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법원경매(法院競賣)는 부동산시장의 바로미터 같은 역할을 해왔다. 유찰(流札)될 경우 가격이 20~30%씩 내려가는 특성을 갖고 있어 집값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들썩이는 곳이 바로 법원경매였다.
지난 10월16일 서초동 중앙지법 경매법정. 경매4계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경매에 나온 물건은 모두 31건이었다. 입찰(入札) 개시(오전 10시 정각)를 알린 지 30분이 지나자, 입찰장(入札場) 안 방청석이 하나둘씩 차기 시작했다. 입찰장 밖에서는 매각물건 정보가 담긴 소식지를 나눠주는 경매정보 업체, 경매강습 학원, 경락잔금 대출을 알선해주는 금융기관 관계자들로 북적거렸다.
일부 예비 입찰자들은 자신이 고른 경매 물건이 취하·변경 처리됐다는 공고(公告)를 보고는 허탈해 했다. 현장에서 만난 김문구씨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마음에 들어 입찰을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경매가 취하돼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가 생각한 물건은 압구정현대아파트 중에서도 단지 가장 안쪽에 위치한 25동 물건이다. 건물 바로 앞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경매물건은 이날 감정가 17억원에 처음 경매로 나왔으나 입찰 전 경매가 취소 처리됐다.
입찰 마감까지 10분 남았다는 안내 방송이 나가자, 방청석이 하나둘씩 차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입찰장 좌석은 대략 160여 개이다. 정각 11시 입찰이 마감됐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쯤에는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내(場內)가 북적거렸다. 뒤에 서 있는 사람까지 합치면 180여 명 정도가 이날 경매 과정을 지켜봤다. 종합법률사무소 청명의 김영수 경매실장은 “방청객의 절반 정도는 입찰자가 아닌, 현장학습 차원에서 법원을 찾은 사람”이라면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입찰자가 늘어나는 점을 보면 부동산 시장이 점차 살아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입찰에서 최대 경쟁률을 기록한 물건은 사건번호 ‘2013타경30081’이었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역삼우성빌라트 102호(전용면적 139.71㎡)는 두 번 유찰된 끝에 감정가(6억원)의 64%인 3억8400만원에 입찰에 부쳐졌다. 입찰자 수는 무려 28명이었으며 낙찰은 감정가에 가까운 5억5100만원을 쓴 김모씨에게로 돌아갔다. 이날 입찰에는 서초동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최고급 오피스텔 부띠끄 모나코 오피스텔(전용면적 185.1㎡)도 물건으로 나왔다. 감정가만 23억 원인 이 물건은 두 번 유찰을 거듭한 끝에 이날 입찰이 다시 진행됐다. 입찰에는 2명이 참가했으며, 18억10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이날 입찰이 진행된 것들 중 특이했던 물건은 사건번호 ‘2013타경6507’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894-13번지에 위치한 도로였다. 강남구 대치동 롯데캐슬아파트 인근 주택지에 위치한 이 도로는 토지면적이 88.1㎡로 감정가는 2억4668만원이었다. 10번씩이나 유찰된 끝에 감정가의 11%인 2648만7000원에 부쳐진 이 도로물건에는 4명이 경쟁을 벌여, 3119만9900원을 쓴 박모씨가 최종 낙찰을 받았다. 김 경매실장은 “종종 개인 소유 도로가 경매로 나오는데 이런 물건은 최대한 싸게 낙찰받아, 해당 지자체를 상대로 도시계획도로 사용료를 받기 위한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 용도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실거래가보다 비싸게 낙찰받는 사례 늘어
지표상으로 보면 최근 경매 시장 분위기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 가는 모습이다. 경매전문 정보제공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아파트 낙찰가율(낙찰가/감정가×100)은 92.68%를 기록해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수치상으로도 지난 2009년 10월 96.2%를 기록한 이후 최고치다. 서울 전 지역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로 환산해도 89.16%로 지난 1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창동 지지옥션 경매자문센터 선임연구원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경매로 넘어오지 않고 중도에 취소 처리되는 물건이 늘어나, 서울지역 같은 경우는 낙찰가율이 80~90%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이창동 선임연구원은 “시중에서 일반매매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줄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경매시장으로 몰리고 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과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경매물건은 신건(新件·처음 경매에 나온 물건. 이 경우 감정가가 입찰 시작가임)에서 바로 낙찰되는가 하면, 특정 인기 물건에는 입찰자가 30~40명가량 몰리고 있다. 지난 9월25일 열린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 미리내마을 A아파트 물건(41.85㎡)은 감정가 1억6500만원에 경매로 부쳐져, 1억6105만원을 입찰가로 쓴 이모씨가 낙찰받았다. 같은 단지 내 이 물건과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 실거래가가 1억50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비싸게 낙찰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에 낙찰된 광진구 구의동 A아파트도 전형적인 고가(高價) 낙찰 사례다. 전용면적 84.9㎡(25.7평)인 이 아파트의 감정가는 4억5000만원이었는데, 최종 낙찰가는 92%인 4억1233만원으로 결정됐다. 올 2월 단지 내 같은 평형대 세대가 이보다 훨씬 싼 3억8000만원에 팔린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가격 차이가 난다. 황지현 법무법인 참진 경매실장은 “추후 부동산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무턱대고 비싸게 낙찰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직접 주변 집값을 알아보지 않고 경매 브로커들의 말만 듣고 입찰가를 적어 낭패를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황 실장은 “입찰장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적으로 낙찰가를 적지 말고, ‘최소 2~3번 정도는 경험 삼아 해본다’는 심정으로 입찰에 나서는 것도 합리적인 가격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