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30일, 충남 아산에 있는 현대모비스 아산물류센터. 기아자동차 AS부품을 해외로 보내는 수출 A동에 들어서자 수많은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포장 공정으로 옮겨졌다. 바구니에는 바코드가 부착돼 있어 어떤 부품이 어디로 배송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포장 작업자는 이 바코드를 PDA(개인용 휴대단말기)로 읽고 특별 제작된 커다란 박스에 차곡차곡 포장했다.
이종학 현대모비스 아산물류센터 파트장은 “부품 입고부터 보관, 출고까지 모든 작업을 PDA로 처리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부품의 신속하고 정확한 공급을 위해 첨단물류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부품 재고가 없을 경우 자동적으로 24시간 이내 부품을 공급하는 긴급부품 운송시스템, 수십만 가지의 부품을 최적의 위치에 보관하는 창고최적화시스템이 그것이다.
수출동(棟) 부품 창고는 흡사 창고형 마트인 코스트코를 닮았다. 아파트 3층 높이인 12m까지 부품을 보관할 수 있다. 높은 곳에 부품을 올리고 꺼내는 독특한 모양의 지게차가 눈에 띄었다. 이 지게차의 운전석은 가장 높은 곳의 부품 보관대까지 올라갔다.
2층에 올라서면 빨강, 노랑, 녹색으로 구성된 표시등이 보인다. 아산물류센터가 자랑하는 디지털 피킹 시스템(DPS·Digital Picking System)으로 이 표시장치의 지시에 따라 출고가 진행된다.
모든 부품 선반에는 2개의 표시장치가 설치돼 박스 번호와 부품 수를 보여주는데, 그날 출고해야 할 부품 선반에는 조명이 들어오고 표시장치의 지시에 따라 부품이 출고된다. 예를 들어 ‘2’, ‘40’으로 표시가 되면 2번 박스에서 40개의 부품을 출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입구에 설치된 삼색등은 필요한 작업자 수를 나타낸다. 빨간불이면 3명, 노랑은 2명, 녹색은 1명이 작업하면 충분하다는 의미다. 입·출고가 잦은 부품, 즉 수요가 많은 부품은 작업자가 편안하게 서서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보관된다.
이종학 파트장은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별도의 숙련과정 없이 초보자도 쉽게 작업할 수 있게 됐다”며 “생산성이 30% 이상 향상됐다”고 말했다.
물류센터의 바닥도 특별하다. 무거운 부품을 운반하는 데다 선반과 선반 사이에 공간이 없기 때문에 자칫 바닥이 평평하지 않으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물류센터 바닥은 일반 콘크리트보다 10배 이상 충격에 강한 강섬유강화콘크리트로 시공됐다. 또 마무리 작업은 레이저를 이용해 바닥을 오차 없이 평평하게 했다.
전 세계에서 운행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4976만 대에 달한다. 이렇게 어느 정도 양적 성장을 이룬 현대·기아차는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통한 충성도 향상을 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원활한 AS 순정부품 공급과 신속한 수리다.
순정부품이란 생산과 설계단계에서부터 차량이 최적상태로 운행될 수 있도록 제작된 부품이다. 신차 생산 시 공급되는 부품과 동일하다.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의 순정부품 책임공급업체로서 운전자들이 이들 부품을 빠르게 받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 물류망을 구축하고, 첨단시스템으로 이를 관리·운영하고 있다.
부품 공급 차종은 196개 모델, 품목 수는 201만 개에 달한다. 이 중 양산 차종은 78개(40%), 단산(斷産) 차종은 118개(60%)를 차지한다. 단산 차종의 부품 재고량만 해도 금액으로 따지면 약 2000억원에 달한다. 단산 차종의 부품 가운데 고객의 수요가 거의 없는 부품은 연간 단위로 부품의 소요량을 예상해 미리 만들어 둔다. 부품 조달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현대모비스는 국내에 물류 허브 역할을 하는 4개의 대형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이곳에서 권역별 물동량을 모은 후 일괄분류작업을 거쳐 전국 23개 부품사업장과 43개 정비파트로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해외에도 51개의 직영 부품창고를 두고 있다.
4개의 물류센터 중 가장 큰 규모와 최신 설비를 갖춘 곳이 현대모비스 아산물류센터다. 2004년 7월 문을 연 아산물류센터는 2만2000㎡(7만3000평) 부지에 국내동 3개, 수출동 3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 현대·기아차 국내 보수용 부품을 75개 사업소에, 기아차의 AS 보수용 부품을 해외 201개 국가에 각각 공급하고 있다.
전국 216개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은 부품들은 아산물류센터에서 분류작업을 거친 뒤 국내외 121개 직영 거점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거나 내수용으로 공급된다.
이 센터의 하루 물동량은 9.5톤 트럭 기준으로 수출 120대, 국내 180대 등 300대 수준이다. 저장된 물품 종류도 다양해 수출용 20만9000개, 국내용 13만7000개 등 34만6000개 품목에 이른다. 신차가 출시되면 이곳에는 수천~수만 개에 달하는 품목이 추가된다.
이 파트장은 “자동차는 2만 개의 부품이 맞물린 기계장치이기 때문에 고장이 났을 때 순정부품으로 교환하는 것이 안전하다”며 “현대기아차를 타는 운전자들이 안심하고 차량을 몰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게 순정부품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종차 부품 위탁·생산하는 현대파텍스
연식이 오래된 차의 운전자들은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부품이 없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이런 걱정은 접어도 좋다.
현대모비스는 법규에 따라 단종 후에도 8년간 책임지고 부품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단종 후 10년 이상 된 차량의 부품도 보유하고 있다.
다만 부피가 크고, 쉽게 녹이 슬 수 있는 패널(외부 철판) 등의 큰 부품은 재고로 보유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제작을 해야 한다. 이렇게 현대·기아차의 단산 차종의 패널 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현대파텍스다.
아산물류센터에서 버스로 1시간 달려 도착한 충남 서산시 소재 현대파텍스.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3개사가 100% 출자해 2007년 설립했다. 이 업체는 현대·기아차 단종 모델의 패널 부품을 책임지고 공급하고 있다. 흔히 ‘각그랜저’로 불리는 그랜저 초기 모델은 물론 30년 이상 된 포니의 부품도 창고에 보관돼 있다.
생산현장은 프레스라인과 차체 조립라인, 도·포장라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공장 안은 이른바 ‘금형’(차체의 금속 틀) 천지였다. 이곳에 보관된 금형은 4800여 개에 달한다. 비닐로 포장해 야외에서 보관된 금형이 생산에 투입될 경우 세척과 점검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손상된 부분이 발견되면 보수작업을 진행한다. 김진원 현대파텍스 경영지원실장은 “부품 생산에는 금형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곳이 품질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프레스 라인에 들어서자 “쿵쾅~ 쿵광” 하는 소리가 끊임없다. 옆 사람의 웬만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로봇이 철판을 금형으로 옮기자, 밋밋한 철판은 몇 단계의 프레스 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은색 자동차 문짝과 후드 등으로 변신했다.
차체 조립라인은 연 100만 개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다양한 차종 생산에 대응할 수 있고, 품질관리를 위해 기계와 사람이 이중으로 점검한다. 도·포장라인에서는 앞선 두 공정이 마무리된 제품에 색을 입히고, 포장하는 과정이 이뤄진다. 330m 길이의 이 설비에선 도장에서부터 포장에 이르는 공정이 2시간 넘게 진행된다.
신모델 출시로 단종된 현대·기아차 모델의 금형은 전량 현대파텍스로 모두 이전된다. 김진원 실장은 “현대·기아차의 AS부품을 위탁받아 금형 부품을 다품종 소량 생산하고 있다”며 “구형 제네시스 금형도 넘어왔고 조만간 쏘렌토R 부품도 이관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매번 단산부품을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대량생산과는 달리 소량생산만 할 경우 자동차 문짝 하나의 생산원가만 100만원이 훌쩍 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효율적인 생산체제 구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현대파텍스는 대형 프레스 라인 4개와 로봇 16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연속 컨베이어 방식의 도·포장 라인을 갖춘 일괄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제조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을 꾀하기 위한 조치다.
현대·기아차 및 현대모비스의 전산시스템과 연계된 시스템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현대파텍스는 해당 차종의 금형틀을 찾아 라인에 올린다. 한 개의 라인에서 ‘프레스-차체조립-도장-포장’의 전 과정을 거친 후 현대모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김진원 실장은 “현대파텍스는 AS부품 전용 생산라인 구축을 통해 현대기아차가 신차 개발과 양산차 생산에 집중하게 함은 물론 고객의 수요를 신속히 파악하고 필요한 부품을 생산함으로써 고객들이 안심하고 고령 차종을 운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오는 2017년까지 현대·기아차의 전 세계 운행 대수가 6400만 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윤경 현대모비스 홍보실 상무는 “글로벌 시장에 현대·기아차가 늘어날수록 아산물류센터와 현대파텍스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