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9일(한국 시간) 세계 축구 역사상 길이 남을 승부가 펼쳐졌다. ‘전차군단’ 독일이 개최국 브라질을 7대1이라는 놀라운 점수 차로 대파한 것이다. 영국 BBC의 해설위원 게리 리네커가 “지난 50년 동안 가장 놀랍고도 어리둥절한 경기”라고 평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승리였다. 독일 대표팀은 이 여세를 몰아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연장 혈투 끝에 격파하고 24년 만에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 짜릿한 승리가 만들어진 이면에는 ‘빅 데이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통계적 분석 기법의 최전선에 있는 빅 데이터가 축구에까지 영향력을 뻗친 것이다.

호흡 수, 맥박 수, 근육 움직임 측정한 맞춤 훈련 방법
독일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자국의 IT(정보기술)기업 SAP과 협력해 ‘매치 인사이트(Match Insight)’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매치 인사이트에 사용될 데이터를 얻기 위해 대표팀 선수들은 연습 전 양 무릎과 어깨에 네 개의 센서를 부착한다. 이 센서는 선수들의 호흡 수나 맥박 수와 같은 신체적 상태는 물론이고 근육의 움직임과 같은 세세한 부분마저 측정할 수 있다. 한 센서가 1분당 1만2000여 개의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걸 생각하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축적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매치 인사이트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프로그램은 얼핏 아무 맥락이 없어 보이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유의미한 정보로 정리해준다. 이 정보는 선수나 감독의 태블릿 PC에 바로 전송된다. 매치 인사이트를 통해 판별된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은 바로 각 선수들에게 특화된 맞춤 훈련으로 이어진다. SAP의 공식 홍보 대사이자 독일 대표팀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올리버 비어호프는 “예전에는 비디오 분석 장비가 있는 방에서 선수 개개인과 약속 시각을 잡아 선수를 분석했다. 이제는 선수들의 정보를 언제든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경기 중 센서 착용이 금지되는 월드컵 경기는 어떻게 분석했을까. 경기장 밖에 설치된 여덟 대의 고화질 카메라가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영상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시작이다. 이 데이터를 통해서 선수들의 위치는 물론이고, 뛴 거리, 순간 속도, 움직이는 방향과 같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 데이터는 SAP에서 개발한 별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해 보기 쉽게 정리된다.

전술적인 결정도 빅 데이터 활용
축구는 결국 팀 플레이다. 팀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전술이 없으면 선수들이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들다.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며 독일 대표팀은 ‘빠른’ 축구를 구현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대 후반 세계 축구를 휩쓸었던 점유율 위주의 축구 대신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확립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을 실현하는 데도 역시 매치 인사이트의 도움이 컸다.
SAP의 도움으로 독일은 모든 경기에서 점유율, 패스 성공률과 같이 경기 운영에 중요한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었다. 독일 대표팀은 특히 개개인이 공을 다루는 시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훈련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매치 인사이트는 선수들이 얼마만큼 목표에 근접했는지 계속적으로 추적했다. 그 성과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회 기간동안 명확하게 드러났다. 선수들이 공을 소유했던 평균 시간은 불과 1.1초다. 남아공 월드컵 때의 3.4초에 비하면 70% 가까이 단축된 수치였다. 선수들끼리 공을 빠른 속도로 주고받으면서 더욱 속도감 있는 축구를 할 수 있었고, 그만큼 위협적인 공격 기회도 늘어난 것이다.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축구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독일이 처음이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가 대표적인 사례다. 맨체스터 시티는 2006년 축구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프로존(Prozone)의 전직 컨설턴트였던 시몬 윌슨을 채용했다. 프로존은 0.1초마다 각 선수들의 움직임을 측정하면서 경기당 이뤄지는 평균 3000회가량의 볼 터치를 기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윌슨을 비롯한 분석가들은 프로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수비수들의 간격과 상황별로 서 있어야 될 위치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맨체스터 시티는 2011~2012 시즌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며 우승한다.
유소년 선수 육성에도 큰 도움 될 수 있어
빅 데이터를 사용하는 목표 중 하나는 선수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있다. 이러한 과정은 특히 유소년 스포츠에서 더욱 중요하다.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선수의 특성을 미리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송이 SAP 코리아 이사는 “빅 데이터를 통해 선수의 움직임을 분석함으로써 이 선수가 성장했을 때 어떤 종목, 혹은 어떤 포지션에 적합한지 파악할 수 있다”면서 “빅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다면 더욱 뛰어난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빅 데이터를 축구에 도입한 사례는 전무하다. 아직까지는 감독과 코치가 자체적으로 경기를 분석해 전술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국내 축구도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한송이 이사는 “독일의 성공을 통해 매치 인사이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