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이태원에서 레스토랑을 하고 있었는데 벽에 걸 그림을 한 장 그려달라고 하더라구요. 제 작품이 워낙 대작이라서 레스토랑에 어울릴지 좀 의아했는데, 어쨌든 몇 장을 그려서 보냈어요. 그게 한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됐네요.(웃음)”
박서경씨는 ‘수팍(SUH PARK)’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9월25일부터 29일까지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에 초대돼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한국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우연(偶然)과도 같은 일이었다.
요리 연구가인 동생 박서란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때가 2009년이었어요. 제가 요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 번은 지인들을 모셔서 저녁식사를 해드렸습니다. 손님 중 한 분이 화랑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언니 그림을 보시더니 ‘국내에서는 못 본 그림’이라면서 당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언니가 ‘블루닷아시아2009’의 초대작가로 작품을 걸게 되면서 한국 무대에 처음 소개된 거죠.”
1980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박서경 작가는 광주아트페어, 2013년 키아프, 2014년 키아프에 참여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는 작년 8만5000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데 이어 올해도 22개 국 186개의 화랑이 참여했고, 총 35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된 바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아트페어인 만큼 국내 대표 갤러리들이 모두 참여했고 데미안 허스트와 피터 짐머만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 판매됐다.

동생 요리 연구소에 걸었던 그림이 계기가 돼 국내 진출
이화여대에서 장식미술학을 전공한 뒤 유학을 떠난 막내 박서옥 패션디자이너는 갭, 랄프로렌, 캘빈 클라인,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박서옥 디자이너와 언니 박서경 화가는 뉴욕 맨해튼에서 바로 길 건너편의 건물에서 마주보며 살고 있다고 한다. 싱글인 두 자매는 “우리 둘 다 개성이 강해서 한 집에 살기는 어렵다”며 웃었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된 그는 ‘한류’를 일으킨 한국의 발전 상황을 바라보며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박서옥 디자이너는 “진작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수출하는 회사를 차릴 걸 그랬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도 삼청동,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지를 둘러봤는데 예술에 대한 대중의 참여도가 아주 높더라구요. 전 세계적으로도 영어, 불어, 독어와 함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고 배우려는 이들이 참 많아요.”
이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박서란 요리 연구가는 “언니의 작품을 들여다 보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로 언니 작품을 구매해서 여러 작품을 소장하는 컬렉터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서란 씨 역시 한국에서 ‘잘 나가는’ 전통요리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20대에는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외국의 맛집을 많이 다녔다는 그는 “우리 남매가 모두 육남매인데 형제자매들이 뉴욕과 시드니에 살고 있고 유럽에 갈 때마다 요리를 접하고 볼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서양 음식문화에 집중했어요.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우리의 전통 한국 음식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재래시장과 시골 장터를 뒤지고 다니며 보물을 찾듯이 식재료를 구하고 사찰음식을 접하고 배우고, 전국 곳곳에서 숨어 있던 음식 장인들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정말 기뻤죠.”
“예술적 DNA,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죠”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미식가였던 아버지는 새로운 맛집이나 레스토랑이 생기면 늘 가족들을 데리고 다녔다. 박서란씨는 “비위가 약하고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였는데 아버지 덕택에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 자매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외국 여행을 함께 간다고 한다. 각자의 관심사에 맞춰 낮에는 패션쇼나 갤러리, 유명한 레스토랑을 다니다가 저녁이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아버지가 서울대 불문과를 나오셨고 기자 생활도 오래 하셨어요. 외국인 회사의 지사장도 하셔서 외국의 여러 문화를 어릴 때부터 많이 접할 수 있었죠. 또 본인이 예술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으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런 분야의 일을 하는 데 굉장히 많은 지원과 응원을 해주셨어요. 예술적인 DNA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아요.”
막내 박서옥 디자이너는 세 자매의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우리 별명이 ‘3종 세트’예요. 언젠가 언니들과 셋이서 각자 분야의 예술을 한데 모은 종합예술을 해보고 싶어요. 둘째 언니는 미술, 셋째 언니는 요리, 저는 패션, 이렇게 각기 분야가 다른 것 같아도 다 통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