처’, 인테리어·패션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디블로’, ‘타이니빅’, 속옷·간편식품을 판매하는 ‘덤앤더머스’, 임산부를 위한 ‘텐박스’ 등 다양한 업체들이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며 큐레이션 커머스 시장을 이끌고 있다.

1. 오픈마켓의 홈페이지는 검색창에 제품을 검색하도록 구성돼 있는 반면, 큐레이션 커머스 쇼핑몰은 추천 제품의 이미지와 이름, 가격이 주를 이뤄 구성돼 있다.2. 지난해 5월 론칭한 반려동물 용품 전문 큐레이션 커머스 ‘펫츠비’는 현재 월매출 1억30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1. 오픈마켓의 홈페이지는 검색창에 제품을 검색하도록 구성돼 있는 반면, 큐레이션 커머스 쇼핑몰은 추천 제품의 이미지와 이름, 가격이 주를 이뤄 구성돼 있다.
2. 지난해 5월 론칭한 반려동물 용품 전문 큐레이션 커머스 ‘펫츠비’는 현재 월매출 1억30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소셜 커머스 위기 속 큐레이션 커머스는 성장세
국내 개별 업체들이 각 전문 분야에서 큐레이션 커머스를 제공하며 성장하고 있는 사이 기존 오픈마켓들도 ‘큐레이션 커머스’ 서비스를 주목하고 있다. G마켓은 지난해부터 큐레이션 쇼핑몰인 ‘G9’를 선보이고 있다. 패션·뷰티, 푸드·리빙, 유아동, 가전·디지털 등 7개 품목을 카테고리 메뉴로 구성하고 하루 150여개의 상품을 판매한다. 11번가 역시 큐레이션 쇼핑몰인 ‘쇼킹딜’을 별도로 운영 중이다. 모바일 쇼핑객들을 잡기 위해 쇼킹딜 앱도 론칭했다. 옥션 역시 큐레이션 커머스인 ‘올킬’을 운영한다. 이처럼 커머스 1.0 시대를 이끈 오픈마켓 역시 ‘큐레이션 커머스’가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오픈마켓의 큐레이션 서비스의 경우 소셜 커머스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가 엄선한 제품이라기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둔 구성이 많기 때문이다.

큐레이션 커머스 업체들은 선전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국내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최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셜 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의 지난해 매출은 1148억원으로 전년보다 40% 증가했지만 영업 손실 규모가 707억원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위메프 역시 지난해 매출이 785억원으로 성장했지만 360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소셜 커머스 시대는 왜 이렇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티몬과 위메프, 쿠팡 등 대표적인 소셜 커머스 업체들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광고 등 마케팅에 수백억원대의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가격’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도 원인으로 꼽혔다. 이형민 비전컴퍼니 대표는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가격만을 무기로 소비자들을 끌어 모았다”며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은 물론이고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원한다. 소셜 커머스에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너무 낮은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질이 낮은 제품을 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큐레이션 커머스’는 ‘최저가 패러다임’을 추구하지 않는다. 경쟁력 있는 고품질의 제품을 발굴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유민주 헤이브레드 대표는 창업 초기 “저렴한 가격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또 다른 소비층이 분명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품질을 믿을 수 있는 제품’, ‘차원이 다른 제품’을 원하는 많은 소비자들이 큐레이션 커머스 쇼핑몰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큐레이션 커머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또 있다. 섭스크립션 커머스의 경우 타깃 소비자가 명확하게 그룹화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 범위가 축소된다. 제품이 섭스크립션 커머스의 상품 상자에 포함되면 별도의 비용 없이 타깃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홍보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인 구독은 기업의 안정적인 매출로 이어진다. 구독을 통해 발생하는 지속적인 매출로 향후 수요가 예측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섭스크립션 커머스 업체는 구독이 끊이지 않도록 계속해서 고객 만족도를 조사하며 피드백을 받아 해당 문제점을 신속하게 해결한다. 미미박스의 경우 제휴 브랜드의 화장품을 무료로 받아오는 대신 구독자의 피드백과 연령, 지역, 피부타입 등의 데이터가 담긴 보고서를 제휴사에 보내준다. 이를 통해 기업이 장기적인 전략을 짜도록 하는 등 윈윈(win-win) 구조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렇게 기업에게 유리한 점이 많다 보니 큐레이션 커머스에 진출하려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국내 유명 아웃도어 업체인 A사는 올해 큐레이션 커머스 쇼핑몰 오픈을 앞두고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가 소셜 커머스를 위협하는 새로운 유통 트렌드가 될지, 서로 상생하며 더 강력한 온라인 유통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