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또한 기본을 지키지 않아 일어났던 것 아닌가요. 국가포럼의 설립 취지도 아주 기본적이고 간단합니다. ‘생활공동체로서의 국가를 국민에게 되돌려주자’는 것입니다. 국민이 진정한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에 나온 겁니다. 국가라 하면 국회를 포함해 정부, 대통령, 법원 등 모든 국가 기관을 의미하는 말이죠. 그동안 국가가 마치 국민 위에 군림하다시피 하며 본인들 이득이나 챙겨왔던 게 사실입니다. 국회만 봐도 당리당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너무 자연스러워졌죠. 자의적(恣意的)인 사법부, 조폭적인 정당, 이런 것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국민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가장 우선하는 생활공동체가 바로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국가포럼은 이석연 변호사와 강경근 숭실대 교수가 출범을 함께 준비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공론화됐으나, 두 사람이 국가포럼의 출범을 구상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이 변호사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화두가 부상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주변의 뜻있는 분들과 이 사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주인이 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을 나눠왔고 이것이 그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100만 국민 서명 운동’ 전개할 것
두 사람은 국가포럼을 시민단체가 아닌 ‘생활밀착형 국민운동’으로 만들겠다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때문에 명망가나 전문가 위주의 모임으로 조직화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운동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사안이 생길 때마다 회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반영해 실행해갈 계획이다. 강경근 교수는 지난 8월26일 열린 출범식에서 “특정 사안이 발생할 경우 ‘100만 국민 서명운동’ 등을 가능한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국가포럼의 목표는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상태다. △정부 형태가 권력을 국민의 것으로 하는 헌정의 원칙대로 운영되기 위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 및 총리제 폐지 또는 순수한 의원내각제 개헌 △국회 인사청문회 범위 확대 및 엄격 운영 △국가가 세금의 사용 내역을 납세자에게 알려주도록 하는, 예산 낭비에 대한 국민 감시 및 세금AS기구 설치·운영 △국회의 당파적 예산심의에 대한 국민참여권 보장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합리적 제한 및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 대한 국민심사제 도입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바탕으로 한 통일 제안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세금AS기구 설치’는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정부의 심각한 예산 낭비 실태’에 대해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산 낭비가 굉장히 심합니다. 내가 예전에 정부 일을 했었기 때문에 잘 알아요. 잘못 분배되거나 과도하게 쓰여 낭비되는 예산만 잘 추슬러서 복지 분야로 돌리면 증세를 많이 안 해도 복지 정책의 상당 부분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예산 분배 과정과 심의 과정에 외부 기관이 참여해 감시하게 하고, 또한 예산은 엄연한 국민의 돈인데 그걸 밀실에서 하듯 국회에서 통과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있도록 납세자에게 그 과정을 알리는 국가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세금AS기구를 만들라는 것이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해야
이석연 변호사는 국회의 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면책특권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불체포특권은 아예 폐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여야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어요. 헌법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게끔 국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것도 헌법의 기본 원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헌법을 개정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국가 개조를 해야 합니다.”
그는 현행 대통령제에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처럼 대통령과 헌법상 그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내각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유사대통령제 내지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와 같은 절충형 정부 형태에 대한 논의는 끝내야 한다. 정부 형태의 절충은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정치적 타협으로 국가의 권력구조가 굴절되고 국민의 권력이 유보된다. 4년 중임의 대통령제가 아니라면 헌정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순수한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인사청문회 제도 역시 숱한 논란을 낳고 있는 사안이다. 폐해만 있을 뿐 정작 인재를 찾지 못하는 제도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인사청문회는 폭넓은 인재 등용을 통해 참여의 기회를 균등하게 확보하라는 헌법의 요구이다. 또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현재의 인사청문회 내용은 물론 대상도 확대해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8월25일에 열린 국가포럼 출범식에는 정운찬 전 총리, 조순형 전 국회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박재갑 전 국립 암센터 원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축사를 해준 조순형 전 의원에 대해 이석연 변호사는 “평소 좋아하고 매우 존경하는 분”이라고 평하며 “조순형 전 의원이 축사 같은 걸 원래 잘 안 하시는데 처음엔 2~3분만 하겠다고 하시고는 실제로는 10분 넘게 하시며 박수도 많이 받으셨다”며 웃었다.

조순형 前 의원은 평소 존경하는 분
국가포럼 출범식에서는 이 변호사의 저서 〈이석연의 직언,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출판 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이 책에는 조순형 전 의원 못지않은 ‘직언가(直言家)’로 통하는 이석연 변호사가 이 사회를 향해 내놓았던 소신 있는 발언과 행보들이 담겨 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선 이념이나 좌우를 따지지 않고 비판했던 그는 불합리한 사회 규정이나 법제도를 고치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수도 이전법, 군 가산점 제도, 담배사업법에 대한 헌법 소원 등 그가 제기했던 사회 이슈마다 큰 파장과 논란을 낳았었다.
변호사 개업을 한 이유 또한 이러한 공익소송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는 “법조인들이 국민들한테 좋은 평가를 못 받는 것 또한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에 너무 소홀하기 때문이다. 대형 로펌에서 하는 공익소송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고, 시민운동에도 참여율이 가장 저조한 이들이 법조인들”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초창기에 헌법연구관으로 5년간 근무하면서 위헌적인 제도와 법률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비정상적인 법들을 고쳐야 국민이 혜택을 받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변호사 개업 공고를 내면서 ‘앞으로 소비자, 노약자, 환경 관련 문제를 겪고 계신 분들 많이 오시라’고 했어요. 동료, 선배 변호사들이 그걸 보고 “너는 돈 들여서 돈 안 드는 소송만 하겠다고 광고를 한 셈이다. 그거 가지고 어떻게 사무실을 유지하겠느냐”고 하더라구요.(웃음) 하지만 내가 뭔가를 꾸준히 하면 그 결과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공익소송을 많이 하니까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또 다른 사건도 같이 들어오고. 그래서 큰돈은 못 벌었지만 공직생활을 할 때보다 여유도 생기고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대우그룹 판결 재검토 필요”
그가 최근 ‘대우그룹에 대한 헌법 소원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해 대우 측 인사들을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법리적인 차원에서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해 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김우중 전 회장에게 내려진 추징금 처분이 과도하다는 생각에 당시의 판결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확실하게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네고 싶은 평가를 들려줬다.
“벌써 취임한 지 1년 반이 지났는데 지금까지는 여러 면에서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1년 이내에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급속하게 레임덕을 겪게 될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1년이 고비입니다. 제가 여러 사람을 만나보니 박근혜 정부 탄생 과정에서 지지했던 분들 중에 조금 더 지켜보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게 아니다’라고 우려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좀 더 들여다보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 국정 운영의 틀과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겁니다.”
▒ 이석연 변호사는…
1954년생, 78년 전북대 법학과 졸, 80년 전북대 대학원 법학 석사, 91년 서울대 법학 박사, 2003~2005년 일본 게이오대 교환교수, 79년 행정고시 합격, 85년 사법고시 합격, 89~94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99~2001년 경실련 사무총장, 2003~2005년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 2004~2009년 헌법포럼 상임대표, 2008~2010년 28대 법제처장, 2006년~현재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2006~2007년 선진화국민회의 상임공동위회 위원장, 2011년~현재 21세기 비즈니스포럼 공동대표, 2011년~현재 한국감정평가협회 법률고문, 2007년~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