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도곡로에 위치한 다이소아성산업(이하 다이소) 본사 사옥의 박정부 회장 집무실에서는 한 가지 특이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박 회장의 책상에 나란히 놓여 있는 5개의 탁상용 달력이 바로 그것이다. 대개의 직장인들은 책상에 탁상용 달력 한두 개 정도는 올려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 회장은 5개씩이나 달력을 비치해뒀다. 일단 범상치 않아 보인다. 무슨 까닭일까.
지난 12월10일 오후 집무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 달력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운을 뗐다. “2년 전쯤부터 저렇게 5개의 달력을 책상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맨 앞 1개는 지난 달을 펼쳐놓았고요. 그 다음 2개는 이번 달입니다. 그중 한 개는 한국 달력, 다른 한 개는 일본 달력이에요. 주요 거래처가 일본에 있다 보니 그쪽 일정들을 살펴보기 위해서죠. 나머지 2개는 향후 두 달치를 펼쳐놓았습니다. 지난 과거를 반추하면서 현재에 충실을 기하고, 미래는 더욱 미리미리 준비하려고 하다 보니 저렇게 됐네요.(웃음) 저희 다이소는 새로 출시할 상품을 보통 1년 전부터 기획합니다. 제품 생산 및 출고는 3~6개월 정도 걸리죠. 수많은 상품을 기획하고 출고하려면 얼마나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렇게 일에 몰두하다 보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나이도 잊어버리게 됩디다. 계절이 바뀐 것도 뒤늦게 느낀 적이 많아요.”
다이소 1호점은 1997년 5월 서울 천호동에서 문을 열었다. 당시 상호는 ‘아스코이븐프라자(회사명은 아성산업)’였다. 아스코이븐프라자는 이듬해 ‘한국 프랜차이즈 대상’을 수상할 만큼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 시절은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때다. 전무후무한 ‘경제 국난(國難)’을 당한 우리 국민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어지간하면 지갑도 꺼내지 않았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것이다. 하지만 아스코이븐프라자에게는 외환위기가 오히려 도약의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품질 좋은 제품을 1000원짜리 한두 장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매력을 앞세워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박 회장은 사업이 성장세를 이어가던 2001년 한 가지 중대 결단을 내렸다. 일본 최대 균일가 제품 유통업체 다이소(大創)산업의 지분 투자를 받으면서 회사명을 다이소아성산업으로 변경하는 한편 매장 브랜드도 다이소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 다이소 로고를 큐브 형태로 만든 상징물에 손을 얹고 활짝 웃는 박정부 다이소 회장.
외환위기 때 ‘1000원숍’ 명성 쌓기 시작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박 회장은 1988년 ‘한일맨파워’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처음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일맨파워는 당초 국내 기업체 임직원들의 일본 연수 및 세미나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다가 일본 다이소산업에 생활용품을 독점 공급하는 협력업체가 됐다. 이런 사업상의 파트너십을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다이소산업의 지분 투자와 브랜드 공유가 성사된 것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서로 독립적인 경영을 하는 완전히 별개의 기업이다. 아직도 다이소를 일본 기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박 회장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미 다이소가 국내 균일가 생활용품 유통산업의 확고부동한 넘버원 브랜드가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한 브랜드를 굳이 바꿀 필요도 없다는 판단이다.
“일본 다이소산업은 한일맨파워와의 협력관계를 더욱 다지고 싶어 지분 투자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본 다이소산업 회장이 오히려 한국 다이소를 부러워하고 있어요. 일본 다이소는 성장 정체에 빠져 있는 반면 한국 다이소는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죠.(웃음)”
2008년 매출액 2000억원 돌파, 2009년 매출액 3000억원 돌파, 2010년 매출액 4000억원 돌파, (중략) 2014년 12월17일 오후 7시 매출 1조원 돌파. 다이소의 매출액은 해마다 일반적인 상식을 ‘돌파’하면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률이 30~40%를 넘나들었다. 2014년 매출액 성장률도 19%에 달했다. 이전보다 성장률이 좀 낮아졌지만 결코 부정적 시그널은 아니다. 2013년까지는 신규 출점 확대가 다이소의 외형 성장에 기여한 바가 컸다. 하지만 2014년에는 외형을 키우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수익성이 좋지 않은 직영매장 27개를 정리하고 100평 안팎의 작은 매장은 규모를 키워 전체 매장의 효율을 제고했다”며 “이런 매장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19% 성장한 것은 내실이 좋아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다이소의 매출액 1조원 돌파는 큰 의미가 있다. 작은 동네 매장 한 곳에서 시작해 17년 만에 대기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1조 클럽’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신화 창조’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박 회장의 곁을 20년 이상 지켜온 안웅걸 다이소 이사는 “국내 대규모 유통업체는 거의 모두 대기업이 출자한 계열사로, 자본이나 인력 면에서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왔다”며 “반면 다이소는 맨주먹으로 시작해 매출액 1조원의 대기업이 됐다는 점에서 다른 유통 대기업과는 차별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2014년 5월 다이소 본사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우리나라 무역진흥의 선봉장 역할을 하는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일행이었다. 한덕수 회장은 다이소 관계자들의 사업 현황 설명을 찬찬히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이소는 미국 하버드대 MBA 과정에서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기업 사례 연구)’ 사례로 다뤄야 할 만한 비즈니스 성공 모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4년 다이소는 제19회 ‘대한민국 유통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유통대상은 유통산업 발전에 공로가 큰 기업에게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다이소는 업태별로는 ‘대규모형 점포’, 부문별로는 ‘창조경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특히 다이소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쟁쟁한 대형 유통업체를 비롯해 본선에 오른 50여개 기업 중에서 ‘창조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매출 1조원 돌파와 함께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유통대상’ 대통령상 수상
박정부 회장의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1호점을 개점한 후 지난 17년간 좋은 공간이 있으면 매장을 열고, 팔릴 만한 상품이 있으면 개발을 하면서 앞만 보고 뛰어왔습니다. 매장과 상품은 갈고 닦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요. 여기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비용 효율화도 항상 고민하는 대목입니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려면 결국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거든요. 원가 절감, 물류 개선, 매장 효율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요컨대 매장 출점, 상품 개발, 비용 효율화가 저의 3대 경영 화두라고 할 수 있죠.”
다이소가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은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딱 6가지다. 1000원짜리 상품이 전체의 51%, 2000원짜리 상품이 전체의 31%를 차지한다. 판매가격 1000~2000원의 저렴한 상품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면봉, 종이컵, 물병, 주방장갑 등 100여개의 생활필수품은 10년이 넘도록 가격 1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색안경을 써서는 안 된다. ‘가격 대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상품을 제공한다’는 게 다이소의 정체성이자 슬로건이다. 실제 다이소 매장을 자주 찾는 단골 고객들은 대부분 만족감을 나타낸다.
“다이소를 즐겨 찾는 손님들은 다이소를 너무 좋아하십니다. 우리 제품을 보면 ‘이걸 어떻게 1000원에 팔 수 있지!’ 하는 놀라움과 함께 쇼핑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거든요. 다이소는 ‘생활의 즐거움’, ‘생활문화 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기도 합니다.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아 항상 찾아가고 싶은 매장이 되자는 겁니다. 그런데 고객이 불량품을 사게 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당연히 ‘아, 이러니까 싸지’ 하는 실망감이 들겠죠. 고객들이 그런 인식을 갖는다면 우리에게는 치명타가 됩니다. 저희가 납품업체들에게 철저한 품질관리를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만약 매장을 방문한 고객께서 불량품을 신고하면 즉시 교환이나 환불을 해드립니다. 품질에 관한 한 사후관리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이소가 1000~2000원대 가격에 품질 좋은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원가 및 품질 경쟁력이 가장 높은 생산업체를 찾아 상품을 조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이소의 협력업체는 세계 28개국에 걸쳐 1800여개사에 달한다. 가장 저렴한 가격에 가장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있다면 지구촌 어디라도 달려가는 박정부 회장 특유의 상품 소싱(Sourcing: 조달) 전략에서 비롯된 결과다.
다이소의 가격 책정 방식이 여느 기업들과 정반대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제품 원가에 일정한 이윤을 붙여 소비자 가격을 정한다. 하지만 다이소는 먼저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 다음, 그 가격을 구현하기 위해 제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낸다. 원체 소비자 가격을 싸게 정하기 때문에 이윤을 많이 낼 수도 없는 구조다. 그간 다이소의 영업이익률은 1% 언저리를 유지해왔다. 전형적인 박리다매형 사업인 셈이다. 하지만 점차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 물류 자동화, 매장 효율화 등 혁신활동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된 결과다. 전국 매장이 1000개에 육박하면서 ‘규모의 경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박 회장의 말이다. “이전에는 영업이익률이 1~2%선이었지만 2014년에는 형편이 좀 나아졌습니다. 매장이 1000개 가까이 구축되고 물류 시스템도 개선되는 등 사업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갖춰진 덕분이죠. 전반적인 경영 효율성 제고로 이제 영업이익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단위 매장당 수익성을 높이는 신사업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커피 판매, 택배 서비스, 휴대전화 판매 대행 등이 그런 예죠. 전국적으로 1000개에 달하는 점포망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휴대전화 판매 대행 사업은 지금 10개 매장에서 시험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가격 책정과 상품 공급에 숨은 성공 노하우
다이소는 2014년 말 기준 전국에 걸쳐 97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이소를 찾는 고객은 하루 평균 무려 50만명에 육박한다. 2009년 16만여명에서 5년 만에 3배로 증가했다. 방문 고객의 96%가 제품을 구매하고 구매 고객의 85%가 재구매할 정도로 고객 만족도가 높은 것이 원동력이다. 물론 점포망 확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객 접근성을 높여온 것도 방문 고객 증대에 기여했다.
현재 다이소가 전국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품목은 무려 3만여가지에 달한다. 게다가 매달 500~600여개의 신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엄청난 속도의 상품 기획 및 공급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이 하나 있다. 박 회장이 그 많은 제품들을 거의 대부분 머릿속에 ‘입력’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획, 디자인, 생산, 출고에 이르는 전체 상품 사이클을 직접 치밀하게 챙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에 미치거나 혼을 바치는 장인(匠人)만이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박정부 회장은 철두철미한 ‘현장중심주의’ 경영자이기도 하다. 다이소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은 바로 매장이다. 고객과 직접 만나는 최종적인 접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매장 분위기 연출이나 상품 진열, 매장 직원의 고객 응대를 극히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600여개 직영매장 점장을 모두 소집합니다. 그 자리에서 항상 강조하는 게 ‘현장을 철저히 챙겨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현장’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저는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이소 매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봐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근처에 다이소 매장이 있으면 잠깐 들르기도 하죠. 물론 매장 직원들은 피곤해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제가 방문하는 것을 원하는 직원들도 많아요. 지적을 받든 칭찬을 듣든, ‘회장’과의 만남 이후에는 매장이 더 개선되기 때문이죠. 저는 상품 진열, 매장 연출, 고객 응대 상태가 망가진 매장에 들르게 되면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며칠 뒤에는 얼마나 상태가 개선됐는지를 보기 위해 반드시 그곳에 다시 가봅니다.”
기업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이다. 당연히 모든 기업가는 더욱 많은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한다. 소위 ‘돈 되는’ 사업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게 일반적인 기업가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영업이익률이 극히 낮은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워 지금까지 다이소를 키워온 박정부 회장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저라고 왜 수익에 관심이 없겠습니까. 다이소 외에 수익성이 좋은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신사업을 구상하다가도 다이소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다이소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장사는 이윤을 내야 합니다. 지금껏 이윤을 포기한 적은 없어요. 다만 남들처럼 이윤을 낼 수 있는 사업구조가 아니었던 거죠. 이제는 비용 최소화와 효율 최대화를 바탕으로 이윤을 낼 겁니다. 그렇다고 ‘고객가치 창출’이라는 다이소의 핵심 원칙을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박정부 회장은…
1944년생. 73년 한양대 공업경영학과 졸업. 73~88년 풍우실업, 88년 한일맨파워 설립, 92년 다이소아성산업 설립, 2006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2006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2010년~ 대한상공회의소 유통위원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