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마켓(벼룩시장·Flea market)이 젊은 층 사이에서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전처럼 단순히 중고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가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찾아가면 여느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제품과 재미,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다양한 문화를 교감할 수 있는 ‘문화 장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소비자와 교감을 높이기 위해 플리마켓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다양한 플리마켓에서 그 인기 비결을 살펴봤다.

지난 7월26일, 서울 이태원 이슬람 사원 앞 우사단로(路)는 무더운 날씨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단장’을 구경하러 온 방문객들 때문이다. 이곳에는 아이와 손잡고 나온 가족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푸틴’(감자튀김에 갈색 육즙과 응고된 치즈를 함께 넣어서 만든 캐나다 퀘벡지방 전통 음식)을 사먹는가 하면, 알록달록한 손뜨개 팔찌를 둘러보는 이도 있었다. 지난 8월16일 연남동 홍익 어린이공원에서 열린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역시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는 한복 원단을 이용해 만든 지갑, 구리를 녹여 만든 풍경(風磬) 등 다채로운 물품들이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공원 한편에서는 모 인디밴드가 신디사이저와 기타로 공연하는 가운데, 관객들은 손을 흔들며 이들의 노래를 즐겼다. 두 곳 모두 국내 유명 플리마켓이다.

플리마켓이 이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지난 2002년 6월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에서 비롯됐다. 2회 행사 때부터 창작품만 판매하기로 한 이후, ‘이 곳을 찾아가면 독특한 공예품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났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사이트(www.visitseoul.net)에서도 소개할 정도로 젊은이들 사이 관광 명소가 됐다. 서울 시내 우후죽순처럼 크고 작은 플리마켓들이 생겨난 것도 이곳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면서부터다. 올해 8월 한 달간, 서울 시내에서 열린 플리마켓은 모두 1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플리마켓에 열광할까. 이태원 계단장에서 만난 김지혜(24)씨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고, 재밌어서 자주 찾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플리마켓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은 어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가령 10원을 내면 10초 안에 그려준다는 홍대앞  예술시장 ‘10초 초상화’는 하루 동안 500여 명이 몰릴 만큼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장김치(전통 식초와 간장으로 담근 김치)로 만든 ‘장김밥’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비건햄버거’는 대학로 마르쉐의 명물이다.

- 지난 8월16일 홍익 어린이공원은 플리마켓을 찾은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 지난 8월16일 홍익 어린이공원은 플리마켓을 찾은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소비자에겐 문화를, 판매자에겐 기회를 제공
다양한 공연이 함께 열리면서 ‘문화 향연(饗宴)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도 플리마켓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심지어 공연만 보러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무대가 알차다. 인디밴드 ‘토끼사냥꾼’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김현민(26)씨는 “3년 전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에서 인디밴드 ‘에바53’(Eva53)의 퍼포먼스를 보고 팬이 됐다”며 “그 후에도 공연을 보러 플리마켓을 찾다가 직접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원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플리마켓은 시장이라는 장소에 문화와 재미를 더한 복합 공간”이라고 정의 내렸다. 다시 말해 ‘물건’이 아닌 ‘문화’를 파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인기에 비해 수익성은 좋지 않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김영등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는 “입장료가 무료고, 참가비도 만원씩만 받고 있어 운영비 등을 빼면,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가자 역시 돈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제품을 싸게 팔다 보니, 남는 게 별로 없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자혜(24)씨는 “플리마켓에 계속 나가고 있지만, 여기에서 큰돈을 벌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구경 온 방문객들이 대부분이기에 판매만으로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게 참가자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만화가 김모빈(19)씨는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가지고 참여했지만, 하루 종일 하나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 1월 서울 연남동 마모스페이스에서 열린 ‘마모 플리마켓’에서 물건을 판매해본 결과, 하루 동안 벌어들인 수입은 고작 5만원이었다. 여기서 참가비 3만원을 빼고 나면 남는 건 2만원이 전부다. 결국 현실적으로 플리마켓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플리마켓에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등 일상예술창작 대표는 “플리마켓은 자신이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대중들과 부담 없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홍보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일부 작가의 경우 플리마켓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전시나 프로젝트를 맡는 호기를 잡기도 한다. 금속 공예가로 활동하는 표명선(48)씨는 “플리마켓에서 작품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지난 2009년 철원군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플리마켓을 제품 홍보 기회로 삼으려는 일반 판매자들도 최근 많이 늘고 있다. 서울 서교동과 삼청동에 매장을 두고 있는 수제 액세서리 전문업체 웰던디 역시 이런 이유로 플리마켓에 참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플리마켓은 참가자들 간 정보 교류의 장이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다음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공연 기획자 황경하(30)씨는 “음악가들은 플리마켓에서 작품을 공유하고,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 외환은행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일상예술창작센터와 함께 명랑시장을 열었다. (원 안) 김다솔(21·로드아일랜드대 그래픽디자인)씨가 친구 정현정(21·로드아일랜드대 섬유디자인)씨와 함께 플리마켓에서 에코백(Eco bag)을 팔고 있다.
- 외환은행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일상예술창작센터와 함께 명랑시장을 열었다.
(원 안) 김다솔(21·로드아일랜드대 그래픽디자인)씨가 친구 정현정(21·로드아일랜드대 섬유디자인)씨와 함께 플리마켓에서 에코백(Eco bag)을 팔고 있다.

기업은 플리마켓을 통해 차별화
일부 플리마켓이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이를 자사 이벤트와 연계시키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늘어나는 추세다.

예컨대 롯데백화점은 지난해부터 매년 네이버 카페 ‘패밀리세일’과 연계해, 서울 소공동 영플라자 옥상 하늘정원에서 플리마켓을 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24일 열린 올해 행사에는 서울 약수시장, 광주 대인시장 등 전국 전통시장 9개 맛집을 초대해 먹거리 장터를 열었다. 정선화 롯데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고객들이 플리마켓에 재미있게 참여하면 자연스레 롯데백화점에 대한 관심도 많아질 것 같아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모객효과도 뛰어나 주로 젊은 고객들의 참여가 많았으며, 올해 행사의 경우 5000명 정도가 방문했다. 더불어 롯데백화점은 기업 사회공헌활동(CSR)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전통시장과 상생 협력하고 있다. 

BMW 코리아도 플리마켓을 통해 체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BMW 코리아는 지난 8월30일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미사리 조정 경기장 부속 가족공원 주차장에서 ‘MINI 플리마켓’을 열었다. 이 행사는 미니(MINI)를 소유한 운전자들이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원하는 물건을 판매하는 이벤트다. 신은주 BMW 코리아 홍보팀 매니저는 “미니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생활양식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취지”라며 “오너들 간에 특별한 유대감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서는 새롭게 출시된 3세대 신형 MINI 디젤모델을 시승해볼 수도 있다.

외환은행은 사회적 기업 일상예술센터와 손잡고 금요일마다 명동 외환은행 본점 광장에서 ‘명랑시장’을 열고 있다. 김인수 외환은행 사회공헌팀 차장은 “기부나 봉사 활동에 그치는 기존 CSR에서 탈피해 이해 당사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기업들에게 플리마켓은 소비자에게 상품의 차별화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유원상 고려대 교수는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던 종래의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러면서 “CSR 활동과 체험 마케팅의 일환으로 플리마켓을 활용하면 경쟁우위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리마켓에 나온 이색 물품]

이효리 구두, 정몽준 양복 팔려 화제

-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FIFA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입었던 양복.
-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FIFA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입었던 양복.

일부 플리마켓에서는 유명인들이 내놓은 물건도 나온다. 지난해 8월9일과 12월13일 이효리와 송혜교,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이효리 송혜교 한혜연 플리마켓'을 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중 12월에 열린 플리마켓에는 배우 고소영도 참여해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올 6월7일에는 가수 린과 이수, 스윗소로우가 ‘블링 나이트 마켓’에 판매자로 참가했으며, 6월15일 배우 박민지가 연남동 ‘막켓’(Makket)에서 직접 그린 유화 그림을 판매했다. 위아자나눔장터는 명사 기증품 판매 코너를 마련해 유명해진 곳으로, 2005년부터 매년 1회씩 열리고 있다. 지난해 행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소장품인 탈 장식품과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시절 입었던 양복 등이 판매됐다. 올 행사는 오는 10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서울시 대표 플리마켓]

홍대·대학로·이태원 ‘빅3 시장’ 유명

가장 유명한 플리마켓은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남동 홍익 어린이공원에서 열린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홍대 부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여기서는 이들이 직접 만든 예술품을 만나볼 수 있다. 대학로 ‘마르쉐’는 주로 친환경 먹거리와 독특한 음식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으로,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장터'로 알려져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다.

이태원 ‘계단장’은 매월 마지막 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슬람사원 앞 계단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이다. 판매 물품이 따로 정해져있는 건 아니지만, 이태원의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빈티지 소품, 외국 음식 등이 판매돼 색다르다.

압구정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블링 나이트 마켓’이 열린다. 주로 패션 관련 상품들이 판매되며 클럽 같은 분위기에 DJ까지 있다. 주변에 모델 에이전시들이 위치해있어 패션모델들이 나와 물건을 판매하기도 한다. 

‘레코드 폐허’는 3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인디 음악가들의 플리마켓이다. 공연할 무대와, 음반을 판매할 시장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최근  행사는 지난 7월12~13일에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살롱 바다비에서 열렸으며 다음 행사는 오는 10월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