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다음커뮤니케이션)과 모바일(카카오)의 만남’이라는 찬사 속에 다음카카오(가칭) 출범이 속도를 내고 있다. 세간의 이목은 통합 법인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의장에게로 쏠려 있다. 하지만 ‘다음 신화’의 주역인 이재웅 전(前)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의 행보도 주목받을 만하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카페 신화를 열며 386세대 정보기술(IT) 선두주자로 불렸던 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현재 검색엔진 최강자인 ‘네이버’보다 서비스 혁신성 면에서 우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다음’을 개발한 그이기에 차기 행선지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발표된 다음과 카카오의 통합은 국내 IT산업의 중심축이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합법인 대표가 다음 설립자인 이재웅 전 대표가 아닌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의장으로 넘어간 것은 인터넷 IT 서비스의 산업 판도 변화뿐 아니라 세대교체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거대 포털 ‘다음’ 세운 IT스타
이재웅 전 대표가 누구인가. 네이버와 함께 검색포털 분야에서 양대 산맥을 이룬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의 주역이 바로 이 전 대표다. 2000년대 중반까지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의장과 더불어 86학번 IT그룹의 최선두에 서 있었던 이 전 대표는 이번 통합으로 또 다른 같은 학번 출신 김범수 이사회의장에게 최대 주주 자리를 넘겨준다. 현재 이 전 대표의 다음커뮤니케이션 지분은 13.67%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포함하면 14.86%로 현재까지는 다음의 최대 주주지만, 공시에서 밝힌 것처럼 다음과 카카오가 1대 1.5557로 합병될 경우, 최대 주주 자리는 김 이사회의장에게 내주게 된다. 공시(公示) 자료에 따르면 다음의 합병가액은 주당 7만2910원, 카카오는 11만3429원으로 현재 두 회사는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다음은 7만3424원, 카카오는 11만3429원으로 정한 상태다. 우리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당초 계획대로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다음-카카오(가칭)는 지분 22.2%를 가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의장이 최대 주주로 올라서며, 그 뒤를 김범수 의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케이큐브홀딩스(17.6%), 텅쉰(텐센트) 계열사인 막시오 Pte(9.9%), 위메이드(4.1%) 순으로 차지하게 된다. 다음 이 전 대표(특수관계인 지분 포함) 지분은 3.6%로 지분 상 다섯 번째 주주가 된다.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지난 1995년 다음을 세운 이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다음’의 굵직한 결정을 모두 챙겨왔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무료 ‘e-메일’ 서비스 ‘한메일’을  선보인 것이나, 1999년 인터넷 동호회 성격의 ‘다음카페’ 서비스를 시작한 것, 제주도로의 본사 이전(2004년), 미국 검색엔진 라이코스 인수(2004년) 등은 모두 그의 손에 의해 결정된 것들이다. 그러나 현재 이 전 대표는 별다른 공식 직함이 없는 야인(野人)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8년 6월 이사회의장 자리마저 내놓으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전 대표는 현재 다음의 최대 주주 지위만 유지하고 있다. 

(사진 : 다음커뮤니케이션)1. 다음이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한 것도 이재웅 전 대표의 결정이다. 사진은 제주도 다음 스페이스닷원. 2. 지난 2011년 11월 서울 구로구 쉐라톤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퍼런스 ‘디브온(DevOn)2011’에 참석한 이재웅 전 다음 대표(가운데).
(사진 : 다음커뮤니케이션)
1. 다음이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한 것도 이재웅 전 대표의 결정이다. 사진은 제주도 다음 스페이스닷원.
2. 지난 2011년 11월 서울 구로구 쉐라톤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퍼런스 ‘디브온(DevOn)2011’에 참석한 이재웅 전 다음 대표(가운데).

‘임팩트투자’ 펀드 세워 9곳 투자
다음-카카오 출범과 함께 증권가 관심은 이 전 대표의 ‘다음’ 행보에 모아지고 있다. 이 전 대표와 관련해서는 주요 주주 자리만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지 등 두 가지가 중요 관전 포인트다. 이 상황에서 최근 이 전 대표와 관련해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소풍)라는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소셜 파워 오브 네트워크 그룹(SOcial POwer Of Network Group)의 줄임말인 소풍은 주로 소셜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유한회사로 알려져 있다. 벤처캐피탈(VC)과 유사한 형태다. 유한회사는 사원(주주)이 투자한 출자금액만큼만 책임을 지는 회사로 주식회사처럼 감사보고서를 외부에 공시할 필요가 없다. 경영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외부와의 소통에 있어 폐쇄적이다. 그동안 국내 언론에 소풍의 활약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현재 이 전 대표는 소풍 내에서 대주주 자격만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풍은 지난 2008년 설립된 소셜벤처 투자 회사로, 6~7명 직원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직원 수가 4명이다. 여기서 이 전 대표는 대주주 역할만 맡고 있으며, 전체적인 회사경영은 임준우 대표가 책임지고 있다. 임 대표는 다음에서 뉴플랫폼 본부장과 사내 벤처인 커리어다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소풍이 투자한 회사는 국내 소셜벤처기업 8곳, 해외 기업 1곳 등 총 9곳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국내 소셜벤처 기업 중에서는 친환경 의류 제작,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오르그닷’이 가장 눈에 띈다. 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로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는 ‘꼬마농부’와 제주도에 사는 예술인이 추축이 돼 공연, 여행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제주바람’도 대표적인 투자기업이다. 이 밖에 소풍은 자신이 가진 지식, 경험을 공유하는 강연전문 소셜벤처 ‘위즈돔’,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한 젊은 요리사를 채용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카페슬로비’뿐 아니라, ‘쿠킷’(친환경 요리법 지도), ‘텀블벅’(크라우드펀딩), ‘쏘카’(카셰어링 서비스 기업) 등에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기업으로는 아이디어, 프로젝트를 갖고 있는 사람과 투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셜벤처 ‘스킬셰어(Skill Share)’가 있다. 투자 기준을 묻는 질문에 임준우 소풍 대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지 여부, 개인보다는 팀(Team)단위로 회사가 운영돼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고 밝혔다. 임 대표는 그러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시키기만 해도 가능하다”고 운영 원칙을 설명했다. 소풍은 이들 9개 기업에 각각 적게는 3000만원, 많게는 수억원씩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 전 대표는 예전부터 사회 공익 실현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시작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유학시절 유럽 기업들의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직접 목격한 이 전 대표는 귀국 후, 연세대 전산학과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회사를 세웠으며, 이때 기업명을 ‘다음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의미의 다음(Next)과 소통(Communication)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균형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음의 초창기 히트작인 한메일이나 인터넷카페 등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전 대표의 오랜 지인인 한 벤처기업 대표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PC통신 시대에는 동호회를 만들려고 하면 복수로 의무 발기인을 구성해 직접 ID를 넣어야 통신사업자로부터 승인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용료도 유료였다. 이에 비해 오늘날 인터넷카페는 누구나 편리하게 아무런 간섭 없이 개설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인터넷카페 개설을 주도한 다음 서비스는 혁신적”이라고 설명했다. IT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공익재단 ‘다음드림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 전 대표의 공정사회 구현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방호 오르그닷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공익을 실현할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음드림재단의 사업 방식은 일반 기업의 CSR(기업사회공헌) 활동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스타일이다. 회사 설립 후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다. 기자간담회 및 외부 강연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제3회 글로벌제주상공인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강연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풀이된다. ‘새로운 차원의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이날 강연에서 이 전 대표는 사회적 경제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12년 1세대 IT기업인 출신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의 인연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것도 따지고 보면, 소셜벤처 산업을 육성하려는 그의 오랜 기업경영 철학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금융 관련 기업인은 이 전 대표에 대해 “젊은 기업인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V-Society) 회원으로 활동한 것도 친목을 다지기 위한 것일 뿐, 이 전 대표는 현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꼼꼼한 지장(智將)형 스타일인 이 전 대표는 20~30대 젊은 소셜벤처 기업인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며, 창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 사회 구현에 관심 보여와
때문에 IT업계에서는 다음 카카오 출범 이후 이 전 대표가 소셜벤처 산업 육성에 더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다음 지분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이 전 대표는 지난 3~4년 전부터 지분 매각을 꾸준하게 벌여왔으며, 올해 통합법인 출범 후에는 최대 주주 자격도 벗어나기 때문에 지분 매각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많다. 반면, 급하게 지분을 처분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음과 카카오의 통합으로 보유 지분은 줄었지만,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로 주식 가치는 올랐기 때문에, 통합 후 시장 상황을 봐가며 사회적 기업 육성 쪽에 매진할 것이라고 보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