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부터 이순신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글자를 깨칠 무렵 접하는 위인전에서 시작해 초등학교 운동장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을 매일 보며 자랐고, 어린이용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읽었다. 중학시절 단체관람으로 김진규 주연의 ‘난중일기’를 보면서 역사 교육을 받았고, 고교시절 수학여행 때는 부산에서 멀리 충청도 아산까지 가서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를 참배했다. 성장기에 막연히 훌륭한 인물로 각인된 이순신이었지만 대학시절에는 존재감이 떨어졌었다. 매사에 부정적이던 학생 운동권은 신입생들에게 은밀히 속삭였다. “박정희 독재의 합리화를 위해 이순신을 성웅(聖雄)으로 만들었고 기본적으로 거품이다. 임진왜란 후 선무1등공신으로   권율, 이순신, 원균 세 명이 봉해졌는데 선악의 대립 구도 속에 원균을 무능한 장수로 낙인찍었을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순신은 항상 내 곁에 없었다. 이순신은 너무 위대해서 신처럼 느껴졌거나, 선생님들이 존경하라기에 그러려니 했거나, 권력자가 존경하기에 성웅의 반열에 오른 사람일 뿐이라고 은근히 마음속으로 반감을 가졌거나 간에, 솔직히 진정으로 이순신에 대해 존경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10여 년 전 <이순신의 두 얼굴>(김태훈)과 <칼의 노래>(김훈)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이순신을 재발견했다. 어려서부터 너무 자주 접하기에 친숙하게 느껴왔지만, 진면목을 몰랐던 사람을 비로소 만나게 된 느낌이었다.

- 영화 ‘명량’은 지난 8월16일 역대 개봉작 중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했던 ‘아바타’의 1362만 명을 넘어섰다. ‘명량’의 한 장면.
- 영화 ‘명량’은 지난 8월16일 역대 개봉작 중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했던 ‘아바타’의 1362만 명을 넘어섰다. ‘명량’의 한 장면.

장년기에 이순신을 공감
김태훈은 평한다. ‘이순신은 분명 인간으로서 한계를 극복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도 우리처럼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다. 이순신은 결코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고난을 묵묵히 정면 돌파했다. 시련 속에 자신을 내맡기고 강골무인(强骨武人)으로 일관된 길을 걸었다. 이순신은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간 진정한 영웅이었다.’

우국충정, 호국정신 같은 상투적 표현을 한켠에 접어놓고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 실질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순신이라는 인간의 위대함을 이해하기는 충분했다. <이순신의 두 얼굴>이 이순신을 둘러싸고 있던 여건과 상황에 대한 철저한 사료 분석으로 신화 속에 가려졌던 영웅의 가치를 재발견했다면, <칼의 노래>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이순신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밑바닥까지 파고들면서, 영웅의 신화 속에 가려졌던 인간을 재조명했다. ‘난중일기’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던 이순신은 김훈이라는 후대 작가를 통해 되살아났다.

성장기에 이순신을 알고, 청년기에 이순신을 이해하였다면 장년기에 들어서는 이순신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었다. 사십대 중반에 들어 세상살이의 신산함과 인간 모듬살이의 복잡다기한 측면을 나름대로 경험하면서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고, 돋보이는 지위와 화려한 경력으로 무장하고 있어도 이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 진면목은 따로 있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리라. 특히 난중일기에서 가감없이 드러나는 그의 인간적 고뇌와 리더로서의 번민에 공감하면서, 조정의 군왕과 신료(臣僚)를 비롯하여 사방의 적들로부터 핍박받는 와중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이 다시금 경이로웠다. 오늘날의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직 중에 체포돼 문초 당하고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상황에서 다시금 백의종군으로 전장에 나간 책임감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무작정 외웠던 이순신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들려오는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도 나이가 들어 다시금 음미해보면 느낌이 달랐다. 그 역시도 성웅이기 이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이었고,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비였고, 절박한 상황에서 결전을 앞두고 고통과 번민으로 잠못 이루는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까워졌다.

그리고 2014년 여름 영화 ‘명량’으로 이순신을 다시 만났다. 한국 영화의 모든 신기록을 만들어내며 질주하는 영화라는 세평대로 평일 저녁시간조차 연속 매진되는 북새통 속에서 스크린으로 접한 내용은 명불허전이었다. 책의 활자는 머리로 생각하면서 대상과의 교감을 만들어내지만, 영화의 화면은 눈으로 먼저 느끼면서 일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명량’ 속의 그는 내 인생에서 아마 가장 강하게 느낀 이순신이 될 듯 하다.

영화의 가장 큰 덕목은 선택과 집중이다. 군더더기 없이 단 하나의 전투에 집중하고 어쭙잖은 에피소드나 늘어지는 설명 없이 상황을 전개해 나가는 하드보일드적 간결함이 역설적으로 강렬했다.

이순신은 23전 23승 불패(不敗)의 명장이었지만, 가장 극적인 순간의 승리는 단연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무찌른 명량해전이다. 사실상 궤멸해 버려 이름만 남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조선 수군의 총사령관이 된 절망적 상황에서, 더욱이 자신을 의심하고 핍박한 조정에 대해 그야말로 일편단심으로 최선을 다해 이끌어낸 승리였다.

영화에서 아들 이회가 “아버님은 왜 싸우시는 겁니까”라고 여쭐 승패를 떠나서 전투 자체의 군사적, 개인적 타당성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영화 속의 이순신은 책임감을 “의리다”라는 한 마디로 압축한다. 이어서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라고 덧붙인다.

영화 속에서 아들 이회는 내가 이순신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결코 싸우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목숨을 걸고 싸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군왕과 조정에다, 현실적으로 맞닥뜨린 전력 열세는 싸움을 피할 명분까지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순신은 나아가 싸웠고 이겼다. 사사로움을 뒤로 하고 공적인 책임감과 의무를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그는 탁월한 명장이었다.

전쟁 초기 조선군은 용렬한 장수들 탓에 지리멸렬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극복의 주역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이런 사례가 무수히 나온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오는데 좌병사 이각(경상좌도 수비군 총사령관)은 우왕좌왕하다가 가장 먼저 자신의 첩부터 피난시킨다. 비록 동래부사 송상현이 맞서 싸우다 전사하기도 하지만, 이는 왜란 초기 극소수의 예외일 뿐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앞다퉈 도망부터 친다.

심지어 용궁 현감 우복룡은 도망치던 와중에, 지휘관 없이 전장으로 이동하던 의병 수백 명과 마주치자 사소한 트집을 잡아 모두 죽여 버리고는 반란군을 진압했다고 순찰사 김수에게 허위보고까지 한다. 우복룡이 반군 진압의 공으로 정3품 통정대부로 벼락출세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지는 것을 보고 당시 도체찰사이며 후일 영의정으로 전쟁을 이끌었던 류성룡조차 개탄을 금치 못했다.

- 영화 ‘명량’이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2014년 8월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시민들이 ‘명량’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영화 ‘명량’이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2014년 8월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시민들이 ‘명량’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목숨을 건 투지가 승리의 요인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기나 할랑가~, 아~ 모르면 호로새끼들이제~” 영화 속의 대사이지만 명량해전이 끝나고 실제로 누군가는 했음직한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까지 임진왜란을 비롯해 이후 병자호란,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선열들의 피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압축해 나타낸 명대사였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 배 천 배 큰 용기로 배가 돼 나타날 것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난중일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를 풀어낸 대사는 익숙했음에도 새로웠다. 장년기에 들어서 나 자신 유사하게 경험했던 대목이 있었기에 느낌이 달랐지 않았을까.

세계 해전 사상 최고의 전투로 일컬어지는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요인은 우세한 전력이 아니라 이순신의 투지였다. 인간 이순신조차 일말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어려웠겠지만, 그는 자신을 극복하고 나아가 죽음을 불사하는 단호한 행동으로 조직의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의 심중에 자리했던 두려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는 이 내용 없는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리더란 항상 고독하고 힘들기 마련이지만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리더를 위해 일하는 참모들이 있고, 개인적인 조언을 구할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결국 결정은 온전히 리더의 몫이다. 리더도 인간이기 때문에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 정보를 수집하고 상황을 파악해 결정을 내리지만, 엄밀히 따져서 그 결정이 옳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더라도 리더는 조직의 명운을 가르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특히 위기를 맞아 자신의 결정에 따라 조직 전체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리더가 내면적 고독과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리더의 운명은 이러한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는 자신의 내면적 고뇌와는 별도로 조직 전체에 강력한 용기와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출발점이라는 전형을 명량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직업군인인 지인의 지론이다. “군인은 모순의 세계에서 산다. 누구나 목숨은 아깝고 죽음은 두렵다. 그런데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는 죽으러 가라는 명령이다. 통상적이라면 살려고 도망치는 것이 맞지만, 군대는 죽을 줄 알면서도 앞으로 돌격해야 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군대 지휘관은 자신의 사생관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정적 순간에 잘못된 판단을 내려, 자신은 물론 부하의 목숨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座右銘)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지휘관부터 개인적 생사를 초월해야 부대가 이기고 살아남는 길이 보인다는 내면적 고백이다.”

잘난 척하는 우리에게 경종 던져
‘명량’의 질주는 그 동안 국내 영화의 상투적인 성공방정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인물도 아니고, 결과도 이미 알고 있는 전투이다. 저항하는 약자의 코드로 감성을 건드리지도 않고 흔히 양념으로 넣는 로맨스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진행하다가 1시간이 넘는 전투 장면 끝에 막을 내리는 영화가 이렇듯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는 것은 경이롭다. 이를 두고 묵묵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이순신에게서 리더십의 위기에 처한 오늘을 비추어 보는 심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고 나 역시 동의한다.

언젠가부터 리더십에 대한 말은 넘쳐나지만 정작 현실에서 리더십의 행동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과거의 이순신은 현재성을 띠고 살아났다. 군왕도 아니고 정승도 아닌, 일선에서 싸우는 군인이었지만 사심없이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장군에게서 리더십의 전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교한 이론으로 무장한 수없이 많은 리더십 전문가들과, 현란한 말을 내세우는 소위 정치·사회 분야의 리더들이 정작 리더십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의 이론과 말대로 자신들이 행동할 것인지 여부가 회의적인 상황에서, 실제로 언행일치의 행동을 했던 이순신은 크게 돋보인다.

겉만 볼 뿐 본질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자들에 대해 김훈은 이렇게 평했다. “<칼의 노래>를 386 애들이 읽고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때 배 13척으로 133척을 부순 것처럼 하겠다는 거야. 무지몽매한 거지. 이순신이니까 한 거야. 걔들이 갖고 나가면 다 죽어. 그걸 보고 눈물이 나오더라고. 미쳤구나. 요새 내가 글을 잘못 써 가지고 어린 것들을 망쳐놓았구나. 적이 133척 갖고 나올 때 지도자라면 100척은 갖고 나가야지.”

잘난 척하는 자는 많으나 알고 보면 대개 시시한 인간들 일색인 오늘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400여 년 전 치열하게 살다간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주는 존재감은 묵직한 것이었다. 김승옥의 소설 <염소는 힘이 세다>를 패러디한다면 ‘역사는 힘이 세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쌍용경제연구소를 거쳐 현재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경영 전문가로서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으며, <마흔이라면 군주론>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위기를 지배하라> 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