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남자의 로망 중 하나다. 그렇다면 남자아이들의 로망은 뭘까. 아마 로봇이 첫손가락에 꼽히지 않을까.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로봇에서 자동차로 변신하는 완구제품 ‘또봇’이 한국 완구시장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또봇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한찬희 영실업 대표를 만나 또봇 대박의 비결을 들어봤다.

2007~2008년 무렵이었다. 중견 완구업체 영실업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뒤흔들 야심작을 기획하고 있었다. 변신로봇 완구 ‘또봇(Tobot)’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실업은 과거 여아용 완구가 주력사업이었다. 몇 차례 남아용 로봇 완구를 출시한 바 있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랬던 영실업이 또봇을 앞세워 남아용 완구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야심찬 도전에 나섰던 것이다.

영실업은 3~5세 남아용 완구시장을 타깃으로 정했다. 국내 완구시장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그 연령대 시장이 사실상 비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말하자면 틈새시장을 찾아낸 셈이다.

또봇의 콘셉트는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사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한다는 설정은 만화나 판타지의 전통적인 소재 중 하나다.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트랜스포머’가 대표적 사례다.

트랜스포머는 일본 애니메이션 디자이너 가와모리 쇼지가 지난 1980년 완구업체 다카라에게 제공한 ‘미크로맨’과 ‘다이아크론’이라는 캐릭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캐릭터가 미국의 세계적인 완구업체 해즈브로의 품으로 넘어가 재탄생한 것이 바로 트랜스포머다. 해즈브로는 종합 콘텐츠업체 마블과 손잡고 트랜스포머를 만화로도 제작했다.

- 한찬희 영실업 대표는 또봇의 성공비결을 타깃시장 명확화, 제품 및 콘텐츠 차별화, 틈새시장 공략, 이종기업 간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요약했다.
- 한찬희 영실업 대표는 또봇의 성공비결을 타깃시장 명확화, 제품 및 콘텐츠 차별화, 틈새시장 공략, 이종기업 간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요약했다.
3~5세 남아용 틈새 완구시장 공략 성공
영실업은 또봇 기획 단계에서 차별화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특히 어떻게 하면 완구의 리얼리티를 잘 살릴 수 있을 것인지가 화두였다. 그러던 차에 국산 자동차를 모델로 삼자는 아이디어가 튀어 나왔다. 아이들이 자기가 갖고 노는 로봇완구를 실제 현실 속에서 볼 수 있으면 훨씬 반응이 뜨거울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아무 자동차나 함부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당 자동차를 판매하는 기업의 상표권, 디자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또봇의 고객이 될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동차 모델을 선택해야만 했다. 영실업이 최종적으로 낙점한 자동차 브랜드는 기아자동차였다.

한찬희 대표의 말이다. “영화 트랜스포머가 실제 자동차를 주인공의 캐릭터로 삼은 것을 벤치마킹했습니다. 우리는 국산 자동차 브랜드 중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가진 곳을 찾다가 기아자동차에 시선이 꽂혔어요. 당시 제가 경영기획실장으로 또봇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기아자동차는 쟁쟁한 대기업이잖아요. 게다가 그곳에는 아무 인맥도 없는 상태였죠.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제가 직접 제안을 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협력 의사를 밝혀주시더군요. 지금도 기아자동차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영실업과 기아자동차의 협력은 이렇게 이뤄졌다. 기아자동차는 자사 제품의 디자인과 로고 사용권을 영실업에 제공했다. 특히 자사 자동차 모델의 디자인을 완구제품에 맞게 일부 변경할 수 있는 자율권도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미미한 수준의 로열티만 받기로 했다.

대신 영실업은 또봇 제품을 기아자동차에 제공해 홍보나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아자동차 입장에서는 이른바 ‘키즈마케팅(Kids Marketing)’ 효과를 누리는 덤도 얻을 수 있었다. 또봇을 통해 미래 고객인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기아자동차를 친숙한 브랜드로 각인시킨 것이다. 어린이를 배려함으로써 덩달아 기업 이미지도 제고된 것은 물론이다.
- 한찬희 대표가 자동차 상태의 또봇을 로봇으로 변신시키는 장면.
- 한찬희 대표가 자동차 상태의 또봇을 로봇으로 변신시키는 장면.


누적 판매량 700만개…국내 완구시장 평정
양사의 협력은 대박을 터뜨렸다. 영실업은 2009년 처음 또봇 시리즈를 출시한 이래 지금까지 700만개가 넘는 누적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시리즈 수는 현재 총 19개다. 또봇의 탄생을 알린 최초 모델 ‘또봇X’와 두 번째 모델 ‘또봇Y’는 2013년 말 단종될 때까지 각각 40만개와 42만개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봇X와 또봇Y는 각각 기아자동차 쏘울과 포르테쿱 디자인을 기반으로 제작된 모델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출시된 ‘또봇 쿼트란’은 불과 6개월 만인 5월 현재 25만개나 팔려나가는 대히트를 쳤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대형할인점에서 부모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폭발했다.

지금까지 또봇의 누적 매출액(영실업 출고가 기준)은 1600억여원에 달한다. 대형할인점 등에서 판매되는 또봇의 소비자가는 출고가의 2배가 넘는다. 따라서 또봇 시리즈의 총 판매액은 3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그뿐 아니다. 또봇 캐릭터를 활용한 라이선스 제품의 누적 매출액도 약 3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의류, 신발, 위생용품, 식기류, 출판물 등 또봇 캐릭터를 활용한 어린이용 제품은 무려 500여개 품목에 이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또봇이라는 로봇완구가 새로 만들어낸 시장 규모가 최소 6000억원 이상 되는 셈이다. ‘6000억원의 또봇’이라고 할까.

또봇은 이종(異種)기업 간 협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완구와 자동차라는 서로 이질적인 분야의 두 기업이 손잡고 새로운 시장과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결실을 낳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바람직한 상생 모델로서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국내 완구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과 영세업체들로 이뤄져 있다. 레고, 마텔, 반다이 등 글로벌 완구업체들이 국내 완구시장을 장악하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터에 영실업은 여러 협력업체를 통해 완구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협업은 영실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조그만 완구업체가 레고, 마텔 등 세계적인 거대 완구업체와의 경쟁에서 버텨내려면 외부 파트너와의 협업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실업이 기획, 디자인, 설계, 개발, 생산관리, 마케팅 등 핵심 기능만 내부에 두고 완구 생산과 애니메이션 제작은 외부 협력업체들에게 맡기는 방식을 채택한 배경입니다.”

영실업은 또봇을 완구와 애니메이션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말하자면 병행 마케팅 전략이다. 어린이들이 TV 애니메이션를 통해 또봇 캐릭터와 친숙하게 한 다음 자연스레 완구제품 구입으로 이어지도록 선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일본의 대형 종합캐릭터업체 반다이가 ‘파워레인저’를 완구와 애니메이션으로 동시 출시하고 있는 방식과 같다. 비단 반다이뿐 아니라 마텔, 레고 등 세계적인 완구업체들은 완구와 애니메이션의 병행 마케팅 전략을 적극 활용한다. 또봇 애니메이션은 ‘변신자동차 또봇’이라는 제목으로 2010년 재능TV를 통해 처음 선보인 이래 지금은 국내의 모든 어린이용 방송채널에 편성되고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완구·애니메이션·라이선스 사업 병행
또봇은 영실업에게 효자 중의 효자 구실을 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또봇 시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웃돈다. 또봇의 판매 증가율은 매년 30~40%에 이를 정도다. 최근 수년간 영실업의 매출 증가율도 그와 비슷한 수준을 구가하고 있다. 게다가 여아용 완구 ‘시크릿 쥬쥬’와 ‘콩순이’도 높은 판매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영실업 매출액은 740여억원이었다. 올해는 1000억원대를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는 게 한찬희 대표의 예상이다.

또봇은 이제 ‘완구 한류’ 바람을 일으킬 태세다. 한국에서 글로벌 완구업체 제품들을 물리친 여세를 몰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게 영실업의 목표다. 1단계 타깃 시장인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는 올해 안에 수출이 개시된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완구제조는 전통산업이라는 통념이 있지만 사실 매우 미래지향적인 콘텐츠산업입니다. 영실업은 또봇을 파워레인저나 트랜스포머처럼 수십 년간 장수하는 캐릭터로 발전시켜나갈 생각입니다. 나아가 아이들의 성장단계별로 모든 연령대의 완구제품 라인업을 갖춘 종합완구업체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나아갈 겁니다.” 


▒ 한찬희 대표는…
1974년생. 2000 국민대 회계정보학과 졸업, 2002 국민대 회계정보학과 석사. 2001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위촉연구원, 2002 영실업 입사, 2004 영실업 관리부 팀장, 2007 영실업 최고재무책임자(CFO) 및 최고전략책임자(CSO), 2012 영실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