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17일 미국 <블룸버그>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소액주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바꾼다는 신호들이 나오면서 이들 그룹의 28개 상장사 주가도 동반 상승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기업 가치가 재평가되기도 하지만 대주주의 지분이 늘어나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 방향성이 같아져 소액주주가 혜택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30~40%가량 갖고 있으면 아무래도 배당과 주가 부양에 더 적극적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600억달러(61조원)에 달하는 현금보유고를 활용해 배당금 지급보다 자사주 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다른 계열사 주식 매각을 통한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에 본사를 둔 증권사 CLSA는 그간 삼성 계열사들이 오너 일가 중심의 ‘비도덕적’ 지배구조를 통해 주주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소위 ‘재벌 디스카운트’로 주가가 저평가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삼성전자 주가가 현재보다 최대 75%까지 추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을 필두로 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자본시장에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주가도 오를 여지가 크다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 대기업들 주가는 기업 오너가 자식 이름으로 자회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주는 편법 증여인 ‘터널링(Tunneling)’과 자회사를 동원해 부실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핑(Propping)’ 등의 이유로 제값을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지주사 설립 시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이 2015년 말까지만 적용돼 올해와 내년에 지주사 전환이 지속될 전망이다. 조특법은 일몰 기한이 이미 한번 연장됐기에 추가 연장은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향후 지주사 전환이 가능한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질 거라는 말이다.
삼성은 지난 6월31일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결정했다. 삼성SDI가 존속회사가 되는 반면, 제일모직은 소멸회사가 된다. 합병은 시너지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제일모직의 분리막 기술과 전자재료 코팅기술은 삼성SDI의 전기차 및 전력저장장치(ESS)용 배터리의 기술 및 원가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제일모직도 리튬이온 2차전지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관계에 있는 삼성SDI의 영업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삼성SDI의 최대 주주인 삼성전자도 수직계열화 완성이 기대된다. 합병 전 삼성SDI, 제일모직 주식매수청구 접수가 미미한 것에서 드러나듯, 주주들이 두 회사에서 거의 이탈하지 않아 합병 당위성에 대한 설득이 통했다는 해석이다.
삼성은 7월4일 삼성에버랜드의 사명을 ‘제일모직주식회사’로 바꾸면서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을 살려놨다.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이 기존 의류, 패션의 명맥을 잇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일모직이 삼성그룹의 실질적 모태 기업이기 때문이다. 1954년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물산·제일제당에 이어 세운 제일모직은 70년대 패션, 90년대 케미칼, 2000년대 전자재료 사업에 진출하며 오늘날 삼성그룹의 초석이 됐다.

지배구조 개선 발표 후 삼성 주가 상승세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고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25.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존 전자, 금융뿐 아니라 삼성SDI를 통해 건설까지 지배하게 된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이 각각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합병으로 제일모직의 불안정한 지배구조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일모직 최대주주는 지분 11.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며, 2대 주주는 한국투자신탁운용(7.3%)이다. 삼성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은 삼성카드 7.3%, 삼성자산운용 4% 등에 불과했다. 그러나 합병회사의 경우 삼성전자(13.5%)가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국민연금(10.5%)은 2대 주주가 됐다. 이 때문에 후계구도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5월12일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이후 삼성그룹 주가는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한 종목 주가들이 주로 올랐다는 점에서 후계구도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풀이됐다. 그간 수면 아래에 잠복돼 있던 경영권 프리미엄이 기업 가치에 더해지면서 재평가를 받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그룹 후계가 이뤄질 때마다 새로운 대표주가 부상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자사주 매입 가능성이 관심을 모은다.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 관계사 지분율은 17.66%에 그친다. 자사주 11%를 포함해도 내부 지분율은 29%에 그쳐 지주사의 사업회사 지분율이 법정 최소기준인 30%를 밑돈다. 1%포인트 부족분의 가치는 2조원에 달한다. 이 정도를 투자해 삼성전자 지분을 살 계열사는 거의 없다. 결국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30% 기준 충족 시나리오가 힘을 얻는 이유다. 자사주 매입은 ‘친(親)주주 정책’이라는 차원에서 주가에 호재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06%), 삼성SDS(17%), 삼성석유화학(27.3%), 삼성종합화학(38.7%)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삼성엔지니어링(7.8%)과 제일기획(12.6%)의 최대주주다. 이들 지분가치만 해도 현재 시총액(11조원)과 비슷하다. 후계 과정에서 이들 계열사 가치가 재평가되면 주가가 오를 수 있다.
중간금융지주사로 변신을 꾀하는 삼성생명의 경우 최근 삼성자산운용을 100% 자회사로 편입키로 했다. 삼성화재(10%), 삼성증권(11%)의 지분율도 30%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종목의 주가 움직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삼성생명 시총액(20조원)에 거의 반영돼 있지 않은 삼성전자 지분 가치도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에버랜드 지분에서 외부 주주로는 유일하게 KCC가 17%를 보유해 가장 많다. 이는 이 부회장보다 적지만 이부진, 이서현 사장(각 8.37%)보다 많고, 삼성카드·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 등 4개 계열사 지분의 합과 같다.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서 KCC는 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할 수 있다. 세 남매의 지분 구조에 큰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캐스팅보트를 KCC가 쥐고 있는 셈이다. KCC는 2011년 이 지분을 7741억원(주당 182만원)에 사들였는데 작년 말 현재 8881억원으로 오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회장의 입원 직후 KCC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


[줄 잇는 기업지배구조 재편 펀드]
에버랜드 상장, 삼성 지배구조 재편 신호탄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가 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 수혜주에 투자하는 펀드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입원하기 사흘 전인 5월8일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SDS의 상장을 발표했던 삼성은 지난 6월3일엔 그룹 지주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들은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 상장할 예정이다.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각각 15조원과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건국 이래 최대 기업공개(IPO)로 일컬어진다. 이들이 최소 지분만 매각한다 해도 2조원이 넘는 주식이 시장에 풀린다. 국내 IPO 시장 규모가 연평균 2조원 안팎임을 감안할 때 두 기업의 상장만으로도 IPO 시장 1년 농사가 끝나는 셈이다. IB(투자은행) 업계 일각에선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공모 규모가 각각 2조원,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한국투자증권은 IBK자산운용이 운용하는 ‘IBK삼성그룹지배구조 목표전환형’ 사모펀드를 출시했다. 이전 삼성그룹주펀드가 시총이나 실적 전망 기준으로 투자 종목 비중을 조절했다면 이 펀드는 지배구조 재편으로 지분 구조상 재평가가 예상되는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의 비중을 높게 가져간다. 이 펀드는 만기가 정해진 단위형 펀드이자 목표전환형 펀드다. 삼성그룹주에 펀드 자산의 50% 이상 투자하다가 목표수익률 7%를 달성하면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하고 채권이나 콜론(단기대출) 등 안전 자산으로 갈아타 만기까지 운용한다. 공모펀드는 10%룰에 따라 한 종목에 펀드 순자산의 10% 이상을 투자할 수 없지만 이 펀드는 적극적으로 종목을 편입할 수 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도 ‘신한BNPP기업지배구조’ 공모펀드를 지난 6월 출시했다.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제고되는 종목이나 보유자산 대비 저평가된 지주회사에 중점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상장을 통해 삼성전자홀딩스·삼성물산홀딩스·에버랜드홀딩스 등 지주사를 만들고 이를 통합하는 초대형 ‘삼성 홀딩스’까지 설립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만큼 삼성에버랜드 상장이 본격화되면 수익률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이 외에 국내 처음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운용에만 특화된 자문사 설립이 추진되는 등 지배구조 개선은 자본시장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좋다고 해서 곧바로 기업가치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신중한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작년 6월 ‘2013년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한 A등급 이상 40개 기업의 선정 이후 최근 1년 주가등락률(7월2일 종가 기준)을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가 분석한 결과 평균 0.7% 상승하는 데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10.6% 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지배구조 우수기업들의 주가가 10%포인트 가까이 저조했다.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우수기업 선정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