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한국 대중들에게 철학이란 생경한 과목이다. 이는 중·고교 시절 제대로 된 철학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 많은 고등학교들이 입시 위주로 수업 시간표를 재편하면서 철학 수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중동고등학교는 정규 교과목으로 철학을 가르치는 몇 안 되는 고등학교 중에 하나다. 95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째다. 중동고가 꾸준히 철학 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1세대 철학 교사’로 언급되는 안광복 교사의 역할이 컸다. 96년부터 중동고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그는 학교 안팎에서 인문학을 전파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학교를 넘어 세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저술 활동이다. 철학을 주제로 단독 저서만 13권을 집필했고, 총 30여만부가 판매됐다.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같은 경우 출간된 지 7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철학 베스트셀러다. 그는 오히려 교사 신분이 더 좋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 생각이 나요. 학계에서 투명인간이었다는 느낌. ‘고등학교 철학 교사입니다’ 하고 명함을 내밀면 말을 섞으려는 사람도 없었어요. 저는 철학박사긴 하지만 사람들은 제 얘기를 학자로 들으려는 게 아니라 교사로서 들으려고 하거든요. 어딘가에 글을 내려고 해도 교사가 쓴 글이 어려울 경우 그 자리에서 잘라 버려요. 그러니 글쓰기가 그렇게 훈련되었던 거죠. 쉽게 쓰고, 호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글을 쓸 수 있게끔.”
‘How’에는 강하지만 ‘Why’에는 약한 우리나라
그의 수업을 듣는 사람은 고등학생들만이 아니다. 지금도 그는 한 달에 열 번 정도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기업의 CEO(최고경영자)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 그가 느낀 것은 우리나라가 ‘how(어떻게)’에는 뛰어나지만 ‘why(왜)’에 대한 답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SERI(삼성경제연구소) CEO에서 강의를 하지만 기업가들을 보면 느끼는 게 ‘how’에는 상당히 강해요. ‘어떻게 전략을 짤 것인가’, ‘어떻게 수익을 올리냐’. 그런데 ‘왜 그 행동을 해야 되는데’라는 질문에는 당황해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짐으로써 어느 순간에 ‘why’는 빠져버리는 거예요. 어떻게 상대를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지 왜 치열하게 경쟁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는 왜 중요한 것일까. 그는 “왜 경쟁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이다”고 말했다. 왜 경쟁을 하는지를 잊은 채 경쟁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정말 싸우던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봐야 보이는 거예요. 스티브 잡스는 다른 회사들이 기술 경쟁에 매달렸을 때 기술이 사람의 어떤 면을 충족시키는지 고민했어요. 저는 그걸 철학이라고 봐요. 온 몸이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었을 때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늘을 보는 순간. 그러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큰 그림에 집중하는 거죠.”

직접 서점에 가서 재미있는 책을 골라야
그에게 있어서 독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는 ‘세상이 두 쪽 나도’ 하루에 3시간은 책을 읽는다고 한다. “글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데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어떤 철학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았다.
“책이라는 게 그런 속성이 있어요. 서점에서 책을 고르잖아요. 그러면 거짓말같이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와요. 나한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분야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담긴 책이 아주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어요. 모든 독서의 기본은 재미있는 책을 읽는 거예요. 나한테 재미있는 것, 끌리는 것,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그럼 실패 안 합니다.
경제·경영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특징이 굉장히 트렌디하다는 점이에요. 세상의 흐름이 이러니까 내가 이거를 꼭 봐야겠다. 자기한테 절실한 것에 답을 찾기보다는 누가 추천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이 책을 봤으니까 나도 따라가야 한다는 식이에요. 그런데 정말 창의적인 독서를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시다면 직접 서점에 가셔서 한두 시간은 투자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철학은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 역시 “철학이 굉장히 재미있고 유용한데 처음 접할 때는 아주 진절머리 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행히도 그는 철학에 좀 더 쉽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철학책을 직접 보지 않고 소설을 많이 보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문학이라는 건 공감을 할 수 있잖아요. 문학책이 좋은 게 철학적인 문제의식을 삶 속에 굉장히 잘 녹여요. 세계적인 명작이라는 건 그 자체가 철학적이거든요.”
▒ 안광복 교사는…
1970년생. 93년 서강대 철학과 졸업, 97년 서강대 철학과 석사, 2006년 서강대 철학 박사, 1996년~중동고 철학 교사.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자의 설득법>, <철학, 역사를 만나다> 등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