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관련 전문 서적으로 가득 채워진 도서관이 서울 도심에 들어섰다. 현대카드는 총 1만4000권이 넘는 장서를 갖춘 \'트래블 라이브러리(Travel Library)\'를 지난 5월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오픈했다.

대한민국에서 ‘청담동’이라는 단어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지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청담동은 우리나라 럭셔리 문화의 메카로, 가장 먼저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는 곳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에 이질적 정서를 지닌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매장과 최고급 레스토랑 사이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바로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다. 최첨단 트렌드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청담동에 아날로그적 미디어의 대표격인 책이 모여 있는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특하고 역동적인 서가의 구조와 동선으로 여행자의 모험정신을 일깨운다.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특하고 역동적인 서가의 구조와 동선으로 여행자의 모험정신을 일깨운다.
가회동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이은 두 번째 도서관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가 지난해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문을 연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도서관이다. 말 그대로 여행을 주제로 한, 책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여행을 떠나기 전에 들러 여행지와 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은 아니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책을 통해 이곳을 찾은 방문자를 새로운 세계와 연결시키는 통로이자,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책들이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여행지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스페이스마케팅팀의 류수진 팀장은 “소비와 변화의 중심지인 도심 한복판에 예상치 못한 일탈의 공간을 선보임으로써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지적 활동으로서의 여행을 제안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을 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 중 해외여행자 수만 약 1500만명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팽창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도 짙다. 자유와 모험, 도전정신, 새로운 영감과 같은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사라지고 있다. 대신 단순히 국내외 유명한 지역을 다녀오는 목적지 중심의 ‘관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 자신의 경제적 여유를 과시하거나 퇴폐적 목적의 여행도 많다.

현대카드는 변질되고 있는 여행의 의미에 주목했고,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근원적인 욕구와 여행이 지닌 가치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현대카드는 여행의 의미를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지적 활동’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그렇게 현대카드는 여행과 책이라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를 결합해 새로운 차원의 여행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라이브러리를 만들어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와 마찬가지로 현대카드는 보유한 장서(藏書)의 수에 연연하지 않았다. 도서 선정에 확고한 원칙을 정하고, 이를 모든 장서에 적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도서선정 원칙은 이렇다. ‘일상에 영감을 주고,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답해야 한다. 또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그 영향력을 인정받아 시대를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아름다운 비주얼과 디자인을 갖춘 책이어야 한다.’

이러한 도서선정 7 원칙은 트래블 라이브러리에서도 훌륭한 좌표 역할을 했다. 현대카드는 책 선정을 위해 해외 유명 미디어와 여행 전문 매체 등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아온 글로벌 북 큐레이터들을 초빙했다. 영국 <가디언>의 여행 칼럼니스트인 케빈 러쉬비와 <론리 플래닛> 아시아 지역 에디터 숀 로우, 건축과 여행·예술 전문 칼럼니스트인 캐롤리나 미란다, 일본의 저명한 북 컨설턴트 요시타카 하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4명의 북 큐레이터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의 도서선정 원칙을 바탕으로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각각 2000권의 장서를 선정했다. 이들은 단순히 정보와 사진에 치중한 관습적인 여행서적이 아닌, 독창적이고 능동적인 여행을 가능케 하는 책들을 중점적으로 선별했다. 특히 현대카드는 도서 선정의 전 과정에서 하나의 테마를 한 명의 큐레이터에게 한정하지 않았다. 복수의 큐레이터 조합을 통해 책을 1차로 선정한 뒤, 독자적인 최종 검수를 통해 최종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각 큐레이터들은 주목할 만한 769권의 장서에 대해 직접 논평도 작성했으며, 이는 라이브러리에 비치된 서적 검색용 아이패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여행 서적 코너는 대부분 지역별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자적인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이주화 스페이스마케팅팀 대리는 “새로운 테마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여행지를 발견하고, 이 여행지를 찾아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서적 분류는 마치 위도와 경도처럼 ‘테마’와 ‘지역’의 두 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아트·아키텍처, 어드벤처, 트래블 포토그래피 등 13개의 주요 테마와 전 세계 196개국을 망라한 지역별 분류의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여행 루트를 발견할 수 있다.

서가(書架) 곳곳에선 놀라운 책들과 만나게 된다. 예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모음집 <제네시스>와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삽화를 그린 <돈키호테> 등 곳곳에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방문자들을 기다린다.

파블로 네루다와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걸출한 여행기와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 컬렉션을 소개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컬렉션 A-Z>, 인간의 삶을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100개의 문화유산으로 요약한 <100가지 물건에 담긴 세계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0 Objects)> 등은 예술을 사랑하는 방문자들을 유혹한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여행과 관련된 세계적인 간행물도 엄선해 소장하고 있다. 특히 ‘지구의 일기장’이라 불리는 126년 역사의 다큐멘터리 전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권,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여행 지리 잡지인 <이마고 문디> 전권 등이 비치돼 있다. 또 전 세계 각 지역의 트렌드와 동향을 알 수 있는 102종의 매거진과 현재 전 세계에 실존하는 언어의 99%를 커버하는 111개 언어사전, 그리고 주요 도시 91곳의 지도도 갖추고 있다.

현대카드가 재해석한 여행의 콘셉트는 공간 구성에도 동일하게 반영됐다. 독특하고 역동적인 서가의 구조와 동선은 여행자의 모험정신을 일깨운다. 여행을 테마로 한 가구나 인테리어 아이템들도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많은 비행기가 매달려 있다.
-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많은 비행기가 매달려 있다.
독창적이며 역동적인 구조와 동선
트래블 라이브러리 내부를 살펴보면, 1층은 끊임없이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을 떠올리게 한다. 기념품 판매점과 북 카페, 야외 테라스로 구성된 1층은 책이라는 여행지로 떠나는 통로와 같다. 이곳에 설치된 수동식 비행안내판과 오래된 지구본 같은 고전적인 소품들은 여행이 지금보다 더 간절했던 시대를 추억하게 한다.

라이브러리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공간 안에서 새로운 여정을 이끌어내는 대표적 장치다. 마치 비행기에 오를 때 이용하는 트랩처럼 하얀 타일로 마감된 계단은 과감하게 뒤틀린 각도로 오르내릴 때마다 예상치 못한 풍경을 선사한다. 계단을 중앙에 배치하면서 라이브러리는 자연스럽게 수직과 수평으로 분리되고, 비워낸 바닥을 통해 1, 2층의 사방으로 다양한 장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1층의 높은 층고와 달리 계단을 오르면, 천장을 나지막이 감싼 2층 서가의 돔이 드러난다. 서가가 만들어낸 강렬한 인상은 내부의 여러 층과 방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아우른다. 서가는 천장에 이르러 더 다양한 각도와 높이로 꺾이며 그 자체로 조형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중앙 계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나뉜 2층은 겨우 두 명 정도가 통과할 수 있는 작은 통로만을 남기고, 바닥을 뚫어 1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마치 허공에 매달린 듯 아찔한 통로를 통해 서가는 자연스럽게 테마와 지역으로 구분되고 다시금 이어진다. 계단을 오르고 구름다리와 같은 통로를 지나야 하는 라이브러리의 동선은 ‘의도된 불편’으로, 방문자들의 모험정신을 자극한다.

2층 서가는 테마별 서가를 거쳐야만 지역별 서가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역시 의도적으로 만든 동선이다. 여기에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천장의 선을 바닥에도 그대로 적용해, 이곳이 세상의 모든 길로 통하는 허브임을 표현했다. 어디로든 이어질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이 경로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정신을 담고 있다.

역동적인 서가가 세워지면서 트래블 라이브러리 곳곳에 자연스럽게 빈틈이 생겨났다. 곳곳의 숨겨진 작은 틈에서 아날로그 지도를 통해 도시를 ‘발견’하고, 구글 어스를 통해 자신만의 여정을 실제 ‘경험하고 즐기며’ 나만의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1층 서가의 빈틈은 아날로그 지도를 통해 도시를 발견하는 공간이다. 도시에 대한 정보를 하나의 종이에 담은 지도는 단순히 도시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도시를 상상하게 만든다. 지도를 통해 여행지를 발견했다면 그 곳에 이르는 구체적인 경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도 있다. 2층 서가의 빈틈에 위치한 거대한 푸른 지구는 ‘구글 어스’를 통해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추천 경로와 자신만의 여정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몇 걸음 더 옮기면 또 다른 빈틈과 만나게 된다. 세 번째 빈틈은 무엇이든 썼다가 바로 지울 수 있는 화이트보드로, 나만의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는 장소다. 이처럼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서가의 빈틈마저도 여정에 맞춰 논리적으로 구성돼 있다.

라이브러리에 숨겨진 마지막 여백은 오직 계단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중층(中層)이다. 마치 커다란 벽난로처럼 계단의 측면을 파고 들어간 이곳은 현대카드가 선별한 다양한 테마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심층적인 매거진이 방문자를 맞이하고,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모듈형 책장에서는 여행을 테마로 하는 입체적인 전시를 선보인다.

류수진 팀장은 “여행은 라이프스타일 전 영역에 걸쳐 영감을 줄 수 있는 테마인 동시에 이질적인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며 “우리 라이브러리는 책을 통해 자신만의 여정을 발견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Mini  interview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디자인한 가타야마 마사미치

“호기심 느끼도록 강렬하게 디자인”
“여행 라이브러리는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색다른 프로젝트였습니다. 여행의 계기가 되고 여행의 추억을 나누는 제3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디자인 작업을 했습니다. 방문 자체가 진짜 여행을 떠나는 듯한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공간 디자인은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타야마 마사미치(片山正通)가 맡았다. 그는 프랑스 파리 ‘꼴레뜨’ 매장, 미국 뉴욕 소호 지역의 ‘유니클로’ 매장 등을 디자인했다.

그는 라이브러리의 공간 디자인에 대해 “책장을 모티브로 벽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책의 동굴이 콘셉트”라며 “단순히 도서 열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라이브러리 자체를 여행의 여정으로 즐길 수 있도록 신선하고 임팩트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이란 굉장히 재미있는 카테고리인데 라이브러리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있도록 흥미로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라이브러리의 콘셉트는 ‘여러 호기심이 한데 모이는 장소’”라고 덧붙였다.

“신비한 라이브러리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디자인했습니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매우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도 이런 곳이 없는데 여행을 테마로 하면서 1층에 카페가 있고 2층엔 라이브러리가 있죠. 물론 1층에도 책 공간이 있지만, 저는 단순한 공간이 아닌 몹시 복잡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곳저곳을 지나가는 행위 자체가 흥미롭고 모험을 하는 듯한 공간을 상상했죠.”

그래서일까.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가 도서관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여행의 지식이 가득하면서도 여러 가지 여행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놀이시설이라는 기분이다.

청담동은 서울 중에서도 강남, 강남 중에서도 럭셔리 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만큼 상징적인 지역이다.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설계에 앞서 주변과의 조화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청담동은 굉장히 패셔너블한 동네죠. 저는 이곳에 쇼핑이나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잠깐 들러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고, 또 한편으론 임팩트를 주고 싶었어요. 여기에 오는 것이 화제가 되는 장소, 주변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는 정면·외관 디자인에서부터 콘셉트가 나타나도록 강렬하게 디자인했습니다.”

라이브러리는 1층에서부터 2층까지 동굴처럼 솟아 있다. 직선은 없고 모두 울퉁불퉁하다. 그는 밖에서 볼 때 놀라움을 주고, 일단 한번 들어오면 계속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도록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전체 공간뿐 아니라 가구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카페 의자와 테이블, 라이브러리에 있는 각종 의자는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수집한 것이다. 의자는 세계의 여러 문화를 한데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도구인 셈이다.

한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그는 라이브러리를 어떻게 이용하고 싶을까. “한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아마 카페에 자리를 잡고 2층 라이브러리에서 여러 나라의 자료를 갖고 와서 친구와 천천히 수다를 떨 것 같네요. 그리고 여행의 세부 사항을 정하고 구글 어스로 목적지를 찾다 보면 순식간에 2~3시간이 지나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