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우리나라는 미국의 협상전략에 말려 우리 주장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2차 협상이 재개된 2006년 7월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 대표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왼쪽)과 김종훈 한국대표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협상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의 협상 테이블.
(상) 우리나라는 미국의 협상전략에 말려 우리 주장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2차 협상이 재개된 2006년 7월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 대표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왼쪽)과 김종훈 한국대표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협상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의 협상 테이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11월10일 타결됐다. 이로써 우리나라와 FTA를 맺은 나라는 현재 중국을 포함 미국, EU, 칠레, 싱가포르, EFTA, ASEAN, 인도, 페루, 터키 등 47개국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 발표대로라면 기쁘고 경사스러워야 할 FTA 타결  소식이, 언제부터인지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해 온 것이 대한민국의 FTA 협상 역사다. 말 많고 탈 많았던 한·미 FTA, 한·EU FTA의 내용에 대한 갑론을박은 적지 않게 이뤄져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여러 논평과 분석 가운데 아직까지 FTA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전략·전술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지난 과거사가 됐지만, 그러기에 어쩌면 속 편하게, 한·미 FTA 협상을 협상전략 분석이란 관점에서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의 상대였던 미국 측의 협상을 분석해 봄으로써, 역으로 우리나라의 국제협상 역량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❶ 미국의 협상 와해전술 :
협상의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하라

한·미 FTA 협상에 반대의 입장에 있던 국회의원들과 반대 여론을 형성했던 언론의 개입을 우리 정부 스스로가 발벗고나서 원천 봉쇄했다. 이에 따라 대다수 국민과 언론뿐 아니라, 한·미 FTA를 최종 비준·승인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조차 미국이 도대체 무슨 협상안을 갖고 나왔는지, 우리 정부의 대안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가운데 협정안이 타결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측은 미국 무역부가 설정한 기간 내에 타결되지 않으면 한국과의 FTA 협상은 무조건 무산될 것임을 협상 전부터 명백히 밝혔다. 그리고 한·미 FTA 타결을 현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려고 작정한 우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전술을 펼쳤다. 또 한국 내 FTA 반대 여론을 지적하며, 거리에서 그리고 언론을 통해 나타나는 한국민의 FTA 반대 정서와 국회 내의 반대 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측은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시아 지역 내 최초의 FTA 협상 타결국은 한국이 아닌 제3국이 될 수도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밝혔다. FTA 협상 자체 무산이라는 위협 아닌 위협을 공공연히 내비쳐 우리 정부의 숨통을 강하게 조여 왔다.
국가 간 통상 협정 문제는 주권국가의 입법기관으로서 당연히 행사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협상 시한 연장을 거쳐 실무 협상 타결 발표가 날 때까지 한·미 FTA를 비준·승인할 국회는 법안 협상안 내용과 미국 측이 제시한 협상안 내용을 사전에 검토할 기회조차 없었다. 전략적 협상 측면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우리나라 FTA 협상팀은 대한민국 국민과 언론, 그리고 국회를 매몰차게 버리고, 어떻게든 한·미 FTA를 성사시키겠다고 우리 국민과 국회를 외면하고 협상장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으로선 최대 견제세력이자 걸림돌이었던 국민과 언론, 국회를 우리 정부가 제거한 셈이다. 협상 시작에 급급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에 힘입어 미국이 원하고 구상한 대로 FTA 체결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에 이 르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미국 정부와 협상팀은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겠는가.
이렇게 미국은 우리 정부의 경제 실책과 정권 말기 치적 쌓기를 지렛대 삼아, 한·미 FTA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반대 여론과 국회를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제거하는, 초기 협상전략의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협상이 미국 주도로 전개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행정부와 의회, 기업과 언론 간의 밀접한 정보 교류와 상호 간 완벽한 공조관계를 더욱 확고히 했다. 미국 의회는 겉으로는 한국과의 FTA 협상에 있어서의 미국 정부의 협상안에 강한 불만을 피력했고, 미국 협상팀은 이를 한국 측을 압박하는 데 적절히 이용했다. 언론 역시 정부와의 치밀한 협상 시나리오 공유와 협조를 통해 자칫 저지를 수 있는 정보 유출을 엄격히 차단하고 미국 측 협상단에 힘을 실었다. 한국 측 협상단을 압박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여론 형성에 최대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미국은 정부 주도하에 정부, 기업, 언론, 민간이 똘똘 뭉쳐 FTA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미국의 지능적인 분열 간계에 말려, 뭉쳐도 미국에 비해 가뜩이나 취약한 기존 협상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한 것이다. 정상적인 협상 진행 자체가 불가능한 가운데 정부 단독의 절름발이 협상을 시작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 반대의 입장에 있던 국회의원들과 반대 여론을 형성했던 언론의 개입을 스스로 원천 봉쇄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 반대의 입장에 있던 국회의원들과 반대 여론을 형성했던 언론의 개입을 스스로 원천 봉쇄했다.

❷ 협상 어젠다 전략 :
나에게 유리한 내용은 넣고 불리한 내용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당초 빼라

자국민과 국민들의 지탄과 분노를 무릅쓰고, 투항이나 다름없는 수용적 태도로 전향한 한국정부와 FTA 협상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와 FTA 협상팀의 따뜻한 환대나 위로가 아니었다. 이미 잡아 놓은 고기에게 미끼를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기선을 제압했다고 판단한 미국 협상팀은 이제 본격적인 협상 주도권 확보 전략에 돌입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협상안의 범위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게 설정하는 ‘유리한 어젠다 수립전략’이다. 미국 측은 FTA 실무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FTA 본 협상에서 다뤄질 협상안 구성 및 양측의 각 사안별 기본 입장을 정리하는 단계에서부터 강도 높은 압박과 협의 불가 전술을 구사했다. 전형적인 기선 제압(Power Breaking) 전술과 강한 못박기(Anchoring) 전술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의안 구성 합의 도출에 성공해 애당초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확실히 차지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즉,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한국 측에 불리하거나 부당한 내용을 담고 있던 통상법규나 특허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법률 등을 개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협상 사안으로 불가하다고 딱 잘랐다. 또 의회와 미국민의 반발이 극심하다며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등 ‘불가’와 ‘부적절’ 표현을 반복하면서 우리 측이 의당 요구할 수 있는 협의 사안조차 상당 부분 협상 사안 목록에도 올리지 못하게 저지하거나 축소·변경하는 등의 저지전략을 펼쳤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미국 측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법적 안전장치가 한·미 FTA 협정문 곳곳에 명문화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들 조항들에 대해서는 협상 기간 내내 한국 측 협상팀의 반발이 없었으며 이에 따라 당초 미국 측 제안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미국 측은 애당초 FTA 협상 의제로선 부적합한 소고기와 주요 농산물에 대한 무조건적 수입 개방을 요구하는 협상안을 포함시켜야 한다며 강하게 우리를 압박했다. 특히 소고기 시장 개방 문제에서는 양측 간에 상당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양상을 보였다. 우리 국민들과 언론들이 상당히 거센 반발을 보이는 가운데 협상 초기에 의제에서 일단은 제외되는 듯 했다. 하지만 협상 말기에 미국 측이 다시 이를 거론하고 나오는 등 지속적으로 우리 측의 신경을 건드리는 의제 아닌 의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측의 계산된 기만술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우리 측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미끼형 의제를 거론함으로써 우리 측의 관심을 유도한 후 자신들이 정말로 목표로 한 의제들과 조건들을 맞거래하는 타협 형식으로 의제에 상정시키는 전술을 전개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란용 기만의제(Bogus issue)에 현혹돼 우리 측이 이 문제의 해결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 측이 제시한 방대하고 난해한 협상 자료와 문건을 상세히 분석할 시간을 놓치게 됐다. 엄청난 규모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미국 협상팀에 비해 원초적으로 열세였다. 결국 미국 측이 협정문 제안서 여기저기 치밀하게 숨겨둔 함정 문구를 제대로 색출하지도 못했다. 발견했다 하더라도 시간에 쫓겨 정밀하게 반박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특히, 농축산물 미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정부와 한국 언론의 대응에 재미 붙인 미국은 협상 막바지에 한 번 더 농축산물 수입 개방 문제를 들고 나와 우리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후 2007년 4월 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후 2007년 4월 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❸ 미국의 교란전략(Red Herring)에 말려든 한국

어젠다 전술은 미국의 대표적 협상전략인 교란책을 전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우선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의 실제 핵심 협상 사안은 무엇이었을까.
왜 미국이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하려 했는지 알아보자. 이유는 바로 한·미 FTA를 통해 자국에 유리한 규제와 제도의 틀 속에 한국을 끼워 맞춰 자국의 막대한 통상경제 패권 장악의 기초를 확실히 닦아 놓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통상경제 패권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해외 투자금융 파워, 그리고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 등 첨단 기술 관련 특허권을 바탕으로 한 미래 유·무형의 기술자본 산업이다.

그에 반해 한국의 경제성장의 원천은 대체로 상품 수출에 있다. 우리가 주력 수출 상품인 자동차, 전자 제품 등 공산품의 관세 인하와 미국의 무역 규제 완화에 목숨 걸고 협상에 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 정부 협상팀 최대의 공적이자 미국이 대단한 선심이나 쓰는 양 합의한 자동차 등 주요 공산품에 대한 상호 수입관세 철폐 합의는 미국으로선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에 덕이 되는 사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 기업의 제품 및 기술 경쟁력이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등 신흥국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할 경우엔 국내 제조산업의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미국은 기술집약적 미래 첨단산업, 예를 들어 바이오·에너지·첨단기술집약산업 등 미래의 황금알을 낳는 분야에서 상당 부분의 원천 기술과 특허권을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중이었다. 오히려 한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억제하는 동시에 이중삼중의 다각적인 법률적 규제와 제한 조항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명문화해 미국 기업의 기술 우위 유지의 발판을 확고히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 측은 자국의 해외시장에 대한 전략 산업인 금융 투자, 특허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 부문, 통상 및 무역 규제 부문 등에서는 협상 자체를 회피하는 억지 전략을 구사하며 한국 정부의 협상 의지를 꺾고 완벽히 지켜냈다.
우리나라의 국내법과 제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실질적 핵심 전략 사안들을 논의조차 못한 것이다. 또 미국으로선 우리나라와 무역 분규가 발생할 때마다 자국에 유리한 법 해석과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대한민국 최대의 관심사였던 수입관세 철폐란 유도 의제와 농축산물 개방이란 기만의제(Bogus Issue)를 적극 활용해 자신들의 목표였던 투자법, 무역 구제 및 특허 관련 내용을 손쉽게 맞바꾼 완벽한 교란책을 구사했다. 아직도 자신들의 교란책을 한국 측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고기를 비롯한 농축산물 개방 문제 논의 본격화와 자동차 관세 철폐 합의 재협상 등으로 우리 정부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협상전략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 측 교란전략의 완벽한 한판승이다.

한·중 FTA 내용도 제대로 확인 안 돼
미국이 구사한 한국 협상팀 와해전략, 의제를 재구성하는 전략, 기만술을 이용한 교란전략은 한·미 FTA 협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EU FTA 협상 초기 우리 측 협상팀장의 갑작스런 교체 후에 비공개로 진행되다 막판 일괄 타결된 것 역시 찜찜하다. 한·중 FTA 협상이 타결됐다고 하는데, 아직 무슨 내용이 어떻게 협의됐는지 내용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 의회라면, EU 의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한국뉴욕주립대 협상학 겸임교수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MBA를 졸업한 후 CJ미디어 국제협상 담당 상무를 지냈다.
그는 한국뉴욕주립대에서 협상학을 가르치고 있다. <영화는 협상처럼 협상은 영화처럼>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