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 라틴어 법언(法諺)을 우리는 대부분 로마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사실 그 어원은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집트 신화의 판정의 여신 네이트가 ‘오리시스의 아들 호리스가 왕위를 계승하지 않으면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라고 한 말을 로마인들이 차용한 것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1호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그보다 1000년 먼저 세워진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과 닮아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장엄한 134개의 열주(列柱, colonnade)로 된 카르낙 신전의 장대함과 완벽한 예술성, 정교함에 비하면 파르테논 신전은 왜소하고 초라하다. 신화의 역사를 보면 이집트의 많은 신들이 이름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어 그리스와 로마의 신으로 둔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의 여신 하토르는 아프로디테가 되고,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네이트 여신은 그리스로 가서 아테나 여신이 되었고 다시 성모 마리아로 되살아난다. 이집트 신화의 아누트와 바타 형제의 이야기는 구약(舊約)에 나오는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와 닮아 있다. 미라와 파라오의 부활사상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를 거쳐 기독교 부활사상의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를 그리스·로마 문명에 두고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감을 지니고 있는 서구인들은 유색인종이 이룩한 문명의 성과를 애써 외면하면서 검은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오리엔트 문명과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단절되거나 하나의 관점으로 의도적으로 정리될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이집트 고대 역사의 현장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현장에 서니 “5000년 전 고대 문명에서 인간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뿐이다”라고 고백했던 어느 고고학자의 외침이 가슴에 울려왔다. 그 5000년 문명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은 아득하고 외로웠다. 그리고 그 현장의 현실은 기대감을 상쇄시키면서 때로는 암울할 정도로 가슴 저리는 절절함을 느끼게끔 했다.
두바이 공항 제3터미널은 아랍에미리트항공 전용터미널로, 웅장한 신형 건물에 쾌적한 분위기가 넘쳤다. 그제 입국 때 밟았던 제1터미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대비되었다. 국적기에 대한 배려가 넘쳐났다. 항공기 기내도 쾌적하고 깨끗하다. 서비스도 원만하다. 예정 시각보다 40분 늦게 두바이를 이륙한 에미레이트 항공기는 4시간의 비행 끝에 2013년 5월4일 오후 5시10분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착륙했다. 15:10 → 17:00로 되어 있는 항공스케줄 상의 시각표를 보고 나는 두바이와 카이로 간의 1시간 시차를 생각하고 2시간 50분 비행시간을 생각했으나 착오였다. 카이로와 두바이는 2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3시간 50분이 소요시간이었던 것이다(다만 카이로는 4월 마지막 목요일부터 서머타임이 실시되어 2013년 5월 현재 한국과의 시차는 6시간이다). 어떻든 5000년 고대문명의 현장, 파라오의 땅 그 관문에 도착한 것이다.
카이로 구(舊)공항은 낡고 노후되었음이 금방 드러난다. 공항의 산란함과 무질서한 기분이 왠지 선입견으로 이어지면서 이러한 기분은 공항을 나와 카이로 시내를 뚫고 호텔로 오는 마이크로버스에서 입증되고 있다. 현지의 이집트인 가이드가 나와 공항에서의 비자 발급과 호텔까지의 안내를 맡아주기로 했다. 공항을 나서니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32~33도의 찌는 듯한 습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서 매연과 어우러진 퀴퀴한 공기의 맛을 느끼게 한다.

중고 현대·기아·대우차 거리 누벼
시내로 들어오는 30여분 동안 길은 인도 차도의 구분도 없이 차와 사람이 얽히고 설켜 산란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차창 양 옆으로 보이는 오래된 낡고 허름한 주택들에서 찌들어 가는 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재건축을 위해서 헐어가는 건물 잔해에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모양이 아닌가 한다(다음 날 안 일이지만 준공 검사를 받으면 세금이 많이 부과되기 때문에 이를 일부러 늦춰서 미완성된 상태로 입주해 살고 있어 도시 미관이 볼품없게 방치되어 있단다). 차량들도 노후된 차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중고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들은 상급에 속한다. 대우차가 생산 중단된 지 오래건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버젓이 중상급 차량 수준으로 거리를 누비고 있다. 간혹 고급 브랜드의 럭셔리한 차량이 혼잡한 길을 뚫고 달리는 모습에서 빈부 격차를 엿볼 수 있다.
이집트가 정치 불안과 사회 불안으로 오랫동안 몸살을 앓아 왔고 최근 철권 통치자 무바라크의 실각(失脚) 이후에도 사회 불안이 계속되고 있어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이 정도로까지 현대의 이집트가 쇠락해진 양상으로 내 눈에 다가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나일강을 끼고 아부심벨, 룩소르의 대(大)신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향연이 이어지는 신비의 나라, 동경의 나라 이집트, 그 관문인 카이로가 이렇게 낡은 모습으로 나를 불안하게 할 줄이야!
자신들의 나라를 ‘움므둔야(세상의 어머니)’라고 자랑스럽게 불렀던 고대 이집트인들, 인류 최초의 삶과 문명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인류 문화의 여명기 수천년간 세계역사의 중심무대로서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던 이집트가 아니던가. 3000년 전 람세스 2세의 영웅적 활약상, 소년왕 투탕카멘의 삶과 황금마스크에 매혹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 나아가 파라오 아크나톤의 아내로서 투탕카멘이 왕좌에 오르기 전까지 이집트를 다스렸던 네페르티티를 비롯하여 남장(男裝)을 하고 이집트를 통치했던 하트셉수트 여왕,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테리, 클레오파트라 등 전설적 이집트 여성 영웅들의 발자취는 또 어떠한가!
한때 역사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후손들이 사는 이집트가 이제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200~1300달러의 후진국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궁기(窮氣)를 보이지 않는 의연함은 지니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 경제적 소득 수준으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재단하는 것이 옳은 태도는 아닐지라도 순박하고 평온한 삶의 모습은 관광대국이라는 흐름에 이미 밀려난 지 오래된 것 같다. 마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감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호텔 정문에서 금속탐지기로 짐 검색
나일강변의 카이로 시내 전망이 좋다는 그랜드나일타워 호텔에 체크인하기 위해 도착하니 호텔 측에서 호텔 정문 출입을 차단하고 옆문에 금속탐지기 2대를 설치하여 투숙객의 짐도 일일이 열어보고 있다. 아마 정정(政情) 불안과 잦은 시위와 테러 위협에 대한 대책인 것 같다. 어떻든 나그네의 기분이 움츠러든 것만은 사실이다. 호텔 로비나 커피숍, 식당도 사람들이 뜸하고 어딘지 깊이 가라앉은 듯한 적막감이 이어지고 있었다. 투숙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경비원들로 보이는 직원들만 곳곳에서 졸린 듯한 얼굴로 경비(?) 업무에 임하고 있다. 최근 관광객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썰렁할 줄은 몰랐다. 혹여 특급호텔을 찾는 관광객만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피곤하고 가라앉은 기분으로 호텔 객실에서 준비해간 컵라면으로 저녁식사를 간단히 때우고 주변 시내 산책에 나섰다. 호텔 주변의 경비가 삼엄한 데다 밖을 나가니 택시 호객꾼(일반승용차)들이 달라붙기에 뿌리치고서 바로 옆의 포시즌 호텔 앞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보트를 타고 나일강의 한밤의 정취를 느껴볼까 해서였다. 손님은 없고 건장한 사내 5~6명이 얘기하고 있다가 그중 한 명이 배를 타라고 권한다. 2시간에 요금은 600이집트 파운드(약 10만원)다. 요금은 더 깎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그런데 아내가 극구 반대한다. 요금이 아니라 무섭다는 것이다. 우리 단 둘이만 작은 배를 타고 가다가 납치되거나 어떻게 당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잔뜩 겁먹은 모습이다. 나는 1시간 정도만이라도 나일강을 따라 돌고 싶었으나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호텔 주변의 길가에는 시민들이나 관광객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청소원과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특히 내가 묵은 호텔 앞이라 이러한 경비들의 모습이 더 부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호텔에서는 야간 결혼식이 있는 것 같았으나 하객들의 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시차 적응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몸 상태를 느끼면서 객실에 들어왔다.
그랜드나일타워 호텔(예전의 그랜드하얏트 호텔) 35층 35호실의 테라스에서 본 나일강의 야경(夜景)은 여전히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앞의 소피텔 호텔과 옆의 포시즌 호텔, 또 그 옆에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객실 불빛이 많이 꺼져 있는 걸 보니, 과거의 휘황찬란한 영광을 간직한 호텔들의 현주소가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쓸쓸한 나일강의 모습이 적막감 더해
밤의 카이로의 나일강은 유람선과 보트가 간간이 떠다니면서 5000년 문명의 이집트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으나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꼭 나그네의 선입견이 개입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랍 전통 음악과 악기 소리로 밤의 나일강은 깊이를 더하며 자정으로 가고 있다. 서늘한 나일강의 밤 강바람이 얼굴을 스치면서 저 람세스 2세, 투탕카멘, 안케세나멘, 네페르티티, 하트셉수트 등등 파라오와 왕비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의지할 곳 없는 나그네의 마음을 수수롭게 적셔주고 있다. 애달픈 가락의, 나일강변의 밤새 오가는 이집트인들의 천년 노랫소리가 강가에 어울리는 가운데 카이로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