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너스추즈는 기부 받은 물품을 기부자가 온라인상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 미국 내 기부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부 받은 물품에 감사를 표시하는 미국의 한 공립학교 학생들.
- 도너스추즈는 기부 받은 물품을 기부자가 온라인상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 미국 내 기부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부 받은 물품에 감사를 표시하는 미국의 한 공립학교 학생들.

보슬비가 내리던 지난 2000년 1월, 찰스 베스트(Charles Best)라는 한 젊은이는 동이 트기 전 뉴욕 브롱크스(Bronx)의 한 공립 고등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그가 꿈에 그리던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날이다. 오늘부터 이 학교에서 역사(History)를 가르치는 베스트는 출근 전 이른 아침, 인쇄 전문 업체 킨코스(Kinko's) 매장에 들러 학생들에게 가르칠 미국 고전 소설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의 한 부분을 복사했다. 그러나 ‘멋진 선생님이 되겠다’는 그의 꿈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근무한 브롱크스 공립 고등학교는 미국 중산층 자녀들이 다니는 교육 시설이었지만, 미국 내 모든 공립학교처럼 시설이 낙후돼 있었다. 당시 풍경은 뉴욕 맨해튼에서 자라나, 미국 명문 세인트폴 보딩스쿨(St. Paul Boarding School)과 예일대를 졸업한 찰스 베스트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그냥 꾹 참고 교사로서의 삶을 만족했다면, 그는 그저 그런 일반 선생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스트는 ‘누군가 해줄 수 없다면 우리(교사)라도 나서서 교육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동료 교사들과 공공교육 기부 사이트를 개설했다. 미국 최대 교육 기부 비영리 기업 도너스추즈(www.donorschoose.org)는 이렇게 탄생했다. 찰스 베스트가 사이트를 개설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 무렵이다.


공립학교 교사 출신 찰스 베스트가 설립
도너스추즈닷오알지(이하 도너스추즈)의 정체성은 사명(社名)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기부자들’을 뜻하는 도너스(Donors)와 ‘선택하다’라는 뜻의 동사 추즈(Choose)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기부자들이 기부 대상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식 명칭에는 공공성(公共性)을 강조한다는 뜻으로 닷오알지(.org)가 따라 붙는다. 비영리(非營利)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찰스 베스트가 동료 교사들과 함께 기부 장려 사이트를 개설한 목적은 분명했다. 주(州) 정부나 연방정부 도움을 기다리기에는 교육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다. 처음에는 자신의 사비(私費)를 털어 교육 기자재를 구입했지만, 나빠진 교육환경을 개인 혼자의 힘으로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웹사이트를 만들고, 교사가 수업 진행에 필요한 기자재를 올리면, 후원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식으로 소액의 후원금을 내 해당 물품을 구입해주는 방식을 이용했다. 동료 교사 12명과 함께 그가 도너스추즈를 설립했을 때 내건 캐치프레이즈도 ‘누구든지 5달러만 내면 자선사업가(Philanthropist)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도너스추즈는 오늘날 스타트업(Start-up)기업이나 소셜벤처 기업들을 후원하는 데 많이 사용되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의 원조 격이나 다름이 없다.

도너스추즈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2003년부터다. 미국 토크쇼 여제(女帝) 오프라 윈프리가 ‘오프라 윈프리쇼’에 찰스 베스트를 초청하면서 도너스추즈는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에서 도너스추즈를 가리켜 ‘혁명적인 기부’(Revolutionary Charity)라고 말한 지 15분 후 도너스추즈 사이트는 네티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하루 만에 250만 달러 기부자를 모으는 쾌거를 이뤘다.

미국 사회에서 도너스추즈는 기부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대표 사례로 꼽힌다. <포춘>, <패스트컴퍼니>, <뉴스위크>는 앞다퉈 도너스추즈를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선 기부 대상이 공교육 회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아진 돈은 전액 무너진 미국 공교육을 회복하는 데 쓰인다. 웹사이트에 들어오면 미국 전역에서 온 교사들의 딱한 글이 올라와 있다. ‘수업시간에 3D컴퓨터를 쓰고 싶은데 구입할 돈이 없으니 도와 달라’는 식이다. 이러한 모금 프로젝트만 해도 수십 건이다. 그러면 기부자는 이 중 한 프로젝트를 선택해 돈을 보내면 된다. 도너스추즈는 이렇게 모인 돈으로 해당 교육기관에서 필요한 물품을 대신 구입해 보내준다. 이 때 특이한 것은 해당 교육기관이 요청한 물건 안에 1회용 카메라를 함께 동봉한다는 점이다. 물품을 받은 교육기관은 도너스추즈가 함께 보낸 1회용 카메라로 물품을 유용하게 쓰는 장면으로 찍어 사이트에 올리면 모든 절차는 끝난다. 도너스추즈가 다른 기부단체와 다른 점은 ‘내가 보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인터넷 상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말 현재 후원자로 활동하는 사람만 155만8833명이며 기부금을 전달받은 교사만 20만9011명, 수혜 학생 수는 1306만3333명이다. 지난해 전 세계로부터 기부받은 금액은 5800만달러로 한 해 전보다 25%나 늘어났다. 이 돈으로 도너스추즈는 9만여개 프로젝트에 후원했다. 


빌 게이츠 등 미국 내 부호들이 기부자로 적극 나서
기부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너스추즈는 최근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경영자라면 필수적으로 회원에 가입하는 사이트가 됐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부인 멜린다 게이츠가 적극적인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도 도너스추즈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 설립자 피에르 오미디아르와 야휴 공동 설립자 데이비드 필로, 넷플릭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도 도너스추즈의 적극적인 투자자이자 후원자다.

도너스추즈는 최근 후원 방식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유명 스타 벤처기업인의 도움을 받아 이제 막 창업에 도전한 스타트업 기업에게 기업가 정신을 배양시키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구글로부터는 크롬 운영체계(OS)가 깔린 노트북 ‘크롬북’을 100만달러 어치 기부 받았다. MS를 공동 창업한 폴 앨런은 최근 저가형 수중 로봇을 활용해 도너스추즈 회원들을 상대로 지리교육에 나서고 있다. 메이커봇(MakerBot)을 설립한 프레 페티스는 3D컴퓨터 5000대를 도너스추즈에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는 자사 매장에서 와이파이(Wi-Fi)를 사용하는 고객이 쉽게 도서 기부에 나서도록 홈페이지 첫 화면을 도너스추즈와 연결해 운영했다. ‘도너스추즈 달러’라는 가상화폐를 발행해 후원받은 교육기관이 제휴업체에서 물건을 마음대로 살 수 있도록 한 것도 작년에 시작했다. 한발 더 나아가 도너스추즈는 최근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채용했다. 찰스 베스트가 데이터 분석가에 의뢰한 것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회원들에게 최근 바뀌고 있는 기부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를 인포그래픽(Infographic) 형식으로 일목요연하게 디자인하되 요청자와 후원자 간 나눈 대화 내용이 빅데이터화되는 방식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다. 

찰스 베스트는 최근 <패스트컴퍼니>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우리의 시도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사이트에 가입하신 선생님들의 바람도 그렇죠. 우리 선생님들은 충분히 열정적인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두고 보세요. 그들(교사들)은 지금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