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발표된 카카오·다음커뮤니케이션 합병의 진정한 승자는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중국명 텅쉰)라는 지적이 있다. 예상처럼 다음과 카카오가 1대 1.56의 비율로 합병할 경우, 텐센트는 지분이 10.1%로 줄지만 지분율로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약 40% 예상) 다음으로 많아진다. 지난 2012년 4월 720억원 투자로 카카오 지분 13.3%(360만주)를 매입한 텐센트는 이로써 지분가치가 4083억원으로 불어나게 됐다. 단순 계산해도 만 2년 만에 5배 넘는 투자수익을 거둔 셈이다.

텐센트에게 카카오 투자는 여러 면에서 투자 수익 이상의 성공을 가져다줬다는 분석이다. 국내 정보기술(IT)업계는 텐센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WeChat)이 단시간 내 기술력을 확보한 비결로 카카오 투자를 꼽는다. 위챗은 문자·음성메시지 송수신 등 기본적인 기능 구조가 카카오톡과 비슷하다. 김선우 두두코리아 대표는 “주요 주주이기 때문에 카카오톡 등 카카오 주요 서비스의 중장기 계획을 곁에서 배웠을 것이며 이는 위챗이 사업 방향을 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위챗은 모바일 결제 등 온라인 가상통화 부문에 있어서는 카카오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챗이 본격적인 턴어라운드로 돌입한 것도 따지고 보면 텐페이를 모바일 통화수단으로 채택한 뒤부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전문가는 “텐센트 투자는 카카오가 세계 최대 모바일 시장인 중국에 진출하는 데 두고두고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술력을 갖춘 국내 IT기업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구애(求愛)가 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인위적인 산업재편을 통해 대기업 육성 전략을 펼친 결과, 중국 대기업들은 외형은 커졌지만 미래성장 동력은 한계에 부딪친 모습이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기술력 확보를 새로운 기업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다.
현재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으로 커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경기 침체로 고전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기업들을 대거 인수하고 있다. 최근 국내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1분기 중국 M&A 거래 규모는 630억달러로, 분기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 업종 중 중국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모바일, 게임 관련 업종이다. 텐센트의 카카오 투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몇 년 전부터는 국내 벤처캐피탈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1년 중국의 대표적인 게임 기업 샨다게임즈는 자회사인 아이덴티티게임즈를 통해 국내 벤처조합인 ‘2011 KIF-원익IT전문투자조합’에 80억원을 투자했다. 이 돈은 국내 유망 벤처 기업을 간접투자하는 데 쓰인다. 참고로 샨다게임즈는 현재 다양한 간접투자방식으로 120여억원을 국내 벤처 산업에 투자한 상태다. 텐센트 역시 국내 벤처캐피탈 캡스톤파트너스에 총 300여억원어치 자금을 간접투자했다. 두두코리아 김 대표는 “기술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할 경우 신기술·수익 확보뿐 아니라, 나중 이 기업이 대(對)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견제하는 등 다목적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와 교육 사업 등 최근 중국 내수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커가는 분야에 대한 중국 기업의 투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텐센트는 국내 대표 엔터기업인 CJ E&M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기도 했다.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공략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기술유출 적발 건수는 49건으로 전년보다 19건 늘어났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 침해행위가 이뤄지며 중국, 대만이 전체 기술 침해의 절반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적발 건수는 대부분이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에 막은 것이며, 주로 대기업 관련 기술”이라면서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한 중소기업까지 합치면 실제 유출되는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유출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되자, 최근 중국기업들은 수입을 핑계로 대면서,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우회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로봇산업이 대표적이다. 현재 중국은 임금이 빠르게 치솟으면서 산업용 로봇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박현섭 산업통상자원부 로봇PD는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동부 연안 도시 내 생산인력이 산업용 로봇으로 빠르게 교체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조영훈 한국로봇산업협회 이사는 지난 6월 초 모 중국 지방정부 산하 과학기술 담당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역 내 한 제조 관련 협회가 한국 로봇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를 하고 싶으니 괜찮은 곳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조 이사는 “판로 문제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중국 측 제의는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봇 신기술 확보 위한 달콤한 유혹
하지만 이러한 중국 기업들의 투자가 또 다른 기술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상배 로봇빌더 대표는 “중국 기업은 맨 처음 물량을 대량 구매할 것처럼 계약을 맺은 뒤, 그 다음부터는 애프터서비스나 기술이전을 전제로 관련 기술을 계속적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당장은 수출 물량 증가로 한숨 돌리겠지만 나중에 가서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내 우수 인재를 확보하려는 중국기업들의 움직임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하이얼 등 중국 가전 기업에는 현재 한국인 임원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황재원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해외IT지원센터운영팀장은 “디스플레이 분야의 경우 삼성, LG그룹 출신 임원들이 다수 재직 중”이라면서 “가전 분야의 경우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 진출이 늘어나고 있어 해당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은 삼성, LG전자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술 이전을 채용조건으로 내세우는 기업들도 여전하다.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외형이 커지면서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대표 IT기업 문을 두드리는 국내 프로그래머도 늘어나고 있다. 노정석 파이브락스 대표는 “중국 내수시장이 커지면서 중국 기업의 처우가 점차 개선되고 있어 국내 엔지니어들이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