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보이차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차(茶)다. 건강에 좋다고 여겨져 국민 대다수가 물처럼 즐겨 마신다. 이런 배경은 보이차의 역사가 천년 동안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한국에 중국인만큼 보이차에 푹 빠진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 보이차 명인 서영수 감독을 만나 보이차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9월3일 한국의 보이차 명인(名人) 서영수 감독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에 위치한 ‘동다송 보이차’를 찾았다. 이곳에서 서 감독과 지인들이 함께 하는 다회(茶會·차를 마시며 노는 모임)가 열렸다. 이날의 다회가 특별했던 이유는 중국 국영방송 CCTV가 지인들과 보이차를 즐기는 서 감독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현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현재 CCTV는 중국에서 천년간 변하지 않은 6가지를 특집 보도하는 다큐멘터리 ‘중국천년문화공정(中國千年文化工程)’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6가지 중 하나로 선정된 ‘보이차’를 소개하는 데 한국의 서영수 감독을 촬영하러 왔다니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류춘우(劉春雨) CCTV 촬영감독은 “광동성차문화연구회의 보이차 전문가 주즈리(朱自勵) 부비서장을 통해 한국의 보이차 명인을 추천받았다”며 “서 감독은 보이차 중에서도 고수차 산지를 잘 아는 명인이기 때문에 서 감독을 초청해 1차적으로 중국 고수차 산지를 탐방한 후, 한국에서 보이차를 즐기는 일상을 담으러 왔다”고 설명했다. 고차수(古樹茶)는 인위적으로 심어져 자연에 동화돼 오랜 세월이 지난 차나무를 말하는데, 이 나무에서 나온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를 고수차(古樹茶)라고 한다. 고차수에서 채취한 찻잎은 최고의 품질로 인정 받는다.

- 중국 국영방송 CCTV 촬영팀이 ‘중국에서 천년간 변하지 않은 6가지’ 중 보이차를 소개하는 특집 방송을 위해 한국 보이차 명인 서영수 감독이 다회를 즐기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 중국 국영방송 CCTV 촬영팀이 ‘중국에서 천년간 변하지 않은 6가지’ 중 보이차를 소개하는 특집 방송을 위해 한국 보이차 명인 서영수 감독이 다회를 즐기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좋은 차 만들 수 있는 환경 찾아 4년간 차산지 돌아
서 감독은 지난 6월 초, 류 감독의 섭외 요청을 받은 후, 7월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중국 서남부 지역의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따라 티베트까지 이동하면서 일대의 고수차 산지를 돌았다. “그날 부랑(布朗)족 마을 대표와 만나 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이 부랑족 대표의 아버지는 1950년대 초에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게 윈난성에서 만든 보이차를 선물한 적이 있어요. 아들인 이 대표는 2000년도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보이차를 선물했고요. 대를 이어 보이차를 생산해오고 있는 전통 있는 집안이죠.”

서 감독은 중국 내에서 중국인도 잘 모르는 산속 깊은 곳 고수차 산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고수차 고수로 통한다. 서 감독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남모를 노력과 상당한 투자가 있었다.

“중국 윈난(雲南)성의 차산지(茶産地)만 1000곳이 넘습니다. 이 중 중국 전역에 잘 알려진 차산지가 100곳 정도 되는데 제가 4년간 한 80곳은 다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명한 곳은 다섯 번, 열 번 가기도 했어요. 현지의 한족(漢族)과 소수민족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보이차에 대해 공부하고 푹 빠져 살았습니다.”

100% 사재(私財)를 털어 돌아다니다 보니 지금까지 들인 돈만 해도 1억원 가까이 된다. 서 감독은 “차창(茶廠)에선 보이차를 돈으로만 생각하고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절대 자신의 창고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다녔기 때문에 현지 차창 사장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 감독이 이처럼 보이차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보이차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어 중간 판매자의 횡포에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 서 감독은 “10여년 전부터 차(茶)에 대해 무지(無知)한 사람들이 보이차가 돈이 된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었다”며 “중국 사람들도 안 마실 정도로 저급(低級)인 차가 좋은 차로 둔갑해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보이차 직접 채취해 수출해야

보이차는 크게 둘로 나뉜다. 발효되지 않은 생차(生茶)와 발효가 진행된 숙차(熟茶)다. 서 감독은 “원래 숙차는 생차를 원료로 해서 10년 이상 잘 숙성된 노차(老茶)를 가리키는데 중국 정부가 ‘보이차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차가 돼야 한다’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인위적으로 단기간에 숙차를 만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미생물 발효를 촉진시켜 생차를 인위적으로 익히기 위해 물을 뿌려가며 강제로 숙성시켜 만든 차는 전통적 기준에서 숙차라 부를 수 없다는 것.
“이런 식으로 5년 된 차를 수십년 된 노차로 속여 고가로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합당한 가격에 보이차를 공급하고 한국 사람이 건강한 보이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서 감독은 “최근 10년간 고수차가 각광받는 이유는 고차수 자체가 수백년 된 나무여서 생차로서도 거부감 없이 좋은 맛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좋은 고수차 한 편(357g)의 가격은 1000만원부터 수억원대까지 크게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만과 홍콩은 고수차의 진가를 알아보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윈남성 이남 시솽반나(西雙版納) 지역의 땅을 장기임대해 보이차 생산에 매진하고 있는 것. 중국에서 보이차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처럼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윈난성처럼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입니다. 오히려 토양이 더 좋고요. 한국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고수차 산지에 건너가 보이차를 채취하고 가공·제조해 세계시장에 수출해야 합니다.”  

▒ 서영수 감독은…
1956년생. 80년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수료. 1980년 보이차 입문. 1984년 영화 ‘나도 몰래 어느새’로 감독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