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대 내 가혹 행위 문제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끔찍한 폭행이 이뤄져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동료 장병에게 총기를 난사하기도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 부모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이런 사태를 지켜보며 ‘아이는 왜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누구나 자녀 교육을 뜻하는 대로 할 수 있다면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얼마 전 대한민국 부모들을 위한 교육 처방전 <행복한 부모가 세상을 바꾼다>를 펴낸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올바르게 자녀 키우는 법을 들어봤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라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 임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 요새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의 부자들처럼 개인 보디가드를 고용하고 방범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한 사회가 되고, 군대 내 총기 난사로 사고 여러 명이 죽고… 일련의 사건들의 뿌리에는 부모가 있다고 봅니다. 한 명 한 명의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키워내면 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겠죠.”
이나미 박사는 “부모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괴물을 안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올바른 자녀 교육법이란 무엇일까. 이 박사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지금껏 ‘기본’에 너무 무심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공부 잘해라’, ‘1등 해라’ 이런 얘기만 해온 거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도덕성, 양심, 예의 등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사회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박사는 지난해 3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콤플렉스와 그 해소 방안을 다룬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냈다. 이밖에도 청소년 문제, 여성 문제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점들에 대해 해법을 제시해왔는데 이번 집필 동기도 그와 같은 맥락인지 궁금했다.
이 박사는 “오랫동안 ‘부모와 자녀 교육’이란 주제를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해왔다”며 “한창 아이를 키울 때는 자녀 교육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하기가 조금 꺼려졌었지만, 50세가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2000년대 초 5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미국 교육제도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직접 경험했다. 여기에다 자신이 아이를 키운 경험까지 더하고 나니 결론이 나왔다.
‘완전히 이상적인 교육제도도, 부모도 없다는 것.’
평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박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부모와 자녀 모두가 불행한 이유는 육아를 부모의 보상 심리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느냐’인데 대부분의 부모는 내가 누리지 못한 것과 하지 못한 것을 아이의 소망인양 덮어씌웁니다. 이럴 때 갈등이라도 발생한다면 아이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 부모 자신이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문제이지 아이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모, 자신의 내면 세밀하게 들여다보라”
이 박사는 자녀 교육법 측면에서 현재의 베이비붐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 세대를 비교 설명했다.
“지금 7080세대는 자녀 교육에 대해 ‘나는 무능해. 그러니까 배운 네가 잘 알겠지’라는 태도였다면, 베이비붐 세대인 50~60세 부모들은 나름대로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같은 태도로 자녀에게 많은 것을 강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이 자율성이 부족한 어른으로 크는 것이죠.”
이 박사는 “부모 자신의 교육 방식이 모든 아이에게 적합한 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박사가 책을 통해 부모와 자녀 유형을 각각 10여 가지로 나눠 자녀 교육 원칙을 소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착취형 부모와 매니저형 부모, 일중독 부모와 게으른 부모, 외향형 부모와 내향형 부모, 영재 자녀와 학습 부진아 자녀, 반사회성 인격 장애로 성장하는 자녀 등 25여 년간 수많은 부모와 자녀 수만명을 상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유형별 처방전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출간된 육아·자녀 교육 관련 서적은 대상 개개인에 대한 고려 없이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훈육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이의 유형을 파악하기에 앞서 부모 자신의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남이 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바뀌는 것을 원한다면 나부터 바뀌어야죠.”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이 박사의 자녀 교육은 어땠을까. 스스로 평가를 부탁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자라는 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아들이 두 명 있는데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무례하게 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냅니다. 독립적으로 살고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웃음).”
초등학교 때 부모의 서재에서 <논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方法敍說)>, 파스칼의 <팡세>를 꺼내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한 그지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그 역시도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 왜 성적이 떨어졌냐는 고성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
이 박사는 “공부 자체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조금 물러나야 한다”며 “내 경우는 아이들의 교과서를 미리 보고 자연스럽게 그 내용으로 호기심을 유발해서 대화를 나눴다.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와 나눈 이야기를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우니까 더욱 재밌어 했다”고 귀띔했다.
미혼인 기자가, 결혼도 하기 전에 “스스로를 챙기기도 바쁜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얘기하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아이가 부모를 성장하게 하기도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애를 안 낳을 필욘 없어요. 오히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는 슈퍼맨이 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해요.”
인터뷰를 하러 왔다 고민을 해결하고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좋은 부모일까’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이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지금도 참 괜찮은 부모다”라고.
▒ 이나미 박사는 …
1961년생. 85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89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자격 취득. 93년 <문학사상>에 단편 ‘물의 혼’으로 등단. 95년 서울대 대학원 신경정신과 박사. 92~2000년 이나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2003년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교 대학원 종교와 정신의학 석사. 현재 한국 융 연구원, 서울대 임상외래교수, 이나미라이프코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