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4일 이틀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세계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한국은 어떻게 줄타기를 해야 하나? 더 이상 줄타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어디하고 손잡아야 하나? 등 하나하나가 간단찮은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 받는 책과 저자가 있다. 최영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新조선책략>(김영사)이라는 책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라는 점에서 19세기 말 도쿄 주재 청나라 외교관 황준센(黃遵憲)이 <조선책략>을 썼던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를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준센은 조선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본, 미국과도 관계를 맺고 러시아를 경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親中-結日-聯美)한다. 그것이 황준센이 제시한 <조선책략>의 요체다.

그러면 최영진 교수의 주장은 무엇일까? “21세기에 우리가 취할 신조선책략은 대북교류와 억지정책의 동시 추진, 한미동맹, 한중협력, 한일교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책략을 일관하는 원칙과 비전은 무역 패러다임입니다.”

하나씩 풀어가자. 우선 패러다임의 문제다. 그는 수천 년을 이어온 약육강식의 전쟁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무역 패러다임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20세기 후반부터 국제 관계에서 새로운 패턴이 전개되고 있다”며 “지구 전체에서 무역에 의해 자원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이나 자원의 착취가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20세기 말 소련이 위성국가들을 포기한 것과, 베트남이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철수한 것 등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전 지구적 차원의 흐름에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21세기 초 우리나라는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역사적 패러다임의 변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나라나 개인은 번성하고, 올드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나라나 개인은 어려움을 겪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한말과 지금은 일견 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고 주장했다. “구한말 시대에 우리가 겪은 환란은 당시 약육강식의 국제 관계, 그리고 급격히 신장하는 일본의 국력과 침체일로에 있던 우리 국력의 현격한 차이를 감안할 때, 외교전략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다릅니다. 국제 관계 패러다임이 경쟁과 협력의 무역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점과,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국력과 국방력을 감안할 때, 통일을 포함한 우리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선택하는 외교전략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사회 내에는 일본이 통일한국을 두려워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도 분리통치의 원칙에 따라 내심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등등 많은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21세기 무역의 뉴 패러다임 하에서는 북한처럼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나라는 병탄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부담이 될 뿐”이라며 “북한 정권이 소멸할 경우 막대한 부담이 될 북한 주민의 민생을 기꺼이 책임지고자 하는 나라는 우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문제는 우리 고유의 문제로 다른 나라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굳건한 원칙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원칙과 결의는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합니다. 우리는 중국이 우리의 통일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통일과 연관된 중국의 기본적인 국익에 대한 배려는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이 통일되면 한중 국경지대에 미군 등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중국 측에 알리고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서독이 독일을 통일하면서 소련에게 나토군을 동독지역에 주둔시키지 않겠다고 했던 보장을 거의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서독은 이렇게 해서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통일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는 요즘 지구촌 차원의 관심사인 미국과 중국의 충돌설, 동아시아 영토분쟁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진단을 내렸다. 우선 미중관계와 관련, 그는 “미국과 중국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미중 양국에는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강경파 A그룹과, 경쟁과 협력이 복합된 새로운 강대국 관계가 설정될 것이라는 온건파 B그룹이 각각 있습니다. 미국의 행정부, 언론계, 싱크탱크 대부분은 확연히 B그룹에 속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가 양국관계에 대해 ‘신(新)대국관계’를 공식 천명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내의 B그룹과 논리·철학 면에서 아주 유사합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군사력이라는 하드 파워가 아니라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에 의존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관리해온 전통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그는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동시 선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 한국과 미국·중국 두 나라와의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동시에 확보해야 할 우리 외교의 근간을 구성하는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빈발하는 남중국해 영토분쟁과 중일 간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동아시아 영토분쟁에 대해서도 그는 낙관적이다.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상품과 인적 자원의 교류가 크게 늘어나고 그 결과로 상호의존적 관계가 긴밀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커다란 국익을 포기하고 영토문제로 양국 간 긴장을 키우거나, 지속시킬 실익이 없습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영토문제는 무력이 아니라 협상과 외교력에 의해 관리될 것이며, 설사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국지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관리될 가능성이 큽니다.” 


▒ 최영진 교수는…
1948년 서울 출생, 67~71 연세대 세브란스 의대 수학, 72~73 연세대 정법대학 정외과 학사, 75~76 프랑스 국제행정대학원(IIAP) 수료, 79~85 프랑스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 석사·박사, 72 외무고시 6기로 외교부 입부, 94~95 외무부 국제경제국장, 95~97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 2004 외교부 차관, 2008~2011 코트디부아르 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2012~2013.5 주미대사 2013.9~현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