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님을 만나러 오는 길에 참 색다른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사옥’과 ‘계단’에 대한 소감부터 건넸다. 이런 종류의 대화로 인터뷰를 시작한 것은 기자로서도 난생 처음인 듯했다. 나름대로 짐작한 바를 말했다. 첫째, 철판 외벽은 녹슨 모양을 감안하면 폐(廢)철판을 재활용한 듯하다. 둘째, 가파른 경사의 계단은 잘 모르긴 해도 뭔가 조심하도록 의도한 것이지 않나. 하지만 사옥에 대한 분석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계단에 대한 추측은 얼추 정답에 가까웠다. 건축의 거장이 ‘설계’한 시험을 처음 치러 50점의 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사옥은 물론 제가 설계했죠. 외벽에 적용한 철판은 녹슨 철판이 맞기는 하지만 재활용한 것은 아니고요. 내후성(耐候性: 각종 기후에 견디는 성질) 강판이라는 특수합금입니다. 원래는 바다나 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용으로 개발됐죠. 제가 지난 2000년 국내 최초로 건축용(서울 중구 장충동2가 ‘웰콤시티’ 건물)으로 적용한 바 있습니다. 이 철판은 철, 구리, 아연으로 만든 합금인데, 처음에는 검은색이었다가 녹이 슬면서 점차 색깔이 변해갑니다. 그런데 부식이 딱 5년 동안만 진행된 후 멈춥니다. 그 다음에는 녹이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해 내부의 철을 영구 보존하게 되는 원리죠. 철판의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다워요. 세월의 흐름도 느끼고, 기억도 간직하게 되죠. 이 철판은 가격이 저렴한 데다 관리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아주 경제적인 건축재죠. 참, 계단을 아주 가파르게 만든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대표를 만나러 올 때는 마음가짐이나 자세 등을 조심하라는 뜻을 담았죠.(웃음) 우리 직원이 30명쯤 되는데, 저는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금세 알아냅니다. 사람의 성질이 발걸음 소리에 나타나거든요.”
승효상 대표는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로 명성이 높다. 지난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은 ‘2002 올해의 작가’로 승 대표를 선정했다. 국내 건축가로는 초유의 일이었다. 또 지난 2007년에는 정부가 그의 문화예술에 대한 공헌을 인정해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여했다. 승 대표는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역임했고, 2011년에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도 활약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각종 전시회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쳐 왔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으로 유명
그의 건축철학은 ‘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특유의 트레이드마크로 집약된다. 빈자의 미학은 1996년 그가 펴낸 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20세기는 서구 문명이 주도한 시대였다. 건축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만개하고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거대하고 과시적인 건축물이 땅을 뒤덮어 나갔다. 그런 것을 가령 부자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빈자의 미학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다. 빈자의 미학은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숙성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제가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수근(1931〜1986) 선생님 문하에서 15년간 있었죠. 그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 때문에 ‘공간(김수근 선생이 생전에 경영한 건축사무소)’ 대표도 3년간 했어요. 하지만 1989년 막상 독립하고 나니까 ‘승효상 건축’이 뭔지를 모르겠더군요. 선생님의 그늘이 컸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울 금호동 달동네를 걷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초라한 달동네 속에 내가 배운 건축지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한 거죠. 그곳 주민들은 가진 게 적어 8~10평 남짓한 조그만 집에 살았습니다. 집 안에 편의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없죠. 그러다 보니 이웃들과 많은 것을 나누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마을 길거리에 광장, 시장, 빨래터, 놀이터, 공회당 같은 공동체를 위한 기본시설들이 생겨났죠. 그런데 달동네를 가만히 보니 굉장히 친숙해요.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부산 피난민촌 공간구조와 흡사하더군요. 그래서 ‘이게 뭘까’ 하고는 서울의 달동네를 모조리 조사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나누면서 살 수 있는 동네가 잘 사는 사람들의 동네에 적용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 1992년 젊은 건축가들의 모임인 ‘4.3그룹’을 통해 전시회를 열면서 ‘빈자의 미학’을 제 건축철학으로 선언하게 된 겁니다.”
이로재(履露齋)는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학(小學)>에 나오는 글귀에서 따왔다.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어떤 선비가 아침마다 이슬을 밟으며 노부모에게 문안을 드리러 가는 일화에 등장한다. 가난한 선비가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집. 실제로 승 대표는 사옥 위층에 자리잡은 자택에서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데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건축가의 사옥 명칭으로는 참으로 절묘하다.
“건축의 목적은 건축물이 아닙니다.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겁니다. 사람이 주인공이니까 사람을 돋보이게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건축은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그는 1980~8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빈) 공과대에서 수학했다. 그 시절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라는 건축가가 남긴 업적을 접하게 됐다. 아돌프 로스는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를 무대로 활동한 혁신적인 근대 건축가다. 그의 건축철학은 근대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에 바탕을 뒀다.
당시 비엔나의 건축물들은 화려한 장식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옛날 건축 전통에 얽매여 있었다. 하지만 아돌프 로스는 아주 단순하고 실용적인 건물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당대의 심미적 건축 경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의 정신은 건축평론서 <장식과 죄악>에 집대성된다.
건축은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공
“제가 ‘공간’에 근무할 때 마산성당 건축 설계를 담당했습니다. 그때 한 오스트리아인 신부님의 추천으로 비엔나 유학을 떠날 수 있었죠. 아돌프 로스라는 건축가를 통해 ‘건축으로 시대를 바꿀 수 있구나, 건축으로 혁명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건축일 따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죠. 건축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기에 굳이 분류하자면 인문학의 영역에 속하겠죠.”
1980년대 초 아돌프 로스와의 시대를 건너뛴 만남은 젊은 건축가 승효상의 정신세계에 깊이 스며들었던 모양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가 선언한 ‘빈자의 미학’은 ‘장식은 죄악’이라는 아돌프 로스의 화두와 비슷한 맥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승효상 대표는 지난 9월 서울시 제1호 총괄건축가로 위촉됐다. 총괄건축가는 공공건축, 공공시설, 도시계획, 조경 등 도시 공간환경 전반에 대한 총괄 기획 및 자문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처음으로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보편화된 제도다.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총괄건축가를 두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건축가를 다수 배출한 네덜란드는 ‘국가건축가(State Architect)’라는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 건축의 정체성을 확보해 600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도시환경과 건축물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역사도시의 건축적 정체성이 크게 훼손된 데다, 공공건축·시설이 개별 프로젝트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주변환경과의 부조화를 일으키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시장 직속의 비상근직이다. 임기는 2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주요 역할은 서울시 및 산하기관이 발주하는 건축물과 건축·도시계획·조경·공공디자인 분야 사업에 대한 총괄기획 및 자문, 조율, 협력체계 구축 등이다.
“세계적으로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도시는 25개가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평지에 건설된 도시들입니다. 인구 3500만명의 초거대도시인 중국 충칭(重慶)은 워낙 크다 보니 산, 계곡, 강도 있기는 합니다. 그 충칭을 빼고는 서울이 유일하게 평지가 아닌 곳에 건설된 도시죠. 제가 직업상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을 가봤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현대화 과정에서 서양식 건축 때문에 많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예요. 서양 도시는 평지에 세워져 ‘랜드마크’가 필요하지만, 서울은 주변을 둘러싼 산이 랜드마크 역할을 합니다. 그 때문에 대형 건축물이 오히려 주변환경과 부조화를 이루게 되는 겁니다. 저는 총괄건축가로서 서울만의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비전을 수립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도시계획을 추진할 때 ‘마스터플랜’을 많이 내세웠지만, 나중에 보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사기’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죠. 저는 ‘느슨한 비전’을 세워 ‘수술적 요법’이 아닌 ‘침술적 요법’으로 서울을 변모시켜나갈 계획입니다. 전체를 확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도시환경의 맥락 속에서 개선이 필요한 특정 부분만 조금씩 고쳐나가는 방식이죠.”

서울의 도시 정체성 되찾는 비전 수립
승 대표는 서울의 도시발전 전략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전략이 ‘메가시티(Megacity)’를 표방한 것이라면, 앞으로는 ‘메타시티(Metacity)’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메가시티는 인구 100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메타시티는 무슨 뜻일까. 승 대표는 “내적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라고 말했다. 영어 접두사 메타(Meta)는 ‘더 높은’, ‘초월적인’ 등의 뜻이 있다. 그렇다면 승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메타시티 서울’은 어떤 것일까.
“메가시티는 팽창과 성장을 중심에 두는 도시입니다. 반면 메타시티는 고유한 풍경의 회복, 역사의 회복, 시민들의 삶의 회복을 지향합니다. 구체적 실천 전략으로는 ‘느리게 가기’, ‘관계망 형성하기’, ‘도시 재생’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한강에서 용산공원을 거쳐 남산, 종묘, 창덕궁, 북악산, 삼각산, 나아가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도시 생태축을 형성하려고 합니다. 도심 구간에서는 상가 건물 옥상에 보행로를 설치하고, 그것을 잇는 가교만 몇 군데 설치하면 모두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천천히 서울을 음미하며 거닐 수 있게 되는 거죠.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습니다. 서양의 역사도시들에 가보면 ‘올드시티(Old City)’와 ‘뉴시티(New City)’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하지만 서울은 그게 구분이 안 돼요. 그래서 4대문 안과 밖을 구분하는 도시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옛날처럼 4대문을 연결하는 성벽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은 복원하는 게 바람직해요. 그러면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또 4대문 안은 대중교통과 자전거 외에는 가급적 차량 통행을 억제하는 게 좋겠죠.”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의 삶을 규정한다. 현대의 서울은 속도, 효율, 경쟁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 결과 규모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대도시가 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항상 쫓기듯 숨가쁘게 살아간다. 어찌 보면 참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도시가 서울이다. 승 대표는 새로운 숨결을 서울에 불어넣으려는 청사진을 그렸다. 시민들이 걸어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도시, 걸으면서 느끼고 사색할 수 있는 도시, 그 속에서 삶의 여유와 깊이가 생성되는 도시. 그런 게 바로 ‘메타시티 서울’의 모습이 아닐까.
▒ 승효상 대표는…
1952년생. 75년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졸업, 80~81년 비엔나 공대 수학. 86년 공간 대표, 89년~현재 이로재 대표. 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김수근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 수상. 수졸당, 수백당, 웰콤시티, 대전대학교, 파주출판도시, 휴맥스빌리지, 북경장성호텔, 구덕교회, 조계종 전통불교문화센터, 아부다비 문화지구 전시관, 쿠알라룸푸르 복합빌딩 등 국내외 다수 건축물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