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국내 최초로 보톡스를 이용한 다한증(多汗症) 치료법 도입, 국내 최초 실전 경험을 담은 보톡스 전문 서적 집필, 국내 최초 세계적인 피부외과 교과서의 ‘코필러 성형’ 부문 집필 등. 서구일 모델로피부과의원 원장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닌다. 부산지역 자연계 수석으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 졸업하고 피부과 전문의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이 같은 인생이 펼쳐질 줄 예상했을까?
당시 1990년대는 피부과 전문의의 경쟁률이 별로 높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피부과에 지원했을 때 경쟁률이 3대 1이었을 정도로 치열했다. 보통 각 과의 경쟁률은 정원에 딱 맞게 1대 1이거나 1.5대 1인 경우가 보통이다. 서 원장은 다시 생각해도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100세 시대가 오고 ‘안티에이징(anti-aging·노화 방지)’이 사회적 트렌드가 될 것임을 예측했는지 슬며시 물어봤다.
![- 피부과의 진료 영역은 피부 질환에서 피부 미용 관리와 안티에이징 관리로까지 확대됐다. 서 원장이 환자에게 보톡스 주사를 시술하고 있다.](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14/10/30/2014103000003_0.jpg)
서 원장의 말대로 피부 질환에 대해 연고를 처방하던 정도로 인식됐던 피부과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피부과의 영역이 아름답고 건강한 피부를 가꿔주면서 각종 시술을 통해 노화 방지를 돕는 것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른바 ‘관리 받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서 원장은 “병원에 오는 사람들의 20%가 40~60대의 남성 고객들”이라면서 “사업하는 CEO(최고경영자)들은 첫인상이 중요할뿐더러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외적인 관리에 힘쓴다”고 설명했다.
동양의 미적 관점에 맞는 시술법 활용해야
그렇다고 해서 모든 피부과 병원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룰 수는 없는 법. 유독 서 원장의 병원에만 유명 연예인들과 정·재계 인사들이 북적이는 비결이 뭔지 물었다.
“얼굴에 무언가를 했다는 티가 안 나도록 자연스럽게 생기를 찾아드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지적질’ 전문입니다.(웃음) 먼저 고객이 오면 거울을 건네면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드립니다. 그리고 10분 동안 냉철한 평가의 시간이 이어지죠. 본인이 잘 몰랐던 단점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우선순위’를 정해줍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벨류에이션(evaluation), ‘평가’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딱 맞도록 균형 잡힌 진단을 내려야 하죠. 그건 의사의 역량입니다.”
국내 피부과 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보니 세계적인 학회로부터 초청도 자주 받는다. 지난 3월 서 원장은 미국피부과학회의 초청을 받아 ‘아시아의 미학’을 주제로 한국형 보톡스·필러 치료의 특성에 대해 발표했다. 서 원장은 “동·서양의 미적 관점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보톡스나 필러 시술을 할 때에도 시술법에 차이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톡스가 서양에서 도입된 기술이잖아요. 서양의 기준에 맞춘 시술법이다 보니 동양 사람에게 적용하면 안 맞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一)자로 눈썹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아치형을 좋아해요. 서양에서는 턱이 사각턱이어도 예쁜 것으로 간주하고 시술로 광대를 더욱 강조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볼살이 통통한 베이비페이스를 선호하죠.”
![- 서구일 원장은 “달리기를 하다 보면 러닝하이(running high)라는 상태에 이르는데, ‘하늘을 나는 느낌’처럼 독특한 행복감을 준다”면서 “안티에이징을 위해 시술을 받는 것도 좋지만 운동을 하는 것도 필수”라고 강조했다.](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14/10/30/2014103000003_1.jpg)
의사를 교육하는 의사
그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킬 보톡스 시술법을 발달시켰다. 지난 2009년 출간한 〈보톡스 시크릿〉에는 그의 10년간의 시술 경험과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피부 관련 상식을 바로잡아주고, 후배 의사들이 그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 2002년 모델로 아카데미를 설립해 보톡스 코스를 시작으로 지방 흡입, 지방이식 등의 의사 교육을 꾸준히 실시해 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2004년부터는 일본, 호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아카데미를 개최해 한국의 의료기술을 세계에 보급했습니다. 한국의 의료 기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아주 뜨겁습니다. 태국,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서 원장은 “국내 보톡스·필러 치료의 기술력은 한국보다 앞서 보톡스를 도입한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보톡스 기술이 처음 도입된 미국보다 한국 의사들의 기술력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서 원장은 외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의 미용 시술 수요를 꼽았다. 또한 ‘까다로운 소비자가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한국에는 까다로운 고객이 많다는 점도 한몫했다.
“보톡스나 필러가 주사 시술이다 보니 붓는 증상이나 피부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는 증상에 대한 반감이 큽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케뉼라’라고 하는 미세바늘을 사용합니다. 바늘 끝이 뭉툭하기 때문에 얼굴 내(內) 깊숙이 위치한 혈관을 터뜨리지 않는 것이죠. 한국의 휴가 기간이 짧다는 게 또 하나의 배경입니다. 외국은 휴가 기간이 보통 한 달에서 두 달까지이기 때문에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것에 상대적으로 관대해요. 한국은 짧은 휴가 기간에 시술을 받아야 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티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회복되도록 기술력을 높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웃음)”
그는 시술로써 외적 관리를 돕는 피부과 의사이지만, 항상 내적 관리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한다.
“제가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 젊게 해드리긴 하지만 몸이 건강해야 안색이 밝아지고 피부 탄력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유산소 운동이든 근력 운동이든 종류에 관계없이 운동은 몸의 전체적인 혈액 순환을 돕기 때문에 좋습니다. 저도 40대 이후부터는 종종 보톡스를 맞아왔지만, 30분씩 달리기 운동을 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문득 우리나이로 50세인 그가 30대처럼 보이는 것은 이처럼 외적 관리와 내적 관리를 동시에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서구일 원장은…
1965년생. 90년 서울대 의대 졸업, 95년 서울대 피부과 전문의 수료, 2000년 서울대 피부과 의학박사, 2000~2001년 도쿄대병원 피부과 연구의학자, 2007~2011년 제22차 세계피부과학술대회 조직위원회 부회장, 2012년 미국 모발 이식 전문의 자격 취득, ~ 현재 모델로피부과의원 대표원장, 서울대 피부과 겸임 부교수, 세계피부외과학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