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설팅회사 딜로이트 컨설팅 한국법인의 직원들은 추석을 닷새 앞둔 지난 2012년 9월25일 뜻밖의 이메일을 받았다.

김경준 대표이사가 보낸 메일이었다. ‘MP의 편지 # 1__추석을 맞으며’라는 제목의 이 편지는 단번에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MP는 ‘Managing Partner’의 약자다.

대표이사가 전 직원에게 업무용 메일을 보냈다고 해도 드문 일이다. 김경준 대표의 메일(이하 ‘편지’)은 달랐다. 추석을 앞둔 시점에 직원들이 느끼는 귀소(歸巢)본능을 서정적으로 터치하는 글이 실렸던 것이다. 서정춘 시인의 <30년전 1959년 겨울>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도 곁들여졌다. 직원들은 대표이사로부터 멋진 추석에세이를 선물받은 셈이다.

김경준 대표의 편지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MP의 편지’라는 타이틀이 붙은 에세이가 한 달에 두어 번 직원들에게 발송됐다. 점차 애독자가 늘어났다. 젊은 직원들이 애독자를 자처하면서 답장을 보내오고, 퇴사하는 직원들이 김 대표에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MP의 편지’를 더 이상 읽지 못해 아쉽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대표이사가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낼 수도 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히트작이 되기는 쉽지가 않다. 자칫하면 훈계조가 되기 쉽고, ‘공장이야기’가 많으면 편지 읽기가 업무의 연속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MP의 편지’를 묶어 5월 초에 <통찰로 경영하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두 번째 편지부터 지난 4월9일 직원들에게 26번째로 보낸 편지까지와, 책에 수록하기 위해 미리 써놓은 편지 4개를 합친 것이다.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경제경영부문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에 올랐다. 김 대표와 인터뷰한 5월19일 현재 교보문고에서는 경제경영부문 8위에 올랐다.

‘MP의 편지’가 성공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MP의 편지’는 프랑스 식당, 순대국밥, 로마의 역사, 추석, 크리스마스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소재가 다양하면 독자들 사이에 ‘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하는 기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필자가 사회경험을 사촌동생이나 조카들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하게 전달한 것도 흥행 성공요소였다. ‘MP의 편지’에 경험에서 오는 통찰이 담긴 것도 호평 받았다.

마지막 성공비결은 김 대표의 필력이다.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버무릴 실력이 없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베스트셀러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등 10여 권의 책을 쓴 베테랑 저술가다.

집필동기가 재미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가 소통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이 문제를 전자편지(이메일)로 해결했다. 2011년 6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후 처음 1년간은 일하느라 정신없이 보냈지만 나름대로 적응이 되자 직원들과 소통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효과만점이었다. “저를 어려워하던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나 화장실, 식당 같은 데서 마주치면 스스럼 없이 인사를 건네고 해줬습니다.” 김 대표가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가식 없이 밝히고 곳곳에서 통찰력을 발휘하면서도 재미있게 쓴 덕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기본, 본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세월호 사고가 나기 전에 직원들에게 ‘업의 본질에 대한 자신만의 확실한 관점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다. 이 중 ‘가정주부·기자·술집의 업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의 글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가정주부는 업(業)의 개념이 ‘해피니스 메이커(Happiness Maker)’이고, 신문기자는 ‘조기경보자’, 술집은 ‘샐러리맨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이다.

그는 관리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엔씨소프트와 개그콘서트, 엄홍길 대장의 히말라야 원정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운영관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린 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의 말을 빌려 “벤처기업들이 흔히 ‘창의적 아이디어와 패기로 무장하면 성공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는 겉모습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기초적 운영능력이 성패의 핵심”이라고 갈파한다.

이번 책에서 언급된 인물과 소재의 방대함은 근래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압권이다. 김 대표가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장인환 포스코 대표이사는 추천사에서 “명료하면서 깊이 있는 내용으로 사회 초년생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 CEO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경준 대표는…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쌍용투자증권(현 신한금융투자), 쌍용경제연구소, 쌍용정보통신에서 근무했다. 여러 신문과 방송, 잡지에서 필자와 패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등 10여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